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히 꿈꾸고 뜨겁게 도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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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히 꿈꾸고 뜨겁게 도전하라
  • 박현
  • 승인 2008.11.0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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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여 회장 지음
가천길대단 이길여 회장이 최근 "간절히 꿈 꾸고 뜨겁게 도전하라"는 자서전을 냈다.

이 책에는 이 회장이 깡촌의 구박받는 소녀에서 의료, 교육, 언론, 문화재단의 경영자로 우뚝 서기까지의 꿈과 도전을 담고 있다.

다음의 이 책의 주요내용들이다.

도전하는 사람만이 꿈을 이룬다! 해보지도 않고 처음부터 포기하는 것은 나약하고 비겁한 일이다.

가천길재단 이길여 회장은 1932년 전라북도 옥구군 대야면 죽산리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들을 바라던 어른들의 기대 탓에 태어나던 순간부터 구박을 받으며 자랐지만, 끊임없는 도전 정신으로 노력해 서울대 의대를 졸업, 굴지의 산부인과 의사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두 차례에 걸쳐 미국과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선진 의료 기술을 배워오고, 의료 취약지에 병원을 세우는 등 가슴으로 치료하는 의사로서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또한 이처럼 의사로서 정점에 도달한 뒤에도 그에 안주하지 않고 후학들을 키워나가기 위해 대학교와 연구소 등을 건립하며 의료, 교육, 언론, 문화재단의 경영자로 우뚝 섰다.

이처럼 이길여 회장의 쉼 없는 일생은 그저 편안하게 살아가는 것을 희구하는 현대의 젊은 세대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랑의 인술을 펼치기보다는 경제적인 부를 위해 의사의 길을 선택하기 쉬운 요즘, 사랑과 봉사의 마음으로 몸 바쳐 환자를 치료하고, 더 나아가 전 재산을 바쳐 의료법인을 만든 그의 족적은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모범적인 전형이 되고 있다.

이처럼 선한 꿈을 꾸고 또한 꿈을 향해 끊임없이 열정적으로 도전하는 이길여 회장의 삶은 여성으로서, 의사로서, 경영자로서, 또 이 시대의 어른으로서 우리 인생을 빛나게 하는 멘토가 되어줄 것이다.

▲가능성은 꿈꾸는 사람의 몫이다=지는 해를 바라보며 떠오르는 해를 생각해라

여섯 살 때까지 말도 제대로 못해 주위 사람의 걱정을 샀지만 열 아들 부럽지 않은 딸이 되기 위해 이를 악물고 공부해 한 번도 1등을 놓쳐본 적이 없는 아이, 가당치도 않다는 사람들의 편견을 물리치고 당당히 서울대 의대에 입학한 시골소녀, 의대를 졸업하고 굴지의 산부인과 의사가 된 뒤에도 보다 나은 선진 의료기술과 시스템을 배우기 위해 미국과 일본 유학길에 오른 사람, 그리고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정성껏 환자를 돌보고 환자들을 위해 병원을 전문화시키는 한편 훌륭한 인재를 키우기 위해 학교와 연구소를 건립해 의료 등대가 되어주는 사람.

이길여 회장의 이력을 살펴보면 이렇듯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목표를 세우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이다. 그의 사전에 ‘실패’와 ‘안 된다’는 말은 없다. 남들이 모두 어림없다고 고개 저을 때 지레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열정적으로 도전하고 마침내 꿈을 이루어낸다.

이러한 이길여 회장의 삶의 자세는 그것이 바로 세상이 만들어놓은 한계와 틀을 벗어나 자신 안에 숨겨진 가능성의 범위를 넓히는 길이라는 것을, 인생은 주어진 재능과 배경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 노력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그저 정해진 틀 안에서 편안하게 살아가는 것을 희구하는 현대의 젊은 세대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니, 어떻게 이리에서, 이 촌구석에서 서울대를 가겠다는 거지? 그것도 의대를? 게다가 남자도 아닌 여자가?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말은 안 해도 다들 이렇게 생각했다.

‘오냐, 두고 봐라. 내가 서울대 의대를 가나 못 가나, 두고 보면 알 것이다.’

나는 서울에서 온 아이들과 선생님들을 보며 더욱 전의를 불태웠다. 그리고 마침내, 1951년 치열한 전쟁의 와중에 서울대 의대에 합격했다. 경기여고, 이화여고 학생들을 물리치고 당당히 입학을 했다. 하늘을 올려다봐도, 땅을 내려다봐도, 저절로 눈물이 났다. (…) 나는 그날, 가능성은 꿈꾸는 사람의 몫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 <촌에서 여자가 무슨 수로 서울대를 가?>(44-45쪽)에서


▲가슴으로 치료하는 의사가 되어라=의사에게 병 고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

이처럼 끊임없는 도전 정신으로 늘 새로운 것을 향해 거세게 나아가는 이길여 회장이지만 그에게는 삶에 있어 변치 않는 중요한 원칙이 있다.

바로 의사로서 ‘첫째도 봉사, 둘째도 봉사, 셋째도 봉사’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정성을 다해 환자를 돌봐야 한다는 점이다. 그에게 환자는 조국이고 신념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을 기다리게 할 수는 없었기에 이길여 산부인과 시절 병원의 자랑거리이던 엘리베이터 한 번 타지 못하고,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한 채 환자들이 부르면 언제든 달려갔다.

뿐만 아니라 먹고살기 급급해 기본적인 의료 지식마저 갖추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자궁암 무료 검진과 교육은 물론 무의촌 진료를 실행해 나갔다.

의사는 환자의 고통과 절박함을 그때그때 해결해주는 봉사자다. 환자들이 의사들 편의를 위해 적당한 시간에 적당한 만큼만 아파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중요한 일이나 명분이 있더라도 의사가 환자의 진료를 거부하는 일이 있거나, 환자가 있는데 스스로 병원 문을 닫아거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세상이 아무리 달라져도 절대로 변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의사는 단순한 노동자도 월급쟁이도 아니다.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천직이다. 다른 일은 멈췄다가 다시 할 수 있지만, 한번 떠나버린 생명은 결코 다시 살려낼 수 없다.
― <세상이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세 가지 원칙>(102-103쪽)에서

실제로 그의 이러한 환자들에 대한 사랑과 열정은 ‘가슴에 품는 청진기’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길여 회장은 가천의대 졸업식에서 제자들에게 청진기를 하나씩 걸어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진료시 청진기의 차가운 금속성 때문에 놀라는 환자들을 배려하여 늘 자신의 품속에 품어 따뜻하게 데워진 청진기를 사용했던, 사소한 것 하나에서부터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제자들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라서이다.

처음 환자를 진료할 때였다. 환자의 피부에 청진기를 대자 환자가 움찔 놀라면서 긴장했다. 청진기가 차가워서 그런 것이다. (…) 그래서 착안해낸 것이 내 체온으로 청진기를 데우는 것이었다. 나는 청진기를 늘 내 품속에 넣어두었다가 진료할 때마다 꺼내서 사용했다.

그러자 진찰을 받는 환자들의 반응이 즉각 달라졌다. 따뜻하게 데워진 청진기를 피부에 대면 놀라거나 긴장하지 않고 편안한 표정으로 진료를 받았다. 이렇게 해서 따뜻한 청진기는 환자들에게 내 체온뿐 아니라 마음까지 전해주는 가교가 되었다.
― <가슴속에 따뜻하게 청진기를 품고>(135쪽)에서

사랑의 인술을 펼치기보다는 경제적인 부를 위해 의사의 길을 선택하기 쉬운 요즘, 이처럼 사랑과 봉사의 마음으로 몸 바쳐 환자를 치료하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참 사람’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람이 희망이고, 사랑이 자산이다=머리를 쓰는 인재가 있어야 세상이 열린다

1998년 가천의과학대가 문을 열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적잖이 놀랐다. 입학생 전원에게 6년 동안 등록금 전액면제, 기숙사 무료 제공, 장학금 추가제공 등의 다양한 혜택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이는 이길여 회장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가난 때문에 의대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우수한 학생들에게 기회를 준다면, 훗날 이들이 따뜻한 가슴으로 인술을 베푸는 의사가 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또한 조장희 박사와 김성진 박사 등 세계적인 과학자로 인정받고 있는 우수한 석학들을 영입하고 최첨단 장비를 갖춘 뇌과학연구소와 암ㆍ당뇨연구원을 건립해 연구 지원에 힘쓰고 있다. 이 두 연구 기관은 무엇을 만들어 파는 곳이 아니라 오로지 연구에만 몰두하고 연구 성과만이 나오는 곳이다.

이처럼 이길여 회장이 거액을 들여 학교와 연구소를 설립해 지원하는 것은 훌륭한 인재가 있어야 수만 명의 사람이 편안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이제 세상은 지식과 정보, 두뇌를 앞세우는 시대가 되었기에, 사람만이 희망이고 그 사람을 지원하는 일이 가장 큰 자산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미쳤다고 한다. 이제 여생을 편하게 보낼 만도 한데, 젊은 시절 죽도록 일만 하며 좋은 일도 많이 했는데 왜 아직도 그렇게 자꾸 일을 벌이느냐고 말한다. 그것도 천문학적인 액수가 계속해서 들어가기만 하는 일을. (…) 하지만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누군가 미쳐야 세상이 바뀐다는 것을. 자기 일에 미친 사람만이 세상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것을. 미친 우리 때문에 언젠가 사람들은 질병과 고통 없는 세상에서 편하게 웃으며 살 수 있으리라는 것을.
― <자기 일에 미친 사람만이 세상을 감동시킨다>(237쪽)에서

▲나누면 커지고, 움켜쥐면 사라진다=노블레스 오블리제의 모범적인 전형

또한 이러한 이길여 회장의 부의 사회 환원적인 걸음은 1978년 전 재산을 바쳐 의료법인을 설립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종합병원을 건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의료법인을 설립해야 했는데, 이는 개인의 재산을 사회와 국가에 헌납하는 것을 의미했기에 많은 개인 ‘병원’이 ‘의원’으로 이름을 바꾸는 것도 불사하던 시절의 일이다.

산부인과만으로는 내 환자들에 대한 의사로서의 의무를 다할 수가 없었다. 그들을 모두 치료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했다. 그런데 걸림돌이 하나 생겼다. 1973년 의료법 개정으로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개설은 의료법인이 그 주체가 되어야 한다’라는 조항이 신설된 것이다.

다시 말해 의료법인이 아니면 종합병원을 지을 수가 없게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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