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세번째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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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세번째 시선
  • 윤종원
  • 승인 2006.11.08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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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가 제작한 6편의 옴니버스 영화
소년이 소녀의 볼에 수줍은 뽀뽀를 한다. 그 광경을 지켜본 소년의 친구는 "험난한 인생이 시작됐군"이라며 혀를 찬다. 소녀는 소년과 다른 피부색, 그것도 까만 피부색을 가진 아프리카 흑인이다.

옴니버스 인권영화 "세번째 시선"의 6개 이야기 중 "험난한 인생"(감독 노동석)은 열 살짜리 소년 소녀가 주인공이다. 사립 초등학교 학생 경수의 생일파티에 경수가 영어학원 원어민 강사의 딸 제인을 초대해 모두가 들뜬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경수가 데리고 온 제인은 예상을 깬 흑인. 경수의 엄마는 물론, 경수의 친구들은 까만 피부의 제인을 대놓고 무시하기 시작한다.

인권영화 시리즈의 첫번째 프로젝트에서는 영어 발음을 좋게 하기 위해 아이들의 혀를 수술하는 에피소드("신비한 영어나라")가 있었는데, 이번에도 우리 사회 곳곳을 파고든 영어학원에서 영화는 출발한다. 온 나라가 "영어병"에 걸린 상황에서 원어민 강사, 그 중에서도 파란 눈과 금발의 백인 강사가 각광받는 현실이다.

그런 현실에서 아이들이라고 백인 우월주의에 물들지 않을까. 실제로 방학 등을 이용해 미국 물을 한번이라도 먹은 아이들은 현지에서 인종 차별을 배워 귀국한다. 언어는 문화와 함께 가는 법.

"험난한 인생"은 열 살 아이들의 눈과 입을 빌려 우리 사회에서 너무도 스스럼없이 자행되고 있는 인종 차별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고발한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는 솜씨가 일품이다.

2003년 "여섯 개의 시선"에서 출발, 2005년 "다섯 개의 시선"을 선보였던 국가인권위원회가 세번째 프로젝트를 내놓았다. 개봉에 앞서 전주국제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된 이번 프로젝트에는 "말아톤"의 정윤철 감독과 "버스, 정류장"의 이미연 감독을 비롯, "왕의 남자"의 정진영과 김태우, 오지혜 등이 참여했다.

인권을 이야기해야 하는 영화는 답답하고 비루한 현실을 들춰내야 하기 때문에 관객에게도 만만치 않은 무게의 짐을 떠안기게 마련이다. 그렇다보니 정공법을 택하기보다는 우회적인 방법, 비유나 풍자의 어법을 택한 감독들의 선택이 아무래도 눈길을 끌게 된다.

"선택"의 홍기선 감독은 정공법을 택했다. 사면초가에 놓인 비정규직 근로자의 기막힌 현실을 "나 어떡해"에 담아냈다.

이미연 감독의 "당신과 나 사이"는 TV 드라마를 통해 숱하게 보아온 육아문제를 조명했다. 이 역시 정공법으로 접근하지만 드라마만 봐서는 육아문제를 아내와 엄마의 인권침해로까지 연결시키기 어렵다.

정윤철 감독은 거기서 약간 벗어났다. "잠수왕 무하마드"를 통해 외국인 노동자의 열악한 환경을 조명하면서 주인공만의 낭만을 판타지를 가미해 살렸다.

쌍둥이 형제 감독 김곡 김선의 "밤밤밤(BomBomBomb)"은 제목처럼 폭발력을 갖고 있다. 우정과 "왕따"의 갈림길에 놓인 고등학생의 이야기에 성 정체성이라는 대단히 민감한 소재를 녹여냈는데, 그것을 음악을 통해 풀어낸 방식이 매력적이다.

김현필 감독의 "소녀가 사라졌다"는 10대 소녀 가장의 순정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소녀 가장의 문제는 우리가 생각하듯, 생활이 아니라 짝사랑하는 대학생 오빠와의 이별이다.

23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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