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간호사들에게 의사 면허를 발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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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간호사들에게 의사 면허를 발급하라”
  • 오민호 기자
  • 승인 2024.03.08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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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공백 해소책, 환자생명 위협책 되선 안돼
의료기관장에 법적 책임 떠넘기는 무책임한 행정
보건의료노조, “불법의료행위 근절과 직종간 업무법위 제도화 투쟁 나설 것”

“차라리 간호사들에게 의사 면허를 발급하라.”

3월 8일부터 시행되는 정부의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을 두고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위원장 최선희, 이하 보건의료노조)이 입장문을 내고 이같이 비난했다.

정부는 10개 분야 98개 진료지원행위 중 엑스레이, 관절강 내 주사, 요로전환술, 배액관 삽입, 수술 집도, 전신마취, 전문의약품 처방 등 9개 행위를 제외한 89개 진료지원행위를 간호사가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를 두고 보건의료노조는 전공의들의 진료거부로 발생한 진료공백을 해소하기 위한 한시적 비상대책이라고 하지만, 올바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전공의 진료거부로 인한 의료공백을 메우기 위해 수술 집도와 마취, 전문의약품 처방 등 일부를 제외하고 환자생명과 직결된 고난도·고위험 시술까지 의사업무 중 간호사가 할 수 있는 업무를 무제한으로 허용함으로써 환자생명을 심각하게 위협하기 때문이라는 게 보건의료노조의 주장이다.

보건의료노조는 “사실상, 의사업무가 무제한으로 간호사에게 전가된다”며 “ 이럴 거라면, 차라리 간호사에게 의사면허를 발급하라”는 게 의료현장 간호사들의 목소리라고 전했다.

즉, 의사 진료거부로 인한 진료공백을 해소해 환자생명을 살리겠다는 정책이 오히려 환자안전을 위협하고 심각한 의료사고를 유발할 우려가 높다는 것.

또한 의료기관장이 간호부서장과 협의를 거쳐 간호사 업무범위를 설정할 수 있도록 재량권을 허용함에 따라 의료기관마다 다른 기준이 적용될 수밖에 없고, 진료에 혼선이 발생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아무리 의료현장의 진료공백을 해소하기 위한 한시적 시범사업이라고 해도 정부는 간호사의 업무범위 가이드라인만 제시할 뿐이고, 업무범위 결정권은 의료기관장에게 맡긴다면 업무범위의 혼란과 진료의 혼선을 피할 수 없게 되고, 결국 의료기관의 가장 중요한 목표인 환자안전과 양질의 의료서비스 제공에 역행하게 된다는 게 보건의료노조의 판단이다.

보건의료노조는 “의료법에 의사와 간호사의 자격과 면허를 엄격하게 규정한 것은 의료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다루는 특수분야이기 때문”이라며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인의 자격과 면허, 업무범위를 명확하게 규정하는 것은 정부가 해야 할 책무로, 의료기관장에게 임의로 재량권을 넘길 사안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의사와 간호사의 업무범위에 대해 정부 차원의 통일적인 규정과 제도를 마련해야 의료현장의 혼란과 혼선을 막을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의사업무를 간호사가 수행하는 과정에서 의료사고가 발생할 경우 간호사가 제대로 보호받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보건의료법에 근거한 시범사업이기 때문에 참여 의료기관 내 행위는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관리·감독 미비로 인한 사고시 최종적인 법적 책임은 의료기관장에게 있다며 법적 책임을 의료기관장에게 떠넘겼다는 것이다.

보건의료노조는 “의료기관장에게 법적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무책임한 행정이다”며 “의료사고 소송은 의료기관만이 아니라 개인에게도 제기되기 때문에 설사 의료기관장이 법적 책임을 진다고 하더라도 의사업무를 수행한 간호사도 소송을 피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의사업무를 수행하는 간호사가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결국 간호사는 불법과 합법의 경계에서 의사업무를 수행하면서 법적 책임에 대한 불안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면서 “의료사고에 대한 면책이 명확하게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간호사들은 법적 보호도 없이 의사업무를 대리하는 불법의료행위자로 내몰리게 된다”고 말했다.

결국 전공의 진료거부로 인한 의료현장의 진료공백은 의사업무를 간호사에게 떠넘기는 땜질처방으로 해결할 수 없다며 정부가 필수·지역·공공의료 붕괴 위기 해법 마련을 위한 사회적 대화를 선제적으로 제시하고, 의사단체들이 사회적 대화 제안을 수용해 의료현장에 복귀하겠다는 결단을 내릴 때 진료공백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건의료노조는 의사업무를 간호사에게 무제한 허용하는 정책을 놓고 정부와 의사단체가 서로 논쟁할 때가 아니라 진료공백을 빨리 해결하기 위해 진료정상화를 결단하고 사회적 대화에 나서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아울러의사 부족으로 인해 발생하는 의료현장의 불법의료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의사인력을 늘리자는 데 반대해온 대한의사협회를 향해서도 ‘불법의료행위 양성화’를 운운할 자격이 없다고 꼬집었다.

의협은 ‘정부가 불법의료행위를 양성화하려 한다’고 핏대를 올릴 것이 아니라 의사 부족 때문에 생겨난 2만여 명의 PA인력에게 의사업무를 떠넘기면서 불법의료행위를 조장해왔던 자신의 모습부터 반성하고, 의료현장의 불법의료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의대 증원정책을 수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보건의료노조는 어떤 경우에도 △대리 처방 △동의서·의무기록 대리 작성 △대리 처치·시술 △대리 수술 △대리 조제 등 5대 무면허 불법의료행위를 거부할 것이라며 이번 의사들의 진료거부 사태를 계기로 의료현장의 불법의료행위를 완전히 근절하고 직종간 업무범위를 명확하게 제도화하는 투쟁을 강력하게 벌여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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