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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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길
  • 윤종원
  • 승인 2006.10.3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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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아름다움 담은 길

영화 "길"(제작 이산프로덕션)은 소품처럼 단아하다. 그 만듦새가 꼼꼼하고, 담고 있는 풍광 또한 곱다. 영화 곳곳에 공들인 흔적이 뚝뚝 묻어난다.

영화 "길"은 1980년대를 풍미했던 배창호(53) 감독의 신작. "흑수선"(2001년) 이후 5년 만에 선보이는 작품이다. 2004년 제작된 독립영화로 그해 광주국제영화제 폐막작, CJ아시아인디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됐으나 2년여 만에 어렵게 일반 관객과 만나게 됐다.

"길"은 1950년대와 1970년대를 배경으로 장터를 떠돌며 생활하는 대장장이 태석(배창호)을 통해 용서와 화해를 다룬 작품. 다음 장터로 가는 길에 20여 년간 원수처럼 지낸 친구인 득수의 딸을 만나면서 득수의 장례식을 치르러 가는 과정이 기본 얼개다.

태석은 20년 넘게 무거운 모루(대장간에서 불린 쇠를 올려놓고 두드릴 때 받침으로 쓰는 쇳덩이)를 지고 각지의 장터를 떠돈다. 갈담 장(場)으로 가는 길에 서울에서 내려온 신영(강기화)이라는 여공을 만난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러 가는 길이라는 그녀는 장례식에 어울리지 않게 붉은색 코트에 커다란 "스마일(Smile)" 배지를 달았다.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처녀다.

신영과 동행하면서 태석은 줄곧 옛날을 떠올린다. 세상 누구보다 사랑했던 아내와 절친했던 친구 득수. 그러나 태석은 득수의 배신으로 지난 20여 년간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기억이 떠오르자 치를 떤다. 그리고 신영이 원수 같은 득수의 딸임을 알게 된다.

영화는 "길"이라는 제목에서도 연상할 수 있듯이 로드무비다. 배 감독은 전국을 돌며 눈길오솔길꽃길황톳길염전(鹽田)길 등 아름다운 사계절의 길을 담았다. 김제삼척태백안동왜관변산반도 등에서 낚은 사계절의 풍경은 "봄봄"이나 "메밀꽃 필 무렵" 등 우리 문학에 형상화돼 있는 우리 국토의 아름다운 그대로다. 여기에 얹히는 아름다운 말씨 또한 빼어나다. "하늘은 온통 쪽물을 들인 듯 푸르디 푸르렀어" 등의 대사는 한 편의 시를 읽는 듯하다.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화해와 용서. 배 감독은 인터뷰에서 "영화를 통해 인생의 길 위에서 삶의 상처를 치유하고 고통을 내려놓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내와 고향을 모두 잃게 한 득수의 장례 비용을 대는 태석의 행동이 인상적이다.

영화 속 사랑가(춘향가 중 한 대목)는 이 영화의 백미. 태석이 아내를 업고 부르는 사랑가에는 아내에 대한 깊은 사랑이, 태석의 아들이 어머니를 업고 부르는 사랑가에는 남편에 대한 아내의 그리움과 애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연출뿐 아니라 주인공 태석 역으로 출연한 배 감독의 연기가 눈길을 끈다. 신영 역의 신예 강기화는 연기뿐 아니라 단아한 외모로도 1970년대의 분위기를 그대로 전해준다.

11월2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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