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방황의 날들
상태바
영화 - 방황의 날들
  • 윤종원
  • 승인 2007.08.22 14: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낯선 땅 가녀린 영혼

지난해 세계 최고의 독립영화 경연장인 미국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차지하며 영화계의 주목을 받은 김소영 감독의 "방황의 날들"이 한국 관객 앞에 선다.

데뷔작을 통해 단박에 시선을 끈 김소영 감독의 "방황의 날들"은 저예산 독립영화의 특성과 감성을 담백하게 포용하고 있다. 두 명의 주인공으로 이야기가 압축되며, 카메라는 근거리 관점을 택해 관객과의 밀착력을 높인다. 또한 거친 화면 톤은 불안한 주인공의 심리를 시각적으로 표현해준다.

그러나 무엇보다 겉으로는 심드렁해 보이지만, 치열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미국 10대 이민 청소년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다. 부산에서 태어나 12살에 미국으로 이주한 김 감독의 성장담이 자연스레 담겨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다 주인공 에이미 역에 캐스팅된 비전문 배우 김지선의 연기는 연기라기보다 일상생활을 담은 다큐멘터리 속 주인공으로 착각할 만큼 현실감이 있다. 김지선과 트란 역의 강태구의 연기가 영화의 목표를 분명하게 드러내준다.

조기유학, 또는 어떤 이유에서든 한국에서의 탈출을 꿈꾸며 "아메리칸 드림"을 선택한 어른들의 결정으로 인해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주변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데다 사춘기라는 절박한 시기를 보내야 하는 청소년의 쉽지 않은 성장기가 가슴 아리게 그려진다.

영화는 애써 주장하지 않은 채 그저 에이미와 트란의 일상을 쫓아가는 것으로 대신한다. 툭툭 끊어지는 대화의 짧은 문장 속에 말로는 미처 담을 수 없는 고민이 투영된다.

기교 부리지 않고 소박하게 접근한 감독의 의도는 가슴에 묵직한 돌덩이 하나를 안기는 성과를 거뒀다. 이 영화는 선댄스영화제뿐 아니라 지난해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도 국제비평가협회상을 받았고, LA영화제 "평론가 베스트7"에 선정되기도 했다.

미국에서 엄마와 단 둘이 살고 있는 10대 소녀 에이미는 학원을 다니며 영어를 배우지만 영 흥미가 없다. 늦게까지 일 나가는 엄마와는 꼭 필요한 말만 하게 된다. 그럼에도 에이미는 한국에 있는 아버지에게 "아주 잘 지내고 있다"는 거짓말이 담긴 편지를 쓴다.

에이미 곁에는 친구 트란이 있다. 여자친구와 얼마 전 헤어진 트란과 함께 다니는 사이 에이미는 그를 친구가 아닌 이성으로 점차 느낀다. 트란의 등에 타투를 해주고, 트란에게 말 거는 여자에게 묘한 질투심을 느끼고…. 그렇게 하루하루 시간이 간다.

어느 날 오디오를 훔친 차 안에서 부모에 대한 사랑이 가득 담긴 편지를 본 에이미는 아버지 생각에 울적해지고 엄마가 재혼을 했으면 한다는 말에 더욱 혼돈 속에 빠진다. 거기에 자신의 몸을 만진 트란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도 미묘해진다.

영화는 어떠한 결론도 내리지 않고, 갑자기 화면이 뚝 끊기듯 끝나고 만다. 삶이란 늘 현재진행형.

15세 이상 관람가. 9월6일 개봉.

<연합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