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의사(醫師) 장기기증 30년, 생명 나눔의 뜻 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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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의사(醫師) 장기기증 30년, 생명 나눔의 뜻 기려
  • 오민호 기자
  • 승인 2023.06.22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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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성모병원 장기이식센터, 간이식 30주년 기념식 개최
1993년 뇌사판정 故 음태인 인턴(당시 25세), 간 등 5명에 새 삶 선물
서울성모병원 장기이식센터는 6월 22일 오전 10시 30분, 지하 1층 대강당에서 간이식 30주년 기념식을 개최했다.
서울성모병원 장기이식센터는 6월 22일 오전 10시 30분, 지하 1층 대강당에서 간이식 30주년 기념식을 개최했다.

“간이식 생명 부활의 여정 30년, 젊은 의사 한 분의 숭고한 희생이 새 생명 탄생의 초석이 됐다.”

병원의료의 꽂이라 불리는 장기이식. 장기가 질병으로 본래의 기능을 상실했을 때 다른 사람의 새 장기를 이식하여 기능을 되살리는 의학이다. 생명을 살리는 위대한 기술인 반면 수술 전 준비부터 수술 기술, 수술 후 거부 반응 관리까지 매우 까다롭고 복잡하다.

전 세계적으로 신장이식은 1954년, 간이식은 1963년이 첫 성공이다. 우리나라는 1969년 3월 23일 서울성모병원의 전신인 당시 명동 소재 성모병원이 신장이식 수술에 처음 성공해 국내 장기이식 분야에 이정표를 세웠다.

특히 수많은 혈관을 연결하는 간이식은 고난이도 수술로 국내 극히 일부 병원에서만 이뤄졌고 성공사례도 많지 않았다.

그러나 30년 전 아직 우리나라 의료기술의 발전이 더디고 미흡한 시기인 1993년 6월, 한 젊은 의사의 거룩한 생명 나눔이 장기이식의 빛을 밝히고 불모지나 다름없던 우리나라 간이식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1993년 3월 소아과 의사인 아버지를 본받아 가톨릭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인턴으로 재직하던 음태인(당시 25세) 의사는 같은 해 6월 22일 불의의 사고로 뇌사에 빠졌다. 큰 충격에 빠진 가족과 아버지 음두은 박사는 고민 끝에 아들과 본인의 모교인 가톨릭의대로 옮겨 장기를 기증하기로 결정한 것.

음 박사의 대학 동기이자 고인의 스승인 김인철 명예교수(전 서울성모병원장)와 김동구 교수(은평성모병원)의 집도 아래 열 시간 넘게 수술은 진행됐고 고인과 함께 공부한 동기들과 전공의들은 장기를 기증하기 위해 수술대에 누워있는 모습에 오열하며, 스승 뒤에 서서 수술을 참관했다.

고인과 유가족의 숭고한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 끝에 수술은 성공을 거뒀고 5명의 새로운 생명을 살렸다.

6월 22일 서울성모병원 장기이식센터 간이식 30주년 기념식을 앞두고, 윤승규 서울성모병원장과 간이식 의료진, 간이식 환자 등이 병원장실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왼쪽부터 간담췌외과 유영경 교수, 소화기내과 최종영 교수, 은평성모병원 김동구 교수, 윤승규 서울성모병원장, 본원 최초 간이식 환자 이종영 씨, 가톨릭의대 김인철 명예교수, 전찬구 서울성모병원 간이식동인회 회장, 본원 최고령 간이식 환자 이기만 씨)
6월 22일 서울성모병원 장기이식센터 간이식 30주년 기념식을 앞두고, 윤승규 서울성모병원장과 간이식 의료진, 간이식 환자 등이 병원장실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왼쪽부터 간담췌외과 유영경 교수, 소화기내과 최종영 교수, 은평성모병원 김동구 교수, 윤승규 서울성모병원장, 본원 최초 간이식 환자 이종영 씨, 가톨릭의대 김인철 명예교수, 전찬구 서울성모병원 간이식동인회 회장, 본원 최고령 간이식 환자 이기만 씨)

30년이 지난 2023년 6월 22일. 숭고한 나눔 정신으로 다섯 명의 새 생명이 태어나고, 첫 간이식에 성공한 날을 기억하는 자리가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에서 열렸다.

국내 첫 번째 젊은 의사의 생명 나눔으로 건강하게 생활하며 올해 환갑을 맞은 이종영(60세, 남) 씨는 “1993년 6월 22일 간이식을 처음 받고 올해로 30주년 됐다”며 “93년 5월 무렵 병원에서 퇴원하면서 얼마 못사니까 집에서 편히 있으라고 보호자한테 얘기할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는데 어느날 병원에서 간 이식을 할 수 있겠냐는 연락이 왔는데, 당시 고통이 심했고 복수가 많이 차있던 상황이라,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해보고 죽자는 마음으로 간이식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하루 금식을 학고 수술방에 들어가니까, 김인철 교수님이 다리를 만져주면서, 잘 될테니까 걱정말고 수술 잘 받고 나오라고 말씀해주셨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회상했다.

이 씨는 “수술을 잘 받고 나와서 회복기간에 죽을 고비 몇 번 넘기면서 의사 선생님 속을 많이 썩였는데, 약 때문에 힘들어서 중환자실에서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면서 “어느 정도 몸 상태가 좋아진 다음 병실에 올라온 지 3~4일 지났을 때 아침에 일어나 밖을 보는데 해가 비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이게 새 생명을 갖고 건강한 모습으로 사는 모습이구나 느꼈다. 김인철 전 병원장님과 김동구 교수님, 윤승규 병원장님, 최종영 교수님을 비롯해 전찬구 동인회 회장님과 임원들에게 항상 고맙고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첫 간이식을 집도한 김인철 가톨릭의대 명예교수는 “1969년 국내 최초로 고 이용각 교수님을 주축으로 신장이식 수술에 성공한 뒤 다음 장기로 간을 목표로 많은 의료진들이 노력했다”며 “간 이식을 준비하기 위해 매주 토요일마다 동물실험을 하며 간이식 기술을 충분히 습득한 뒤 캠브리지, 피츠버그 등 해외 유수의 대학에서 연수를 받았고, 당시 국내에서는 뇌사에 대한 정의가 없어 캠브리지, 하버드 기준을 자문받고 참고해 뇌사의 정의에 대해 정리하는 등 준비를 많이 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김 교수는 이어 “소아과를 전공한 동기의 아들이기도 한 고(故) 음태인 씨는 의사가 된 지 3개월 만에 교통사고로 뇌사 상태가 되면서 첫 간이식을 하게 됐는데, 간이식은 외과 혼자만 하는 게 아니고 내과, 마취과 등 여러 과의 많은 사람들이 간이식에 참여했다”면서 “정년퇴직한 지 오래되어, 간이식을 받은 이종영 씨 상태가 어떤지 김동구 교수에게 물었더니 아주 건강히 잘 생존해 계신다고 들어 정말 감동스럽고 보람을 크게 느꼈다. 한 생명을 우리가 노력해 살게 했구나 하는 자부심이 들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주치의 소화기내과 최종영 교수도 이날 회고사를 통해 “한 명의 이식환자가 수술해서 퇴원하기까지 100명 정도의 의료진이 참여하는데, 즉 100명의 손길이 가야 퇴원하게 된다”며 “보통 간이식은 외과 위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 병원은 간이식을 내과와 외과가 같이 하는 국내 유일의 병원이다. CMC 내외과 간이식 세미나를 통해 매년 모여서 증례토의를 하는 등지금까지 발전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발전해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첫 간이식 당시 소화기내과 임상강사로 환자를 돌본 윤승규 서울성모병원장은 축사에서 “우리 병원 간이식의 역사는 외과 김인철 명예교수님, 내과 김부성 명예교수님으로부터 시작됐고 장기이식을 선도해온 병원이었기에 간이식에 대한 열망이 대단했다”며 “선배님들의 난치 질환에 대한 헌신적이고 과학적 노력이 없었다면 이런 자리 없었을 것이며, 선배님들의 정신을 잘 이어받아 장기이식 정신을 유지시키고 발전시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성모병원 장기이식센터 주최로 6월 22일 오전 지하 1층 대강당에서 진행된 ‘간이식 30주년 기념식’은 영성부원장 이요섭 신부의 시작 기도를 시작으로 간담췌외과 유영경 교수의 개회사, 가톨릭중앙의료원 영성구현실장 김평만 신부의 축사가 이어졌다.

또 간담췌외과 최호중 교수의 ‘CMC 간이식 30년 보고’로 간이식 의료의 발전 내용이 소개됐으며 은평성모병원 간담췌외과 김동구 교수가 ‘CMC 간이식 발전과 비전’을 주제로 간이식의 발전 방향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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