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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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 윤종원
  • 승인 2006.09.0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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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영 강동원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이 세상에 목요일만 있었으면 좋겠다"며 천진난만하게 웃는 남자가 있다. 그리고 그 남자로 인해 "세상에서 제일 아픈 얼굴"로 평생을 살 뻔했던 한 여자가 웃음을 되찾았다. 남자의 손에는 차가운 수갑이 채워져 있고 여자의 손목에는 세 차례 자살의 흔적이 있다. 별로 행복할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이 매주 목요일마다 만났다. 그 사이에서 "그들만의 행복한 시간"이 피어올랐다.

"파이란"의 송해성 감독이 공지영 작가의 동명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기며 다시 한번 멜로 연출의 내공을 과시했다. 그의 전작 "역도산"이 "멜로가 약해 흥행에 실패했다"는 어느 정도의 우스갯소리가 이 영화를 보고나니 새삼스럽게 떠올려지 것을 보면 확실히 "사랑"은 그의 전공인 것 같다.

물론 이번에도 평범한 사랑은 아니다. "파이란"이 사진 외에는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불법 이민자와 삼류 깡패 사이에 흐르는 사랑을 그렸다면, 이번에는 사형수와 자살을 시도하는 여자의 사랑이다. 역시나 기막히게 극단적인 상황.

그러나 송 감독은 전작에 이어 자칫 버거워질 수 있는 극단적인 소재를 대중적인 멜로영화로 요리하는데 솜씨를 발휘했다. 덕분에 절절하고 애틋하기 짝이 없지만 이상하게 예쁜 기운마저 감돌게 된다. 사실 두 작품 다 남녀 간의 사랑이라기보다는 보편적인 인간애를 그린 것인데 그것을 멜로라고 느끼게 하는 것 역시 그의 역량이다.

그런데 미안하게도 이 영화의 최대 미덕은 감독의 연출이 아니다. 주연을 맡은 두 배우다. 이미지로 승부하는 스타에게서 어느 날 연기자의 얼굴을 발견할 때 관객의 기쁨은 배가된다. 선남선녀가 연기까지 잘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것.

다른 무엇보다 이나영, 강동원이라는 두 젊은 배우의 성장이 눈부시다. 둘의 커다랗고 까만 눈망울이 이번처럼 매력적으로, 파워풀하게 다가웠던 적이 또 있었던가. 심지어 그 눈망울끼리 시너지 효과까지 내니, 아무리 단추구멍처럼 작은 눈도 그들을 바라보면 축축하게 젖게 된다.

그것은 영화가 별다른 장치 없이 오롯이 두 배우의 연기와 표정에 의지하는 까닭이기도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둘은 가진 것을 모두 내보여야 했다. 화면 가득 클로즈업 되는 둘의 얼굴은 냉소와 분노, 상대를 향한 가슴 벅찬 사랑과 미안함을 담아내야 했는데 의연하게도 이나영과 강동원은 이에 성공했다.

송 감독이 "두 배우의 진심을 담아낸 연기를 내가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을까봐 걱정"이라고 누차 말했던 의미가 와닿는 지점. 청춘 스타에게 어울리는 말랑말랑한 로맨스가 아니라 녹록지 않은 멜로를 파고들어 그것을 당당하게 소화해낸 둘의 이번 연기는 각자 앞으로의 행보에 의미심장한 방점을 찍을 듯하다.

우아하면서도 애절한 쇼팽의 "이별곡"이 흐르는 가운데 피가 흥건한 살인사건의 현장이 화면에 잡힌다. 세 명의 여자가 죽었고 그 현장에 윤수(강동원 분)가 겁을 잔뜩 먹은 얼굴로 서 있다. 한강 둔치에서 숨을 헐떡이며 열심히 조깅하는 여자가 있다. 그런데 다음 장면, 여자는 자기 차 안에서 갑자기 약을 한 움큼 집어삼킨다. 대학가요제 출신의 미대 강사 유정(이나영)이다.

삶에 전혀 뜻이 없는 윤수와 유정은 유정 고모인 모니카 수녀의 주선으로 매주 목요일 교도소에서 만난다. 대화를 통해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라는 배려. 마지못해 마주앉은 자리였기에 처음에는 서로에게 날을 세우던 둘은 그러나 이내 동변상련의 마음으로 통하게 된다.

"아침 해가 눈부셔 죽고 싶었다"는 유정과 "아침이 제일 무섭다"는 윤수는 고해성사를 하듯 서로를 향해 마음을 비우고 그 대신 따뜻한 사랑을 채워넣는다. 그러는 사이 무심했던 삶은 절실한 것으로 다가오고, 돌덩이 같던 마음 속 응어리는 눈물로 녹아내린다.

"소설은 사형제도 존폐 문제에 더 무게 중심을 뒀지만 영화에서는 그 부분을 뺐다"는 송 감독은 "소통과 구원에 관한 영화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감독은 마지막 교도관의 떨리는 손끝을 잡는 것으로 사형제도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사형수가 주인공이긴 하지만 "데드맨 워킹"이나 "그린마일" 등의 할리우드 영화와는 또다른 지점에 놓인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플라토닉 러브의 모호성을 비켜나가면서도 절절함을 안겨줬고, 묵직한 소재를 다뤘음에도 어떤 청춘 멜로보다도 애틋함을 전해준다.

바꿔 말해 그러한 선택으로 깊이를 놓쳤다 지적할 수도 있다. 감독의 타협 지점을 아쉬워할 수도 있다. 또 소재의 사치성도 눈에 거슬릴 수 있다. 그러나 이 정도만으로도 살아 있기에 누군가를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다는 메시지는 충분히 전해진다.

"살 수만 있다면 이 안(감옥)에서 평생 있어도 좋다"는 윤수의 바람에 더 보탤 말이 있을까.

사족 하나. "나 지금 떨고 있니?"라는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태수(최민수 분)의 사형 장면 이후 가장 슬픈 사형 장면이 탄생했다.

14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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