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잘살아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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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잘살아보세
  • 윤종원
  • 승인 2006.09.09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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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풍자 코미디 잘살아보세

가족계획을 놓고 국가가 "애먼 짓"을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요즘 정부가 출산을 장려하겠다고 내세운 각종 정책들-예를 들어 한 자녀 이하 맞벌이 부부에 증세하겠다거나 세번째 자녀 출산에 "푼돈"을 지원한다는 발상-이 얼마나 한심한 탁상정책인지를 정부만 모른다.

김정은이범수 주연의 "잘살아보세"는 지금과는 180도 다른 가족계획 정책이 펼쳐졌던 1972년의 이야기다. 불과 30여 년 전이지만 지금의 정부가 저출산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과 정반대로 당시에는 너무 많이 태어나 고민이었다. 영화는 농촌 아니, "촌"이라 불러야 그 뉘앙스가 더 사는 마을을 무대로 강압적인 가족계획정책이 유발한 웃지 못할 소동을 그린다.

박정희 정부는 1인당 GNP를 올리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무시무시한 표어와 함께 "둘만 낳아 잘 기르자"를 국가 정책으로 펼친다. 이를 위해 보건사회부 직원들은 특히 출산율이 높은 "촌"으로 파견되고 "가족계획을 해야 잘살 수 있다"는 말로 사람들을 설득, 국가의 산아제한정책을 설파한다.

"잘살아보세"는 따뜻하고 코믹한 상황 속에 날카로운 사회 풍자를 녹여낸, 눈여겨볼 만한 작품이다. 실제로 한때 온 나라를 장악했던 현실감 펄떡이는 소재에 위트 있게 살을 붙인 이 영화는 단순히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데 머물지 않고 2006년에도 메아리칠 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어지는 소박하고 순박한 에피소드에 부담 없이 웃다가도 어느새 민초들의 삶을 획일적으로 규격지으려는 정부의 정책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오버 더 레인보우"와 "동해물과 백두산이"의 안진우 감독은 홍수처럼 쏟아지는 "값싼 코미디"와 분명히 선을 긋고 대신 잠시나마 인생과 행복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는 시간을 줬다. 이처럼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계몽" 영화가 또 있었을까. 여기에 김정은과 이범수는 울고 웃기는 코믹 연기의 진수를 보여주며 이야기에 힘을 팍 실어줬다.

전국에서 출산율이 가장 높은 마을 용두리. 주민들은 동네 유지 강씨(변희봉 분)의 땅을 부쳐 먹으며 빚에 허덕이며 근근이 살아간다. 그러면서도 "농사 중 최고는 자식 농사"라는 믿음이 확고하다. 보사부에서 파견된 가족계획요원 박현주(김정은)는 그런 사람들에게 "가족계획을 하면 잘살 수 있다"고 설득하며, 콘돔과 피임약을 보급하려 애쓴다. 그러나 강씨를 비롯한 동네 어른들은 "이 무슨 해괴망측한 짓"이나며 박현주를 쫓아내려 한다.

하지만 죽도록 일해도 여섯 식구 배불리 먹지 못하는 현실에 절망한 변석구(이범수) 등 젊은 층은 하나둘씩 박현주의 말에 동조하며 "잘살아보자"는 희망에 불탄다. 급기야 이 마을은 박현주의 노력으로 가족계획 시범마을로 선정되고, 출산율 0%를 달성하면 마을 부채를 탕감받을 수 있게 된다. 박현주와 변석구는 마을 사람들의 잠자리를 관리, 감시하며 출산율 0%에 도전한다.

영화의 코믹함은 순박하고 무지한 촌 사람들의 캐릭터와 어처구니없는 "잠자리" 관리에서 유발된다. 그러나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상황에서 빚어지는 코미디인 만큼 익히 봐온 "싸구려 말발"이나 "억지스러운 희화화"와는 차원을 달리한다.

과연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가. 영화 역시 정답을 던져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따뜻한 웃음 뒤에 양질의 여운을 남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잘살아보세"는 좋은 영화다.

28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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