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수필] 진료실 안의 곰 세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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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수필] 진료실 안의 곰 세 마리
  • 병원신문
  • 승인 2024.01.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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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준 씨엠병원 내과 과장(전 한림의대 교수)

매년 받아오던 위내시경 검사를 받다가, 전혀 예상 못한 위출혈로 자칫 불행한 지경까지 미칠 뻔했었다. 응급 상황, 흐려져 가는 정신을 붙들고, 담당 의사의 긴박한 대처에 생명을 맡겼다. 혼미에서 깨어난 정월 초이틀, 문득 곰 세 마리와 골디락스 이야기가 떠올랐다.

옛날 옛적에 곰 세 마리가 숲속 집에서 살고 있었다. 아빠 곰, 엄마 곰, 그리고 아기 곰. 어느 날, 엄마 곰이 아침 식사로 뜨거운 수프를 만들었다. 그녀는 세 가지 크기의 그릇에 수프를 담았다. 큰 그릇, 중간 그릇, 작은 그릇. 그렇지만 수프는 너무 뜨거웠다. 그래서 곰들은 수프가 식을 동안 숲으로 산책하러 갔다. 그들이 산책하는 동안, 한 작은 소녀가 집으로 다가갔다. 이 어린 소녀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금색 머리칼을 가지고 있었고, 모두가 그녀를 골디락스라고 불렀다. 골디락스는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래서 문을 열고 들어갔다. 탁자 위의 그릇 세 개를 보았다.

“아, 배고파!” 그녀가 말했다. 이윽고 큰 그릇의 수프를 맛보았다. “이 수프는 너무 뜨거워.” 그리고 중간 그릇의 수프를 맛보았다. “이 수프는 너무 차가워.” 그리고 작은 그릇의 수프를 맛보았다. 그것은 너무 뜨겁지도 차지도 않고 딱 맞았다. “이 수프가 딱 맞아.” 골디락스는 수프가 너무 맛있어서 다 먹어버렸다.”

영국 헐 요크 의과대학 조안 리브 교수는 ‘환자에게 올바른 진료를 제공하는 골디락스 원칙’을 제시한 바 있다. 과다진단은 불필요하게 환자를 만든다. 질병의 확장된 정의로, 전혀 문제없는 일상 상태를 질병 상황으로 바꾸어 버린다. 검사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지나친 의학적 진단과 치료의 단점을 경계하며 건강과 웰빙에 있어서 더 많은 것이 항상 더 좋은 게 아님을 강조했다.

예를 들어, 문진과 진찰로 충분히 진단이 가능한 질병 상태를 최첨단 의료진단기기로 재확인하려는 행위, 유방암을 근본적으로 예방한다며 특이 병적 소견이 없는 유방의 절제 등이다. 그 폐해를 줄이기 위해, 질병 경험에 관한 개별 맞춤화된 전인적 설명을 기본으로 하는 사람 중심의 의료 구현을 되짚었다. 과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에서, 그는 이를 ‘골디락스 의학 또는 골디락스 의료’라고 칭했다. 곰이 끓인 세 가지 온도의 수프 중,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적당하게 따뜻한 수프를 선택하여 먹고 기뻐한 골디락스를 되새기는 명칭이다.

히포크라테스 선서 안에 들어 있는 맹세 중 하나가 ‘먼저, 해를 끼치지 말라’이다. 의사가 환자에게 해를 가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매력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자칫 진단 및 치료의 기준을 느슨하게 설정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예측할 수 있고 예방할 수 있는 피해를 동반하는 어떠한 시도나 진료를 시작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환자의 질병 상태에 따라, 하나의 의료 과정이 지닌 위험 및 장단점을 정확하게 비교하는 판단이 불가능한 상황이 없지 않다. 검사나 치료가 해를 끼치지 않을지 미리 백 퍼센트 알 수 없다. 실시간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위험과 이익의 추정치가 매우 불확실하고,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 그럼에도, ‘골디락스처럼 해라.’ ‘먼저, 해를 끼치지 말라.’라는 권고를 업신여길 수 없다.

진료실에서 그 무언가를 판별하고 결정하는 주체는 의사다. 변변한 한글 교과서가 없어 영문서적을 교재로 쓰던 대학 학창 시절이었다. 책을 읽다가 심심치 않게 눈에 띄는 ‘의사 마음(physician’s mind)’이라는 말에 몰입한 적이 있다. 진단과 치료 및 예방의 명확한 방침이 아직 명확하지 않은 경우에 잘 판단해서 재량껏 하라는 뜻이라고 여기면서도 연이어 적힌 두 단어는 눈길과 생각을 한참씩 끈끈하게 붙들었다. 의사 맘대로?

‘의사 맘대로’를 달리 이르면 ‘순전한 의사의 자기 결정으로’다. 의업을 천직으로 오십 년 가까운 요즘도 가이드라인으로 꽁꽁 묶인 자기결정성이 손발만 간신히 삐죽 내어 매뉴얼대로만 움직이는 악몽을 더러 꾼다. 그러나 가이드라인과 매뉴얼이 의료를 동이고 우겨 넣을수록, 역설적으로 자기결정성은 그 진가를 낸다.

첨단 컴퓨터, 인터넷 네트워크 등이 쏟아내는 빅데이터가 범람할수록, 인간의 자발적 창의성이 자아낸 예술이 가슴에 더 깊은 울림을 주듯이 자기결정성이 풍성할수록 더 순조로운 치유를 제공한다. 의학지식과 더불어 세상의 대소사가 듬뿍 담긴 자기결정 능력으로 다져진 의료는 무리가 없다.

지침으로 짜인 틀 안팎을 무덤덤하게 드나드는 데이터의 이면에 들어 있는 갈등과 곡절을 직접 간접으로 체험하며, 자기결정성은 튼실해진다. 튼실한 자기결정성은 진료실에서 만이 아니라, 사회와 국가, 더 너른 곳에서도, 의사 맘대로 생명을 고뇌하고, 의사 맘대로 그 고뇌의 값을 매기고, 의사 맘대로 떳떳이 책임지는 선한 꿈을 꿀 자격을 허락한다.

긴급 수혈로 되찾은 의식과 장기간의 보혈(補血)로 회복 시킨 심신. 지금은 진료실에서, 겨울잠을 자고 있을 곰 세 마리와 함께, 청진하고 처방전을 짓고 있다. 더러 비어있는 진료실 틈새에 실체험을 생생하게 채워가며, 처방전 여백에 단어 몇 개를 검지 손가락끝으로 꾹꾹 눌러 적고 있다. 곰 세 마리, 골디락스, 의사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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