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록키 발보아
상태바
영화 - 록키 발보아
  • 윤종원
  • 승인 2007.02.02 08: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솔직히 고백컨대 과거의 영광을 떨치지 못하는 나이든 영웅의 하소연일 것이라 지레짐작했습니다. 그러나 비교적 적은 제작비를 들인 이 영화는 과거 어느 작품보다도 더 큰 울림으로 남는군요. 환갑을 넘긴 나이임에도 자신 몸속에 꿈틀거리는 야수를 풀어헤쳐 놓으며 진정한 인생의 승자가 되는 영웅은 바로 록키, 바로 당신입니다.

"빠빠빰 빠빠빰~"으로 시작되는 "록키" 시리즈의 음악은 여전히 귓가에 맴돕니다. 록키는 미국의 영웅이었죠. 베트남 전쟁의 패배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피로해진 미국인에게 1976년 이탈리아 이민자인 록키의 성공담은 미국민을 단숨에 사로잡았습니다. 단지 미국뿐 아니었죠. 전쟁과 가난, 독재에 지친 한국민에게도 당신은 영웅이었습니다.

당신을 만들어낸 건 역시 이민자 출신으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실베스터 스탤론이었습니다. 그는 "록키"를 통해 부와 명성을 단숨에 거머쥐었습니다.

1편의 엄청난 성공은 당연히 시리즈물로 향했습니다. 1979년 "록키2", 1982년 "록키3", 1985년 "록키4", 1990년 "록키5"까지. 갈수록 맥이 빠진 영웅담은 그래서 당신이 마지막이라고 선언했음에도 "록키 발보아"에 대한 기대치를 낮췄습니다.

하여튼 실베스타 스탤론이 만들어낸 또 한 명의 영웅 람보와 당신은 사뭇 달랐죠. 물론 혼자만의 힘으로 버텨나가야 하는 건 똑같지만 록키, 당신 곁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늘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보니 당신의 인생 동반자이자 사랑하는 아내인 아드리안이 몇 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떴더군요.

참 많이 늙었습디다. 당신도, 스탤론도. 그리고 폴리(버트 영 분)도, 듀크(토니 버튼)도. "꽃미남"으로 훌쩍 커버린 록키 발보아 주니어(밀로 벤티지글리아)가 있어 그나마 양로원 잔치가 되지 않았던 건 그나마 다행입니다. 하하.

당신의 추억담을 들으러 오는 레스토랑 손님들을 상대로 당신은 과거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들이 속을 많이 썩이더군요.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아들이며, 당신의 모든 것인 아들은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아버지를 보지 않아야만 그늘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더군요.

매일 아침 아드리안의 묘소에 가 옛날을 추억하고 아들의 고단한 삶을 지켜보던 당신은 폴리에게 고백합니다. "내 몸속에 아직도 야수가 꿈틀거리고 있다"고.

권투를 다시 시작하겠다는 당신을 폴리도, 아들도 말리지요. 그러나 어느새 당신의 친구로 자리한 마리(제랄딘 휴즈)만은 "선수는 싸워야 한다"며 포기하지 말라고 합니다. 당연한 말입니다. 선수는 싸워야지요.

재미를 찾기에 혈안인 스포츠 케이블 채널에서 가상대결을 내보내면서 당신의 권투인생은 멋지게 마무리할 링을 찾습니다. 전 헤비급 세계챔피언인 록키와 현 챔피언이지만 너무나 도전자들이 시시한 까닭에 제대로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팬들의 외면을 받고 있는 메이슨 딕슨(안토니오 타버)과의 가상대결이었죠.

시청자들이 기대 이상으로 반응을 보이니 돈 되는 일엔 재빠른 프로모터들이 나서 실제 대결을 성사시킵니다. 말리는 아들에게 당신은 "얼마나 세게 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맞고도 좌절하지 않고 얼마나 버텨나가고 도전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라며 대결에 응합니다.

당신의 훈련 과정에서 그 유명한 필라델피아 미술관 계단이 또 등장하더군요. 낯익은 그곳이 반가웠습니다. 주인이 버린 개에게 "펀치"라고 이름 붙이며 늙은 당신은 늙은 펀치와 함께 뛰고 달립니다.

그리고 결국 맞대결. 메이슨은 적당히 하라고 하지만 당신은 결코 적당히 할 수 없습니다. 꿈이 있으니까요. 당신의 끈질긴 응전에 놀란 메이슨이 "당신 미쳤냐?"고 대들자 당신은 딱 한마디 "너도 늙어봐"라고 대꾸합니다.

당신의 모습이 가슴 뭉클했던 건 여전히 권투를 잘하는 영웅이어서가 아닙니다. 인생의 세월만큼 많은 것을 받아들였다는 게 당신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녹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링에서 내려온 당신은 아들에게 "We did it.(해냈어)"이라고 말하더군요.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세월을 산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깨달음을 줄곧 보여줬습니다. 평범한 인간으로 살고 있는 당신은 그래서 영웅이구요.

제작비가 많지 않아 마지막 복싱 장면을 찍는데 애를 먹었다면서요? 실제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챔피언 타이틀전에 앞서 진행된 특설무대에서 관객은 아주 자연스럽게 "록키! 록키!"를 연호했고 영화는 상상 외로 쉽게 마무리될 수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서른 번을 넘게 퇴짜맞았던 1편처럼 헝그리 정신을 갖고 찍은 영화이기에 진심이 더 보이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영웅을 다시 만난 감회에 젖어있을 무렵 종료 자막이 올라가며 미술관 계단 위에서 록키 포즈를 취하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이 보이더군요. 서민들의 가장 가까이에 당신이 있었나 봅니다. 서둘러 자리를 뜨려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종료 자막이 다 올라갈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바로 그 계단 위에서 뒷짐지고 먼 곳을 응시하는 당신의 뒷모습이 애잔하면서도 당당해 보였습니다.

15일 개봉.



<연합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