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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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 윤종원
  • 승인 2007.04.04 1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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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판 영자의 전성시대,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1975년 김호선 감독의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는 가정부에서 여공과 버스안내양을 거쳐 창녀로 전락하는 한 여자의 일생을 통해 산업화의 그늘을 꼬집어내 사회적 충격파를 던진 한편 대중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뒀다.

지난해 일본 영화계를 휩쓴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내용 면에서 "영자의 전성시대"와 닮았다. 중학교 교사였던 한 여자가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학교에서 쫓겨나 가출을 하고, 이후 몸을 파는 일을 하게 된다. 사랑을 갈구했던 여자의 기구한 삶을 다룬 영화다.

내용은 다분히 신파적. 그러나 영화는 놀라울 만큼 현대적 감각으로 관객을 끌어당긴다. 키치적 감각이 농후하며 뮤직비디오와 같은 영상을 통해 신파적 내용을 현대 관객의 입맛에 맞췄을 뿐 아니라 드라마를 구성하는 솜씨도 탁월하다.

암울하고 쓰라린 여자의 삶을 비관적으로 보는 걸 허용하지 않을 만큼 곳곳에 블랙 유머를 집어넣었으며, 사이사이 등장하는 뮤지컬적 요소는 영화의 형식을 풍성하게 만든다.

얼마 전 성황을 이루고 호평 속에 첫 등장을 알린 제1회 아시안필름어워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나카타니 미키의 열연 역시 돋보인다. 그는 설경구 주연의 "역도산"을 통해 한국 관객에게도 낯익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오랜 부진 끝에 최근 활황의 전기를 맞고 있는 일본 영화계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하기에 전혀 무리함이 없을 정도로 일본 영화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유년부터 중년에 이르러 갑작스럽게 이른 죽음을 맞게 된 한 여자의 일생을 담은 영화는 인생이란 뜻하지 않은 일이 연속 벌어지며 상처를 감내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타인의 삶과 가치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그래서 결코 헛된 인생이란 없다는 것에 동의하게끔 설득한다.

또한 아버지의 심리적 부재가 가져온 딸의 상실감이 아프게 그려진다. 그래서 더욱 집착하는 게 누군가로부터의 사랑이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못하다. 그렇게 아픈 삶일지라도 이해할 수 있는 희망을 향해 간다는 게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다.

희망도, 목표도 없이 살아가는 20살의 백수 쇼. 어느 날 들어보지도 못한 고모 마츠코의 일생을 좇아가게 되는 것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중학교 교사 마츠코는 남부러울 것 없다. 교직이라는 안정된 직장에 평범하지만 반듯한 가정에서 자랐다. 그러나 그의 가슴에는 상처가 있다. 병약한 여동생 때문에 자신은 부모, 특히 아버지의 사랑에서 늘 소외돼 있다.

마츠코는 수학여행에서 절도사건에 휘말린다. 마츠코가 담임을 맡은 반의 학생 류가 도둑질을 했다는 게 분명하지만 류는 일관되게 부인한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마츠코의 엉뚱한 행동은 학교에서 쫓겨나는 결과를 낳는다.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마츠코는 집을 나와 작가 지망생과 동거한다. 그 남자는 숨막히는 현실을 마츠코에 대한 폭력으로 씻어낸다. 남자는 자살해버리고 좌절한 마츠코는 그의 친구와 불륜에 빠진다.

그러나 불륜은 불륜으로 그칠 뿐. 마사지걸이 된 마츠코는 몸을 팔며 한때 돈을 벌기도 하지만 그렇게 번 돈을 빼돌린 정부를 살인하기에 이른다.

교도소에서 배운 미용 기술로 미용실에 취직한 그는 평범한 삶을 살려 하는데, 마츠코 앞에 나타난 이는 야쿠자가 된 제자 류. 류는 "선생님을 좋아했기 때문에 도둑질을 했다"는 말을 하고 마츠코와 류는 파국이 뻔한 동거를 한다.

류가 감옥에 가 있는 동안 류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마츠코는 희망을 안고 기다리지만 마츠코의 진실한 사랑에 죄스러웠던 류는 출옥 후 마츠코를 떠난다. 그 후 마츠코의 삶은 피폐하고 황폐해진다. 그리고 마츠코의 죽음은 안타까운 시점에 엉뚱하게 이뤄진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한 여자의 일생을 바라보면서 삶이란 생각보다 무겁지도, 그렇다고 결코 가볍지도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12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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