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달라도 사랑은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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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달라도 사랑은 하나다
  • 박현
  • 승인 2008.05.2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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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의료원 본관11층 안과병동 김봉순


캄보디아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하고 돌아왔다. 그동안 ‘한마음봉사단’의 봉사는 여러 번 다녀왔지만 ‘불자회’ 해외봉사는 처음이었다.

물론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독실한 크리스천인 한마음단장님을 비롯해 참여한 분들 중에는 다른 종교를 가진 분들도 있었다.

조계종 총무이신 혜만 스님, 의료봉사가 처음인 젊은 CEO, 불교방송 PD, 대학 3학년인 딸도 봉사에 합류했다.

인천공항에서 5시간30분을 날아서 시앰립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2시, 현지 불교단체인 BWC일행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캄캄한 밤에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고 두세 시간 눈을 붙이니 새벽이었다. 전기가 들어오는 시간이 제한돼 있어 조금이라도 늦으면 머리 손질은 물론이고, 에어컨도 꺼지는 등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이곳은 BWC에서 운영하는 아동보육 단체였는데 센터는 무척 넓었다. 큰 나무들과 여러 가지 꽃들이 형형색색 어우러져 있었고 연지에서는 연꽃이 피어 그 모든 것들이 우리를 환하게 맞이하는 듯했다.

일찍부터 서둘렀지만 우왕좌왕 하느라 예정보다 늦게 진료실 세팅을 마쳤다. 내과, 이비인후과, 가정의학과, 한방팀, 혈액파트, 약무팀 이렇게 세팅을 하고 나니 어린이들과 젊은 여성들, 그리고 노인들이 마당 가득히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영양실조와 소화기 장애를 앓고 있는 환자들이 대다수였고 더운 생활환경 속의 일로 인해 근골격계의 질환이 많았다. 또 영양결핍 상태 때문인지 체구들이 왜소했지만 고혈압과 당뇨증상 환자는 드물었다. 침을 맞고 안 올라가던 팔이 올라가고 다리가 부드러워졌다는 말을 여기저기서 했다. 파스 대신 가져간 연고를 드릴 때면 직접 바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는 모습이 그곳까지 간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먼 거리를 달려왔는데 일정이 짧은 봉사였다.

다리에 침을 놓으려면 자꾸 치마를 덮는 모습이 눈에 띠었는데, 그 곳 난민촌 여자들은 보통 노팬티 차림이라는 얘기가 떠올라 묘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게 습관이고 팬티를 살 돈도 없을 뿐더러 사주면 그것을 되팔아버린다는 얘기를 듣고는 측은한 마음도 들었다. 첫날은 통역이 모자라 소통이 잘되지 않아 다소 불편했지만 둘째 날은 현지 이민자인 통역도 왔고 간단한 캄보디아 말을 익혀서인지 소통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 들어 우리를 기쁘게 했다.

봉사는 의료진만 하는 게 아니다. 뒤에서 조용히 애쓰시는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일심동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식사를 위해 시장에 가서 재료를 사다가 새벽 일찍 일어나 식사를 준비한 봉사단원, 그들이 해주는 밥과 국수와 김치부침개와 야채 사라다도 한국서 먹는 것처럼 맛이 있었다. 먹거리를 위해 애쓰신 봉사단원들의 수고가 아니었다면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

둘째 날은 아리랑TV에서 취재를 했고, 불교방송은 우리와 내내 동행했다. 찌는 듯한 더위에 땀은 비 오듯 흘렀고, 이틀 동안에 수많은 환자들을 진료하느라 더위에 지칠 대로 지치고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그 모든 고통을 잊게 해준 건 역시 봉사가 가져다주는 마음의 평화, 봉사하는 사람들에게서 느낄 수 있었던 공동의 훈훈함이었다. 진료를 마치고 저녁에는 평양냉면집에 가서 한식에 냉면을 곁들여 식사하며 북한에서 선발된 미인들의 춤과 바이올린 연주를 들었는데 아리랑을 연주하는 장면에선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어느덧 3박 5일의 봉사활동을 마치고 인천에 도착하니 가슴 깊이 새벽의 상쾌한 공기와 아카시아 향내음이 우릴 반겨주었고 연둣빛 새순이 아주 오랜만에 만난 것처럼 상큼했다.

환한 미소로 약을 받아들고 돌아가는 갓난아기와 엄마의 모습, 다리 아픈 게 덜 하다며 절뚝거리며 걸어가시던 할아버지의 뒷모습, 뿌연 세숫물과 열악한 환경, 방에서 발견한 도마뱀, 맛있게 먹었던 김치전, 39도의 살인적인 폭염도 모두가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봉사의 과정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의 순수한 열정과 사랑을 느낀 것이다. 특히 이번 봉사여행에 동행했던 대학생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도 큰 소득이었다.

비록 비용은 만만찮게 들었지만 나는 물론 딸아이가 얻은 생생한 체험은 그 비용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었다. 자식에게 물려줄 가장 소중한 가치는 재산과 안락한 환경이 아니라 열정, 소망 그리고 스스로 세상을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체득하는 것이 아닐까.

이번 캄보디아 봉사는 나와 딸에게 좀 더 폭넓은 경험과 열정을 가져준 것만은 분명하다. 집으로 돌아오며 건넨 딸의 한마디가 귀전에 생생하다.

“엄마, 이번 봉사 참 좋았어. 다음에도 같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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