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퍼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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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퍼즐
  • 윤종원
  • 승인 2006.09.0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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덫에 빠진 두뇌유희프로젝트, 퍼즐

"유희(遊戱)"란 단어에는 즐긴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 그런 뜻에서라면 "두뇌유희 프로젝트"라는 수식어를 단 "퍼즐"(감독 김태경, 제작 눈엔터테인먼트)은 아쉬움을 남긴다.

장르면에서 "퍼즐"은 한국영화로서는 보기 드문 시도를 한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단순한 스릴러를 넘어서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반전을 통해 허를 찌르려 한다. 그러나 한국영화에서는 보기 힘들었지만 이미 불과 얼마전 "쏘우" 시리즈를 만난 스릴러 마니아층에게는 비교를 피할 수 없을 터.

창고라는 한정된 공간과 범인이 누구인지 모르는 채 당한다는 점, 마지막 반전의 묘미를 꾀한다는 점 등이 "쏘우"를 연상하게 한다. 또한 쿠엔틴 티란티노 감독을 존경해 티란티노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김 감독은 마지막 장면 등을 통해 티란티노에 대한 오마주를 굳이 피하지 않는다. 기존에 텍스트로 보일 법한 영화가 있다면 또 다른 "섬싱 뉴(something new)"를 보여줘야 하는 건 부담이다.

다섯 명의 남자가 모인다. 누군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이가 불러모은 다섯 명은 은행에 예치된 양도성 예금증서를 훔친다. 계획은 모두 정체 모를 X가 세워놓은 것. 인생 막판에 몰린 이들은 돈이라는 절체절명의 목표로 뜻을 규합한다.

사채업자 출신의 환(문성근 분). 그는 X를 대신해 리더를 맡는다. 뒷돈을 받고 창녀촌 뒤를 봐주던 전직 경찰 류(주진모). 창녀촌에서 일하다 지금은 독립을 꿈꾸는 노(홍석천). 사창가에 팔려간 여동생을 구하는 과정에서 킬러 같은 솜씨를 과시하는 정(김현성). 남의 뒤나 캐던 규(박준석).

이들은 솜씨 좋게 X의 지시대로 은행을 털고 호기롭게 비밀 창고에 도착하지만 양도성 예금증서를 현찰로 바꾸고 비행기표를 준비하기로 했던 환이 불에 타 숨져 있다.

남은 네 명은 비로소 정신을 차린 채 이 계획이 결코 돈만을 목표로 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서둘러 자신들이 만난 과정을 유추해 보던 네 명은 창녀촌의 남 사장이라는 인물과 모두 엮여 있음을 알게 된다. 이제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스릴러 영화의 핵심은 긴장감이다.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비교적 촘촘한 구성을 선보였던 영화는 클라이막스에서 갑자기 사그러든다. 인간의 믿음이라는 게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를 보여줘야 하는 상황에서 맥없이 무너지는 것.

범인이 누구인지 유추해 보는 과정이 흥미로울 것이라고 주장한 영화는 사실 범인이 누구인지 결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려 하지만 스스로 쳐놓은 덫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허우적거린다.

14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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