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야연
상태바
영화 - 야연
  • 윤종원
  • 승인 2006.09.08 1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햄릿의 중국판, 야연

2000년 "와호장룡", 2002년 "영웅", 2004년 "연인"에 이어 화려하기 그지없는 중국 사극 "야연(夜宴)"이 등장했다. 이 세 편에 출연하며 세계적 스타로 발돋움한 장쯔이가 더욱 성숙한 여인의 향취를 뿜어낸다.

"야연"은 스타일에 치중했던 세 편의 영화와 흐름을 같이 한다. 중국 사극의 화려함과 웅대함이 얼마나 더 그 위용을 드러낼지 부러울 정도다. 여기에 세 편보다 확실한 드라마 구조가 영화의 튼실함을 밑받침한다. 중국판 "햄릿"으로 볼 수 있을 만큼 이야기가 닮아 있다.

"와호장룡"이 차분함과 세밀함으로 중국 무예의 부드러운 곡선미를 드러내며 서양인에게 환상을 심어줬다면, "야연"은 때론 거칠고 때론 부드러운 검무의 완급을 보여준다. 특히 황태자 우루안(대니얼 우 분)이 은둔생활을 하는 곳으로 자객들이 쳐들어가 싸우는 장면에선 "예술 검무"라는 홍보 문구가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정중동(靜中動)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또한 "영웅"이 화려한 색감의 나열로 말 그대로 색의 향연을 보여줬다면, "야연"은 화려함과 소박함을 대비시켜 색채에 비장미까지 싣는다.

이 영화들의 공통점은 중국 무예를 한껏 뽐낸다는 점과 무예 자체에 드라마를 싣는다는 점, 또한 중국이 "대륙"이라는 사실을 실감케 할 만큼 광활한 무대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 당당하게 드러난 원색의 눈부심 등이다.

펑샤오강 감독은 한국에서는 그리 알려지 있지 않지만 2005년 중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감독 1위에 선정됐을 정도로 중국인의 사랑을 받는 감독이다.

배우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장쯔이야 이제 더 이상 설명할 필요 없는 스타. 다소 미비했던 그의 연기력은 연이어 대작에 출연하면서 한껏 물이 올랐다. 소녀 같았던 외모는 26살의 나이만큼 활짝 핀 여인의 용모로 피어나고 있다.

"뉴폴리스 스토리" "80일간의 세계일주" 등에 출연했지만 그간 눈에 띄지 않았던 대니얼 우는 수려한 용모로 여성 팬들의 시선을 한눈에 끌 만하다. 홍콩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그는 서구적 외모와 미끈한 체격으로 두 여성의 사랑을 받는 황태자 역이 결코 과하지 않다.

황제 리 역의 유게 역시 1994년 장이머우 감독의 "인생"으로 칸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할 만큼 연기력을 인정받고 있는 배우. 황태자를 사랑하는 소녀 칭 역의 저우쉰은 올 초 "퍼햅스 러브"로 한국 관객과 만난 바 있다. 청초한 매력이 한껏 드러난다.

영화는 "햄릿"과 비교해 보면 더욱 재미있다. 다만 "햄릿"에서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덜한 거투르드 왕비 시각으로 각색됐다고 여기면 된다. "햄릿"의 묘미는 등장인물마다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각색할 수 있다는 점을 이 영화가 새삼 보여준다.

당나라가 망한 후 혼돈에 빠진 중국 5대10국 시대. 권력 찬탈 사건이 이어진다. 아들 우의 연인 완을 빼앗아 결혼한 황제가 어느 날 죽음을 맞는다. 낮잠을 자다 전갈 독에 물려 사망한 것으로 발표되지만 실은 동생 리에 의해 암살됐다는 걸 세상이 다 안다.

황제에 등극한 리는 절세미인인 형수 완을 다시 황후로 맞으려 한다. 완은 아버지에게 연인을 빼앗긴 뒤 3년째 은둔생활을 하고 있는 우를 불러들이는 조건을 내걸고 황후가 된다. 물론 권력을 향한, 아니 살기 위한 선택일 수도 있다.

리는 암살단을 보내 우를 죽이려 하나 실패하고, 우는 황궁에 들어온다. 우와 완의 애증 섞인 검술 역시 한 편의 춤을 보는 듯하다. 대신의 딸 칭은 우가 완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사랑한다.

황후 책봉식에서 우는 아버지의 죽음을 빗댄 소극을 무대에 올린다. 분노한 황제가 우를 거란족의 볼모로 보내자 황후는 황제를 독살할 결심을 한다. 황제가 마련한 자정의 잔치. 즉 "야연"이 열리고 이곳에서 등장인물들의 비극이 정점을 향해 간다.

우는 왕자 햄릿을, 완은 거투르드 왕비를, 황제 리는 클로디어스왕, 칭은 오필리어스를 연상시킨다. 칭의 오빠는 레어티즈.

영화를 보고 나면 자금성과 경복궁의 차이가 확 느껴진다.

<연합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