[창립 특집] 비대면진료의 향후 전망과 과제 - 병원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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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특집] 비대면진료의 향후 전망과 과제 - 병원계
  • 병원신문
  • 승인 2023.07.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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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진단장비와 AI 시대에 OECD 유일한 비합법 국가
의료취약지구 중환자실 원격협진 등 의료질 향상 기회 가득
赤旗條例 우 범하지 않으려면 객관적·합리적 자세 가져야
비대면진료 시각 대면진료 위협 아닌 새로운 수단 인식 필요
백남종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백남종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가운데 의사-환자 간 비대면 진료가 합법화되지 않은 유일한 나라다.

환자의 심박수, 체온, 산소포화도와 수면상태가 스마트기기를 통해 측정 전송되고, AI가 질병 치료법을 맞춤형으로 설명해주는 시대에 아직도 환자가 의사와 대면하지 않고는 진료를 받을 수 없는 나라인 것이다. 

코로나19 기간 한시적으로 허용됐던 비대면 진료가 지난 6월 1일부터 시범사업 형태로 의료약자에 한정해 연장 시행되고 있지만 현장은 아직 혼돈 상태다.

환자의 초·재진 여부를 확인하는 게 번거로워 절반 가까운 환자가 진료를 거부당하고 있다고 한다.

일부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업체들의 편법적 행태도 문제다.

계도기간을 악용해 초진환자에 대해 비대면 진료를 시행하거나, 대리 처방을 비대면 처방으로 하고, 약 배달을 하는 등의 위법을 저지르고 있다. 

정부는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관리료’를 신설하고 궁극적으로 비대면 진료를 법제화하겠다고 천명했다.

정부의 목표가 성공하려면 진행과정에서의 혼란을 최소화하고, 예상되는 과제와 도전에 대응할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의료계 전체가 아닌 병원계 입장에서 ‘비대면 진료’의 향후 과제에 대해 조명해 보고자 한다.

비대면 진료가 필요한 이유로 도서·산간지방의 주민과 원양어선 선원 등 의료 소외계층의 의료 접근성 향상을 꼽는 데는 아무 이의가 없을 것이다.

반면 일반 국민의 의료 접근성 향상이라는 명분은 조금 다르다.

우리나라는 국토가 작고, 원하면 언제든지 병의원을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에 비대면 진료의 필요성이 높지 않다는 게 대한의사협회의 입장이다. 

하지만 직장 근무나 육아 때문에 의료기관을 언제든 쉽게 찾아가지는 못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재활의학과가 전공인 필자의 경우를 보면 상당 수 환자들이 거동이 불편해 직접 오지 못하고 보호자가 대리 처방을 받으러 오곤 한다.

보호자들도 어려운 시간을 쪼개 방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거동이 불편한 독거노인이 큰 위험을 감수하면서 혼자 보행기를 짚고 외래를 방문하는 경우도 있다.

장애인 택시나 사설 구급차에 실려 어렵게 병원에 방문해서는 5분에서 길어야 10분 쯤 진료를 받고 되돌아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비대면 진료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하는 경우들이다. 

병원 입장에서도 그렇다.

수술·시술 후 환자의 재택 관리, 외래 환자의 모니터링과 관리, 필수 의료진이 모자라는 의료취약지구 중환자실과의 원격협진, 응급실 방문 전 단계에서 구급대원에 대한 자문 등 비대면 진료가 가져다 줄 수 있는 의료 질 향상의 기회는 다양하고 의미 깊다.

취약지구 중환자실과의 원격협진은 꼭 필요할 뿐 아니라 의료진 간의 원격의료인 만큼 이미 법적으로 가능한데도 불구하고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비대면 진료에 대한 저항의 배경은 무엇일까? 

논의 초기에 의료 접근성이나 환자 편의성보다 산업적 측면이 우선 강조되다 보니 생긴 것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비대면 진료는 코로나19를 통해 필요성이 더욱 분명해졌고, 초고령·저출산이라는 시대상황도 도입을 재촉하고 있다.

돌봄과 의료의 경계가 허물어진 지금 스마트 돌봄과 효율적 재택의료를 위한 환자 상태의 상시 원격 모니터링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전제 아래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진행된 비대면 진료의 양상과 그동안 제기됐던 우려들에 대해 분석해 보자. 

(그래픽 출처: 연합)
(그래픽 출처: 연합)

우선 코로나19 기간 동안 한시적으로 도입된 비대면 진료의 경우 대부분 의원 또는 종합병원에서 환자가 받던 약의 단순 재처방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우려하던 대학병원으로의 쏠림은 보이지 않았고 비대면 진료 청구 건수도 전체 청구 건수의 0.1% 미만에 그쳤다. 

폭발적인 기대에도 불구하고 비대면 진료가 기존 대면 진료의 틀을 깰 정도의 지각 변동을 일으키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향후 비대면 진료에 대한 수요는 서서히 증가하겠지만 대면 진료를 대체하기 보다는 보완·보조 수단으로 유용할 것이라는 전망을 가능하게 한다. 

의약품 오남용 조장, 의사 임의 배정 같은 플랫폼 업체들 측면의 부작용도 많이 거론됐다.

의료가 비즈니스에 희생돼 환자에게 불편과 위험을 초래할 수 있고 의사들이 플랫폼에 종속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들이었다.

이 문제는 비대면 진료가 정착하기 위해 반드시 해결돼야 할 사안들이다.

시범사업 기간 난립한 플랫폼 업체들 중에 옥석을 가려 정리하는 작업이 불가피하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의 비즈니스 모델을 보다 정교하게 세우려는 논의도 필요하다. 

비대면 진료를 대면 진료의 보조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비대면 진료를 할 때 대면 진료 전자의료차트(EMR)를 닫고 새로운 비대면 진료 플랫폼을 열기 보다는 사용 중인 EMR에서 그래도 비대면 진료가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다면 전자의료차트 업체와 비대면 플랫폼 업체와의 협업이나 합병을 통해 통합 플랫폼을 만드는 방안도 기대할 수 있다. 

다음은 오진 가능성 논란이다. 

비대면 진료에 반대하는 쪽의 논리는 ‘진료는 문진, 시진, 타진, 촉진, 청진을 아울러서 해야 하는데 비대면 진료는 그렇지 못하니 오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의료 현장에서 그렇게 복합적인 진료를 충분히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특히 재진의 경우 대면 진료에서도 문진과 시진만으로 처방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의사라면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정신건강의학과처럼 문진과 시진만으로 진료가 가능한 분야도 있다.

정밀 진단이 필요한 암 환자를 비대면 진료하자는 게 아니다.

필요하면 일정기간 마다 반드시 대면 진료를 받게 하는 등의 방법으로 비대면 진료에서 놓칠지 모르는 환자의 상태 변화를 점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비대면 진료가 아무리 고도화하더라도 기존의 대면진료를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할 것이다.

비대면 진료에 대한 시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대면 진료를 위협하는 존재로 보기보다는 이를 보완하는 새로운 수단이 생긴 것으로 말이다.

전자 혈압기가 수은 혈압기를 대체하고, X-ray에 이어 CT와 MRI가 나왔듯이 비대면 진료를 환자들에게 더 나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새로운 수단으로 바라 볼 수 있다. 

비대면 진료의 가장 큰 의의는 환자가 병원을 찾아가 의사를 보는 순간에만 받을 수 있던 의료 서비스를 언제 어디서든 받을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환자에 대한 상시 모니터링과 상시 진료가 가능하다는 것은 의학의 역사에 획을 긋는 이벤트다.

최근 미국 의사협회의 설문 조사 결과를 보면 비대면 진료를 경험한 의사들이 보다 포괄적이고 양질의 의료를 제공할 수 있었으며, 직업의 만족도가 오히려 상승했다는 의견이 다수를 차지했다. 

비대면 진료는 환자 개인정보 유출, 통신 장애, 영상 및 음성의 불명확성, 기기 호환성 부족 같은 여러 가지 면에서 기술적 보완이 필요하다.

이런 부분들은 의료 산업계에서 방안을 마련하고 있을 거라고 믿는다.

의료계 입장에서는 비대면 진료 시 의사-환자 간의 신뢰 구축, 의사의 커뮤니케이션 능력 제고 같은 분야에서 해법과 비전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사진출처: 연합)
(사진출처: 연합)

1826년 영국에서 최초의 자동차가 등장하자 실직을 겁낸 마부들의 로비로 ‘적기조례(赤旗條例)’라는 법이 도입됐다.

자동차를 운행하려면 시내에서 시속 3km(사람 걸음 속도)를 넘어선 안 되고, 반드시 마부가 자동차 앞에서 붉은 깃발을 들고 선도하도록 규정한 법이었다.

기득권이 혁신을 가로막은 전형적인 사례다.

하지만 그 이후 자동차 산업이 어떻게 됐는지는 모두가 잘 안다.

혁신은 그만큼 강력하고, 대중의 요구가 뒷받침하는 혁신은 더욱 그렇다. 

혹시 비대면 진료에 반대하는 의사 개인이나 단체가 적기조례의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새로 등장한 자동차의 사고 위험이나 환경오염을 우려하는 것과, 그러니까 자동차 못 쓰게 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비대면 진료 역시 개선할 부분이 적지 않고, 부작용도 존재한다.

그런 문제는 의료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의사와 의료기관 주도로 해결해야 한다.

정보의 비대칭성이 높은 의료 부분의 이슈를 두고 국민을 위한 판단을 내리려면 사심과 기득권을 버리고 오로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자세로 임해야 한다.

비대면 진료에 대한 건설적인 논의는 이런 자세에서 출발한다. 

터무니없는 적기조례에도 불구하고 오늘 날 자동차가 모든 이들의 교통수단으로 발전한 것처럼 비대면 진료는 의사 일부가 반대한다고 해서 없던 일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OECD 회원국 모두가 도입한 제도를 우리만 언제까지 거부할 수 있을까.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재택 돌봄과 상시 모니터의 필요성, 그리고 AI 진단 기술의 발전 등 의료 서비스 발전의 이정표는 이미 분명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그 방향을 거부하고 버티다가 결국 플랫폼의 피고용인으로 전락할지, 아니면 혁신 속에 숨은 위험을 제거하고 바람직한 변화를 선도할지 우리 의사들은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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