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노동자, 생명의 은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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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노동자, 생명의 은인이죠
  • 윤종원
  • 승인 2006.07.27 14: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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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 외국인전용의원 개원 두돌..재정 어려움은 난제

"외국인 전용 병원이 아니었다면 아마 우리 같은 사람은 죽었을지도 몰라요"
중국 옌볜(延邊)에 살던 조선족 유영택(47)씨는 2000년 "코리안 드림"을 좇아 한국에 온 뒤 잘 살아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농장과 건축현장 등에서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면서 한푼 두푼 착실히 돈을 모았다.

2004년에는 딸(23)을 데려와 한 대학의 관광학부에 입학시키면서 꿈을 이루는 듯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농장에서 일하던 도중 발을 헛디뎌 6m 높이의 축사에서 떨어져 크게 다쳐 순식간에 병원 침대에 묶이는 신세가 됐다. 안타깝게도 모든 기억을 잃고 말았다.

딸은 아버지의 갑작스런 사고로 공부를 중단한 채 식당 등을 전전하며 생활비와 치료비를 벌어야 했고 아들(16)과 함께 중국에 남아 있던 아내 백애자(45)씨도 남편의 병간호를 위해 아들을 친척 집에 맡긴 채 작년 4월 한국에 왔다.

병원에 입원해 재활 치료를 받던 유씨는 치료비를 제때 내지 못해 7개월 만에 쫓겨날 처지에 놓였다.

그러다 알게 된 곳이 서울 구로구 가리봉1동의 외국인노동자 전용 의원. 유씨는 지금까지 1년 넘게 이 곳에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다.

이 병원에서 유씨는 "살아있는 신화"로 통한다.

사고 직후 일어나 앉지도 못했던 유씨는 꾸준한 재활치료 덕분에 서툴기는 하지만 이제 혼자 걸어 다니기도 하고 대소변도 가리게 됐다. 아직 기억이 온전히 돌아온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사람을 알아보고 간단한 인사말을 건네는 정도까지 회복했다.

아내 백씨는 전에 입원했던 병원에서 "전혀 가망이 없으니 현실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던 것을 떠올리면 너무나 감사할 따름이다.

24시간 남편 곁을 지키는 백씨는 남편의 간호뿐 아니라 같은 병실에 있는 할아버지의 대소변을 대신 받아줄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딸은 최근 여행사에 일자리를 구해 중국인 여행객을 안내하는 일을 하고 있다.

백씨는 "이런 병원이 없으면 우리 같은 사람은 죽는 길 밖에 없다"며 남편의 손을 꼬옥 움켜 잡았다.

유씨 같은 중국동포를 비롯한 외국인노동자의 안식처로 자리잡은 외국인노동자 전용의원은 외국인노동자의 집 대표 김해성 목사가 2004년 7월 설립해 진료와 검사, 입원과 수술 등 전액 무료로 해주고 있다.

문을 연 뒤 이 곳에서 치료를 받은 외국인 노동자는 3만5천명이 넘는다.

병원 행정을 책임 진 이선희 목사는 26일 "병원을 찾아 와 치료받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아지면서 감기나 맹장염 등으로 숨지는 사례가 줄어드는 걸 보면 큰 보람을 느끼지만 요즘 병원을 찾는 외국인 노동자가 크게 늘면서 운영이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병원은 26일 개원 2주년을 맞아 조촐한 기념 행사로 생일을 자축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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