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지출되는 국민 의료비중 약제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27.3%로 OECD 21개국의 평균치 17.4%보다 10%나 높다. 우리나라 약제비 비중이 높은 것은 지난 1999년말 의약분업을 앞두고 도입된 실거래가상환제 탓이 크다는 것이 정부나 병원계 모두의 공통된 시각이다.

실거래가상환제는 구매한 가격을 그대로 되돌려주는 제도라 아예 시장경쟁이 없어 약제비 비중이 치솟을 수 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갖고 있다.

한국병원경영연구원이 발표한 ‘병원 의약품 실거래가제도의 개선방안’에 따르면 정부가 가격상한선으로 정한 기준 상한약가가 담합가격의 가이드라인으로 역할을 했고, 시장에서 저가약 구매동기가 상실되면서 의약품과 관련한 건강보험 재정확대에 역기능이 여과없이 그대로 나타나는 등 각종 문제점이 노출됐다.

이에 따라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가족부에서도 실거래가상환제의 문제점을 인식, 제도 개선작업을 추진중이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실거래가상환제의 큰 틀을 유지하면서 요양기관들의 약제비 절감으로 약제비가 줄어들면 그중의 일부를 인센티브로 요양기관들에게 돌려주는 소위 저가구매 인센티브제가 정부 일각에서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반면 그동안 실거래가상환제의 최대 수혜자였던 제약업계는 저가구매 인센티브제가 도입되면 제약산업의 이익구조가 나빠져 결국 국내 제약산업의 붕괴를 초래할 것이라며 깊은 우려와 함께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실거래가상환제로 약가차액이 없어지고 치솟는 약제비 지출로 수가에서 상대적으로 피해를 받아온 병원계는 실거래가상환제가 지니고 있는 주된 문제가 시장경쟁이 없는 것인 만큼 시장경쟁 기능이 뛰어난 고시가제도로 돌아가거나 매분기 또는 반기별로 의약품 유통 실거래가를 조사해 이를 근거로 표준약가로 고시하는 방식의 표준고시가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거래가상환제가 시장경쟁이 없다는 원인분석에는 같은 생각이면서 해결책 제시에 있어선 엇박자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자칫 약가정책 실패로 비춰질 수 있는 실거래가상환제 전면폐지보다는 저가구매 인센티브제도 도입을 통해 실거래가상환제의 틀을 유지하면서 요양기관들이 값싸게 구매할 수 있는 동기부여하자는 것이고, 약제비 절감액만큼 이익률이 줄어들게 되는 제약업계로선 정부 정책에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을 것이다.

이에 대해 의료공급자단체인 대한병원협회(회장 지훈상)는 그동안 줄기차게 시장경쟁 기능이 강한 고시가제도로 되돌라갈 것을 강력히 촉구하면서 한국병원경영연구원에 실거래가상환제 개선방안에 대한 연구를 맡겼다.

한국병원경영연구원이 건강보험 재정의 안정화, 의약품 거래의 투명성, 약가기준의 합리화, 과잉투약 방지 및 거래가격의 고가화 방지 등 5가지 정책목표를 달성하는데 가장 적합한 제도로 표준약가 고시가제도라는 연구결과를 도출하고 최근 이같은 내용을 공개했다.

연구원은 그동안 의약품 표준약가 고시제와 실거래가상환제 인센티브제, 참조가격제 등 3가지 정책적 대안을 놓고 장단점을 평가한 후 앞서 5가지 정책목표를 중심으로 점수를 매겼다.

3가지 정책대안에 대한 연구원의 평가에서 표준약가 고시제가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개별 실거래가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정책방안이나 처방총액 인센티브제 등 이른바 저가구매 인센티브제는 약제비 지출억제란 순기능에 비해 불공정거래방지와 약가기준 합리화 측면에서 정책기여도가 낮은 것으로 평가됐다.

참조가격제의 경우 약가산정 기준 합리화에는 효과적이지만, 거래투명성 및 과잉투약 가능성 측면에선 문제가 여전했다.

반면 표준약가제는 공급자 가격경쟁을 통한 약가인하 및 보험재정 건전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며, 요양기관에서도 의약품 저가구매에 대한 동기부여가 확실해 약제비 절감과 함께 의료기관의 수익개선 효과를 모두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표준약가제는 의약품 시장가격에 대한 정례적인 조사가 필수적이라 정부당국의 행정적인 부담이 가중되는 단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연구원은 이에 대해 중장기적으로 시장약가를 조사하는 전문기관을 설립하거나 정부 산하조직에 전문인력을 보강, 전문기관으로 육성하는 방안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