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사랑따윈 필요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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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사랑따윈 필요없어
  • 윤종원
  • 승인 2006.11.0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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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있다. 여자를 사랑하는 게 직업인 남자다. 호스트바의 잘 나가는 호스트. 그러나 그는 "사랑 따윈" 믿지 않는다. 아버지가 스스로 자신의 몸뚱아리를 불에 태워 죽을 만큼 가난으로 인해 힘겨운 삶을 살았던 것을 무심히 농담처럼 내뱉는 남자다.

한 여자가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는 엄청난 재산을 물려줬지만 어린 시절 엄마와 오빠를 사라지게 했던 충격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나마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며 그는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줄 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사랑 따윈" 필요없다고 말한다.

"사랑 따윈 필요 없어"(감독 이철하, 제작 싸이더스FNH)는 올 초 이제 갓 대학생이 된 문근영이 고른 정통 멜로영화라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언제나 귀엽고 발랄할 것 같은 문근영이 가슴 아픈 러브스토리를 선택하자 그의 성장을 엿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시선이 집중됐다.

스크린 속 문근영은 역시 예쁘다. 조금씩 조금씩 성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영화는 부조화의 연속이다. 비현실적인 감각은 관객과 영화 속 주인공들의 만남을 방해한다. 푸른 초원(사실은 녹차밭이다)에 외롭게 서 있는 성채 같은 집이 음산한 분위기마저 자아내며 이질감을 주는 것처럼 영화 속 내용과 사랑에 대한 판타지가 서로의 공간을 내주지 않는다.

하얀 눈의 차가움과 따뜻함, 널찍한 저택의 외로움, 동물적 욕망으로 혼탁한 클럽의 비릿함, 고즈넉한 기찻길에서의 공포와 어두운 도시 뒷골목의 비열함 등 영화의 주요 배경지는 각각의 성정을 띠고 있으면서도 그 감정을 합하지 못한다.

여기서 새삼 확인하게 되는 것. 일본 소설과 만화, 드라마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가 한국에선 그리 성공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점이다. 송혜교 차태현 주연의 "파랑주의보"(원작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는 흥행 참패를 면치 못했으며, 이준기 이문식 주연의 "플라이대디"(원작 "플라이, 대디, 플라이")도 기대만큼의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그만큼 한국과 일본인의 기본적인 정서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사랑 따윈 필요 없어"는 2002년 일본 TBS에서 방영한 드라마 "사랑 따윈 필요 없어, 여름"을 원작으로 한다. 일본 청춘 아이콘 와타베 아쓰로와 히로스에 료코가 주연을 맡아 높은 인기를 누렸다.

사랑을 믿지 않는 잘나가는 호스트와 눈먼 대부호의 딸의 사랑. 설정부터 대단히 비현실적인 이야기는 사랑의 판타지를 현실적으로 보여주려는 욕심 때문에 부조화를 이룬다. 판타지가 판타지로만 그치지 않는 건 김주혁과 문근영의 연기가 사실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김주혁과 문근영의 만남도 그리 조화롭지 못하다. 두 배우의 연기가 미흡하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배역을 충실히 표현했던 것이 부담이다. 비열한 김주혁의 모습은 보기 흔한 게 아니었다. 김주혁은 악랄하고, 돈밖에 모르는 호스트가 됐다. 여기에 문근영은 밝은 표정이라곤 좀체 찾아볼 수 없는 어둡고 침울한 대부호의 딸이다. 앞을 보지 못해 관객의 안타까움마저 사야 해 평소의 문근영의 이미지는 한켠에 놔둬야 한다.

이렇게 친숙한 두 배우가 한꺼번에 생경히 보이는 것은 분명 부담스럽다. 비록 스스로 택한 길이기는 하지만 문근영에게 큰 짐을 지워준 것 같아 안타깝다.

호스트바 아도니스 클럽 최고의 호스트 줄리앙(김주혁 분)은 사채업자에게 빌려쓴 돈 28억7천만 원을 갚아야 한다. 돈을 받기 위해서라면 사람을 죽이는 것도 눈 하나 깜짝 않고 해내는 냉혈한 광수(이기영)에게 쫓기는 줄리앙은 교통사고로 죽은 자신의 운전사 류진이 사실은 대부호의 아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류진의 여동생 류민(문근영)은 아버지마저 잃고 외롭게 살아간다. 병 때문에 시력을 잃은 후 그를 지키는 사람은 이 선생(도지원)뿐. 어느 날 "오빠"라고 찾아온 줄리앙을 심하게 내치려 하지만 무작정 집안으로 들어온 줄리앙에게 오빠가 아닌 남자로서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오빠와 동생으로 서로의 삶에 들어오지만, 두 사람은 서로 갖고 있는 아픔을 들여다보며 서서히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을 쌓아간다. 줄리앙의 정체가 밝혀진 후 줄리앙은 류민을 위해 지금까지의 생활을 송두리째 부정할 만한 계획을 세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관객에 따라 달리 생각할 수 있는 "열린 결말"로 마무리지었다.

9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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