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의 제7대 위원장·수석부위원장 선거가 11월 29일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
국내 최대 사무직 노조인 건보노조의 조합원수는 1만4천여 명.
사실상 국민건강보험공단 직원의 대부분이 가입돼 있다고 봐야 하고, 그렇기에 건보공단 내부를 넘어 정부를 압박·견제해 올바른 길을 조언하는 대표 노조로서의 힘을 가졌다.
때로는 건보공단 경영진과 임원을, 어느 때는 정부의 방만한 건강보험 재정 운용에 경종을 울리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건보노조다.
결국, 건보노조의 이 같은 역할은 그들의 근무여건 개선을 넘어 국민들이 더 나은 건강보험 서비스를 걱정 없이 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통 우리네 선거라고 하면 많은 기대와 우려 속에서 치러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이번 제7대 건보노조 위원장 선거는 걱정과 불만, 불신, 하소연 등이 복합돼 기대는 찾아볼 수 없고 논란만 가득했다는 풍문이다.
대표적인 논란을 꼽자면 1차 투표 득표율 공개 지연, 과도한 무효표 수 등이다.
이 가운데 과도한 무효표 수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들리는 얘기에 따르면 이번 선거는 호감 선거가 아닌 비호감 선거였다고 한다.
즉, 기호 1번과 2번 후보 모두 조합원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에서 어떤 후보가 그나마 ‘덜 싫으냐(비호감이냐)’의 대결이었다는 의미다.
결국, 이 때문에 건보노조 1만4천여 명의 조합원들은 ‘이럴 바에는 차라리 아무도 뽑지 않겠다’라는 마음으로 선거에 임했다고 전해진다.
1차 투표 결과 무효표는 정확히 3,004표.
건보노조 조합원 1만4,097명 중 1만2,086명이 투표에 참여했으니, 무효표의 정확한 비율은 24.8%.
1차 투표에서 기호 1번 후보가 5,703표(47.19%), 기호 2번 후보가 3,379표(27.96%)에 머물렀다는 점에서 무효표 비율 24.8%의 존재감은 어마어마하다.
게다가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2,011명의 뜻도 무효표와 같다고 가정하면, 무려 전체 조합원의 36%가량인 5천여 명이 제7대 건보노조 위원장 선거를 거부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멀리 갈 것도 없이 초등학교 회장 선거 및 동네 통·반장 선거마저 모두 일정 수의 무효표는 항상 있다.
무효표는 투표 도장을 뒷면에 찍었든, 욕을 썼든, 여러 번 찍었든, 실수로 잘못 찍었든, 어쨌든 유권자가 투표소에는 입실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건보공단 노조의 3,004명은 투표소에는 발을 디뎠다는 것인데, 이들은 왜 투표소에서 무효표로 분노를 분출했을까.
제7대 건보노조 위원장 선거에서 과도한 무효표 수가 나온 상황을 두고 국민건강보험공단 수뇌부를 비롯해 심지어 정부까지 심상치 않게 바라봐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사실 이번 무효표는 조합원들이 건보노조 위원장 두 후보를 싫어했기 때문도 있겠지만, 그들은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 건보노조 위원장 후보들을 싫어하게 됐는지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
그러면 두 후보만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수 있다.
그간 건보공단 직원들은 고객센터 정규직화 과정의 잡음 장기화, 불합리한 승진 및 전보 등의 인사 문제, 특정 급수 및 직책으로 쏠리는 업무분장 문제, 인건비 문제 등 수많은 사정 때문에 좌불안석이었다.
다시 말해 노사 갈등, 세대 갈등, 급수 갈등 등 각종 갈등에 심신이 지쳐 있던 것이다.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활화산이었던 것인데, 이때 화룡점정의 기름을 부은 것은 최근 이슈가 된 국민건강보험공단 직원 인건비와 관련된 공공기관 예산지침 미준수 논란과 정부의 의대정원 증원 정책으로 촉발된 의료대란 사태에 계속 투입되는 건강보험 재정 논란이다.
요약하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난 8년간 인건비 예산지침을 미준수하다가 올해 기획재정부에 덜미를 잡힌 일인데, 이에 당장 내년부터 임금 동결 가능성이 커졌다.
아울러 현재 국민건강보험공단 직원들은 의료대란이라는 당장 급한 불을 끄기 위해 투입되는 건강보험 재정에 심각한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백번 양보해 두 현안은 마치 국민건강보험공단 최 팀장 46억 원 횡령 사건처럼 이미 벌어진 일이여서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최소한 이슈화된 이후 건보공단 수뇌부가 적절히 대처·대응하고, 필요하다면 정부와 기획재정부를 상대로 적극적인 의견을 피력하길 바랐던 게 건보노조 조합원들의 마음이었다고 한다.
오랫동안 쌓이고 쌓여 해결되지 못한 다양한 갈등 문제에 더해 인건비 동결 위기, 건강보험 재정 위기 등이 건보노조 조합원들의 마음을 동요하고 뒤흔드는 바람에 국민들에게 제공해야 하는 본인들의 중요한 업무에 집중하지 못할 정도로 불안한데, 건보공단 수뇌부와 건보노조는 이에 대해 시원한 설명이나 해결은 내놓지 않을뿐더러 정부에 제대로 된 저항 한 번 못하고 있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그 모든 짐을 일개 건보공단 직원들이 지게 됐으니 복장이 터질만하다.
제7대 건보노조 위원장 선거에서 나온 무효표는 정부를 향한, 건보공단 수뇌부를 향한, 건보노조 위원장을 향한 일종의 시위로 봐야 하지 않을까.
현재 건보노조 조합원들은 정부, 건보공단 임원, 건보노조 위원장 모두를 신뢰하지 못해 무효표로 귀여운(?) 저항을 한 것일 수도 있다.
매번 있었던 건보노조 위원장 선거, 매번 있었던 선거 과정에서의 잡음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이번 3,004장의 무효표가 주는 무게감은 태산과 같아 보인다.
건보공단 수뇌부 나아가 정부는 건보노조 조합원들의 무효표 3,004장과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2,011명의 무언의 외침에 심각함을 느끼고 긴장해야 할 것이다.
건보노조 조합원들의 불안이 국민들의 불안이 되기 전에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