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천년학
상태바
영화 - 천년학
  • 윤종원
  • 승인 2007.04.05 13: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못다 이룬 그리움, 천년학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작품인 "천년학"은 제작 단계에서부터 화제가 됐던 영화다.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거장 감독의 100번째 작품이 탄생한다는 사실은 영화계 안팎의 화제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사건임에 분명했다.

그런데 "천년학"의 내용을 듣게 된 많은 사람들은 이 영화가 임 감독의 1993년작인 "서편제"의 속편 내지 "서편제 2"가 아니냐는 의구심을 품게 됐다.

그도 그럴 것이 "서편제"의 주인공인 송화와 동호가 "천년학"에서도 역시 주인공일 뿐 아니라 "서편제"의 헤로인인 오정해가 송화로 출연하고 "서편제"와 마찬가지로 판소리를 소재로 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두 영화의 감독이 동일인이라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지만 임 감독은 많은 사람들의 이 같은 의구심에 대해 "절대 "서편제"의 아류 같은 영화로 만들지는 않을 것"이라며 "천년학"이 "서편제"와는 다를 것이라고 누누이 강조해왔다.

"서편제"와 다른 점도 있다. 송화와 동호의 양아버지 유봉 역은 김명곤(현 문화관광부 장관) 대신 임진택이 맡았으며 동호도 조재현이 "서편제"의 김규철을 대신했다.

그러나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서편제"의 그것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천년학"에는 "서편제" 이상으로 판소리 장면이 많이 나오며 한 폭의 산수화를 연상케 하는 유장한 영상미 역시 "서편제"의 그것과 닮아 있다.

영화의 줄거리는 "서편제"와 흡사하지만 약간의 변주를 가했다.

남남이지만 소리꾼 양아버지에게 맡겨져 남매가 된 송화(오정해)와 동호(조재현). 서로의 소리와 북장단을 맞추며 자라난 두 사람은 어느새 서로에게 애틋한 마음을 갖게 되지만 동호는 마음 속의 연인을 누나라 불러야 하는 괴로움을 견딜 수 없어 집을 떠나버린다.

몇 년 후 양아버지가 죽고 송화는 눈이 먼 채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게 된 동호는 누나를 찾아나선다.

하지만 엇갈린 운명으로 얽힌 두 사람은 가슴 아린 잠깐의 만남과 긴 이별로 자꾸 비켜가기만 하고 그러던 중 동호는 유랑극단 여배우 단심(오승은)의 유혹에 마음이 흔들린다.

차마 동호 앞에 사랑을 드러내지는 못하지만 선학동 선술집 주인 용택(류승룡)의 한결같은 외사랑도 뿌리치며 판소리가 동호인 듯 노래에만 열중하던 송화는 동호가 단심과의 사이에 애까지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아 모습을 감춰버린다.

송화를 찾아 제주도와 진도 등지를 찾아헤매던 동호는 용택에게서 자신이 미처 몰랐던 송화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영화는 송화를 향한 동호의 염원과 선학동 포구를 날아오르는 학의 이미지를 오버랩시키며 잔잔한 여운을 남긴 채 끝을 맺는다.

임 감독이 ""서편제"가 힘겹게 살아가는 소리꾼 가족의 한을 그렸다면 "천년학"은 힘겨운 가운데 느끼는 사랑 이야기가 핵심 주제"라고 밝혔듯이 "천년학"은 "서편제"와 달리 동호와 송화 간의 못다 이룬 사랑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판소리 장면이 상당히 많이 나오는 데다가 정일성 촬영감독 특유의 유장하고 정적인 영상미가 시종일관 스크린을 수놓아 영화를 보면서 자꾸 "서편제"의 이미지가 오버랩되는 것을 떨쳐내기가 쉽지 않다.

가장 한국적인 문화와 정취, 한(恨)의 미학을 임 감독만큼 잘 표현해낼 수 있는 감독은 찾기 어렵다는 점을 재삼 느끼게 되지만 동시에 "서편제"를 뛰어넘는 뭔가를 기대했던 관객에게는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12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