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재정 누수 방지와 과잉 진료 근절을 위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이사장 정기석)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원장 홍승권)이 각각 독자적인 형태의 의료 이용 관리 제도를 본격화하고 있다.
두 기관 모두 불필요한 의료 이용을 줄여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을 확보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내세웠지만, 구체적인 실행 방식에서는 사후 통계 분석과 사전 실시간 차단으로 명확한 차이를 보인다.
건보공단과 심평원 두 기관이 준비하고 있는 제도는 결국 일선 의료기관의 행동 변화와 협조가 필수적인 만큼, 진료 현장의 수용성을 높이기 위한 정교한 설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우선, 건보공단은 지난 1월 확대 개편한 ‘적정진료추진단(NHIS-CAMP)’을 중심으로 방대한 급여 청구 데이터에 기반한 사후 분석 방식에 집중할 전망이다.
질병과 행위 중 종별 평균 대비 극도로 과다한 진료를 하는 요양기관을 탐지해 질의서 발송 및 현장 조사를 진행하는 구조다.
올해부터는 분석 대상을 기존 검사·행위 중심에서 수술·처치 영역까지 넓히겠다는 의지를 보인 바 있는 건보공단이다.
다만, 건보공단은 단순히 기계적인 통계 잣대로 과잉 진료를 낙인찍는다는 의료계의 비판을 의식해 환자 단위의 심층분석과 임상 자문을 거쳐 수긍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건보공단은 적정진료 분석을 위해 주요 진료과 29개 학회장들에게 ‘적정진료 환경 조성을 위한 분석 과제 수요 조사’ 협조 요청 공문을 보낸 상태다.
심평원은 내년 1월부터 전면 시행을 앞둔 ‘실시간 의료이용 관리 제도’를 통해 진료 시점의 사전 관리에 방점을 찍었다.
기존의 과다 의료 이용 관리가 진료 이후 수개월이 지난 시점에 이뤄져 억울한 삭감이나 환자 안전 문제를 막기 어려웠다는 맹점을 극복하기 위한 조치다.
의사가 진료 전 요양급여내역 확인시스템을 통해 환자의 과거 타 기관 이용 내역을 즉각 확인해 중복 진료를 막는, 이른바 ‘행위 및 처치 목적의 DUR(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 형태로 이해하면 쉽다.
아직 확정되진 않았으나 신경차단술, 한방시술, 물리치료 등의 항목이 우선 적용 대상으로 꼽히며 향후 정부의 다른 정책에도 적극 활용되는 시스템으로 거듭날 여지도 있다.
심평원 역시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와 제도 설명회를 진행 중이며 오는 7월 적정의료이용심의위원회 참여를 위한 위원 추천 공문까지 보낼 예정이다.
결과적으로 두 기관의 의료 이용 관리 제도는 모두 의료진의 판단과 협조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건보공단의 적정진료 유도는 통계적 이상치에 대한 의료진의 임상적 소명과 자발적 행태 변화를 전제로 하고, 심평원의 실시간 관리 체계는 진료실에서 의사가 직접 시스템을 조회하고 급여 기준 초과 시 환자에게 설명하거나 대체 진료를 선택해야 작동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의료계의 불안과 혼란이다.
현재 의료계는 제도의 취지에는 일정 부분 공감하면서도 진료 자율성 침해 가능성에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환자의 의료쇼핑을 차단해 의사를 삭감의 피해로부터 보호한다는 것은 핑계로 생각할 뿐 이를 통제 수단으로 받아들이는 불안감이 오히려 더 큰 것.
게다가 건보 재정 건전성과 환자 안전 제고 등과 같은 좋은 목적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건보공단과 심평원이 마치 영역 싸움을 하듯 ‘적정진료’와 ‘적정의료’라는 표현을 말장난처럼 나눠 가져 각자 따로 전담 조직까지 구성한 것에 대한 혼란도 존재한다.
다시 말해 의도가 아무리 좋다 한들 온전히 좋게만 보일 수 없는 요소가 다분하다는 의미다.
이들 제도가 단순한 재정 절감용 명분 쌓기에 그치지 않으려면 관리 주체 간의 일관된 기준 확립이 선행돼야 한다.
건보공단과 심평원이 각각 유사한 명분으로 사업을 추진함에 따라 의료 현장에서 중복규제에 대한 반발은 필연적으로 발생할 것이다.
심평원이 오는 7~8월 발족할 예정인 ‘적정의료이용심의위원회’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관리 대상 항목을 선정하는 해당 기구에 의약계 전문가를 포함해 현장의 목소리를 얼마나 실질적으로 반영하느냐가 핵심으로 떠올랐다.
이 외에도 일방적인 기준 통보를 넘어 임상적 타당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그 근거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협력 구조가 두 기관에 마련되지 않는다면 제도 안착은 요원해질 것이다.
부디 ‘적정진료’와 ‘적정의료’라는 각자의 사업 성공을 위한 ‘적정한’ 명분 쌓기에서 그치지 않길 바란다.
의료계는 하는 ‘척’만 하는 ‘명분’에 예민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