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열혈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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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열혈남아
  • 윤종원
  • 승인 2006.11.01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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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복수 열혈남아

"친구"의 준석(유오성 분)은 "마이 웨이(My way)"를 부르며 자기가 가야 할 길을 정확히 알고 걸어갔다. 그런데 "열혈남아"의 재문(설경구)은 "유 민 에브리싱 투 미(You mean everything to me)"를 부르며 누군가의 사랑을 갈구한다.

둘다 남의 몸을 칼로 쑤시는 악랄한 조직폭력배이고 팝송을 부를 정도로 낭만과 허영심도 있다. 그러나 둘은 전혀 다른 종자다. 준석은 세상의 중심이 "나"지만 재문은 언제든 의지할 만한 "너"가 나타나면 무너질 수 있는 캐릭터다. 그렇기 때문에 재문이 더 독하다. "너"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올 것같이 굴기 때문이다.

"열혈남아"는 세상에 의지할 것이라고는 오직 자기 몸뚱아리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냉혹하고 포악한 "조폭"이 선배의 복수에 나서는 이야기다. 재문은 뻘밭이 펼쳐진 남도땅 벌교로 원정 내려가 죽여야 할 놈 대식(윤제문)의 어머니 점심(나문희)이 운영하는 국밥집을 맴돌며 칼을 간다. 신참 조폭 치국(조한선)과 함께.

그런데 염탐을 하러 찾은 점심에게서 재문은 죽은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한다. 또 점심은 외지에 나가 있는 두 아들 대신 눈앞에 있는 재문에게 살가운 정을 보인다. 둘은 결코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무심함을 가장해 툭툭 던지는 말과 눈빛 속에 서로의 진심이 소통된다. 점심은 재문에게서, 재문은 점심에게서 외로움을 발견하고 조금이라도 그것을 보듬어주고 싶어한다. 역시 자기 식대로.

그러던 중 복수의 날이 찾아온다. 대식이 읍내 체육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부하들을 잔뜩 데리고 고향으로 내려온 것. 재문은 칼을 꺼내 대식을 찾아간다.

영화는 사실 뻔한 구도다. 끝이 보인다는 얘기. 피도 눈물도 없어야 하는 복수가 모성애 앞에서 흔들린다는 설정은, 그것만으로는 전혀 새롭지 못하다. 그런 영화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은 배우들의 빛나는 연기다.

설경구는 재문을 맡아 나와 너의 경계가 없는 연기를 펼쳤다. 저열하고 야비하며 무식한 재문, 그러면서도 나름대로 로망스는 꿈꾸는 재문은 단 한순간도 설경구가 아닌 다른 배우를 떠올리지 않게 한다. 비열한 미소는 물론, "몸이 너무 뜨거워서 그래. 열 좀 식혀줘"라며 다방 아가씨한테 애걸하는 모습에서도 다른 배우가 대체되지 않는다.
여기에 조한선의 성장이 반갑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장동건이 생각날 정도다. 언제까지나 "늑대의 유혹"에만 머물것 같던 이 미남 스타는 머리카락을 바싹 밀어버리고 어눌한 전라도 사투리로 무장했다. 그렇다고 어설프게 어깨에 힘을 준 것도 아니다. 태권도 선수 출신이 조폭이 되려고 할 때 수긍할 만한 사연을 안고 있는 치국은 천성이 순한 놈이다. 조한선의 변신은 버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욕심을, 멋을 버렸기 때문에 그는 기존에 비해 일취월장한 모습을 보여줬다.

나문희의 시골 엄마와 윤제문의 조폭 보스 역시 탁월했다. 둘은 호흡마저 하나하나 계산하고 연기하는 듯 흠잡을 데 없는 연기를 펼쳤다. 특히 윤제문은 그저 설렁설렁 말을 할 때마저도 숨막히는 긴장감을 불어넣으며 설경구와 한치의 양보도 없는 팽팽한 "합"을 이뤘다. 덕분에 둘이 학교 교실에서 마주치는 신은 숨을 꼴딱 삼키게 하고 오금을 저리게 한다.

그런데 여기까지다.

영화는 한 구석도 넘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완벽하게 절제하지도 못했다. 스크린은 울지 않아도 객석을 울게 하는, 절제의 효과를 누린 것이라면 그 파장은 약했다. 차라리 도입부의, 월드컵 붉은 악마의 물결 속 역동적인 살인 장면처럼 중간중간 강약을 줬다면 뻔할지라도 상업적 감수성이 더 자극됐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심금을 울리는 신파가 있고 배우들의 호연이 보태졌는데도 여운이 약하다는 것은 영화가 애초 의도했던 길대로 걸어가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겨울 개펄에서 불어오는 삭풍에도 불구하고 재문과 점심 사이에서 뜨뜻한 것이 올라오는 기막힌 상황은 충분히 가슴에 화상을 입힐 수 있는 소재. 그러나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 없이 아낌 없이 사랑을 주기만" 하고픈 영화의 진심은 꽃으로 피우지 못하고 흩어져 버린다. 점심이 좋아하는 심수봉의 "백만송이 장미"가 말이다.

9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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