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지역·필수의료 살리기, 충북병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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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 지역·필수의료 살리기, 충북병원회
  • 병원신문
  • 승인 2024.01.01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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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석 충청북도병원회장(충북대학교병원장)
최영석 충청북도병원회장(충북대학교병원장)

1990년대에는 재난을 주제로 한 영화가 유행을 했다.

영화 속 주인공은 무지하거나 비합리적인 안전요원이나 관리자들과 맞서기도 하고, 건설비리 등을 탐사하는 기자와 힘을 합치기도 하면서 결국에는 재난으로부터 다수의 시민을 구한다. 

영화 포스터만 봐도 기승전결까지 알 수 있는 진부한 클리셰지만, 지금의 블록버스터들도 화재 대신 외계인, 평범한 지구인 대신 초능력을 가진 슈퍼 히어로로 바뀌었을 뿐이지 사실 자세히 보면 스토리는 비슷하다.

법화경(法華經)은 부처님이 7가지의 예를 들어 제자들을 가르친 내용이라고 하는데, 그 첫 번째 예를 든 상황이 ‘불난 집’이란 인간의 한계상황을 두고, 부모로서 자식들을 불난 집에서 어떻게 구할지를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재난상황은 누구에게나 골칫거리이고, 중간관리자나 정치와 종교에서 해결해야할 문제였으며, 대중들에게도 큰 관심사다보니 예를 들어 설법하고, 소설도 만들어지고, 대작 영화도 만들어지는 것 같다.

2023년에 언론과 정치권의 화두 중에 민생과 가장 큰 연관이 있는 것을 꼽으라면, 출산율 저하로 인구절벽의 상황이 급속히 진행되어 교육계와 산업계에 예상되는 재난상황이 제일 클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지방에서 시작된 필수중증의료의 붕괴와 이에 대한 해법으로 의대증원 논란이 있겠다. 

그런데 지난 30년을 돌이켜보면, 인구소멸 지역에 대학을 인가하고, 사립이나 국립이나 혈세를 투여해 대학을 유지해왔다.

일각에서는 대학의 통폐합을 추진하였지만, 이는 말 그대로 일각일 뿐, 각종 명목과 사업으로 신규 대학과 학과는 늘어나기만 해왔다. 

환자를 살리려고 노력하는 중 발생한 사고로 구속되거나 의사면허가 취소되는 등의 두려움으로 외과, 산부인과 등의 중증의료를 기피하는 문제 또한 30년 전, 즉 인구감소가 우려되던 때와 비슷한 시기에 의료계를 시작으로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당시의 시사프로그램에서도 수차례 다뤘으며, 국회 공청회도 수차례 있어 왔다.

하지만 좀처럼 개선은 되지 않았고 외과분야 특히 중증외상분야는 기피하게 되다보니 10여 년 전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의 총상을 수술한 의사진이 얼마나 부족했으면 당시에 그런 이벤트와 언론의 관심을 끌었고, 그 여파로 중증외상센터를 권역에 한 개씩 건립하는 후속사업까지 생겼을까? 

그만큼 중증외상환자를 살리려고 할수록, 병원은 적자를, 의료진은 고통을 받기 때문이다.

인질범에게서 인질을 구출하려다 실패하였다고 하여 경찰을 처벌하면, 인질을 적극 구출할 경찰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의료사고를 자동차 교통사고와 비슷한 수준의 잣대를 대다보니, 대한민국의 의료사고 형사 기소율이 영국의 900배가 되어버렸다.

출산율 감소와 마찬가지로 지난 30년간 우리는 재난이 닥치는 것을 알면서도 방관하거나 더욱 악화시켜왔다.

그러다 보니, 지금 2024년 1월은 건물에 불이 날까 걱정하여 소방시설을 잘하자 하거나, 건물에 불이 났으니 대피를 요청하거나 119를 부르는 단계가 아니다.

건물에 불이 번질 만큼 번져서 옥상 층으로 대피한 사람들에 대한 구조가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이 상황과 대한민국의 인구소멸과 필수중증의료가 처한 상황은 비슷하다. 

인구감소라는 너무도 거대한 담론은 지역거점국립대병원의 병원장이 다루기 어렵지만, 30여 년간 충북의료를 지켜온 의료인으로서 지방의 필수중증의료 붕괴에 대한 해법은 경험으로 말할 수 있다.

첫째, 생명에 필수적인 의료, 중증질환을 진료하는 의료는 필연적으로 사망률이 높으며 법적 분쟁에 노출되기 쉽다.

자동차보험도 책임보험이 있고 종합보험을 들면 중과실사고도 면책을 해주면서, 사람을 살리려고 잠도 못자며 노력하는 의료진에게 대한민국과 같이 형사소송을 남발하는 나라는 없다.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특례를 하루 빨리 시행하지 않으면, 의대를 졸업하고 필수중증의료를 선택하는 의사의 숫자는 더욱 붕괴될 것이다. 

둘째, 현재 간신히 버티고 있는 중증필수의료진에게 인건비를 국가에서 보장해 주기를 요청한다. 

전공의는 주 80시간 이하를 근무하도록 법으로 보호하면서, 전문의는 주 120시간을 일해도 보호받지 못하다 보니, 경험 많은 전문의가 병원을 떠나고 있다.

국립의대는 정부에서 교수정원을 늘려주지 않아 채용할 정원도 부족하고, 민간병원들도 경증, 감기, 단순교통사고 환자에게 월등히 높게 배당된 의료비 분배로 인하여 의원급에 비하여 병원급 의료기관은 적자의 늪에 허덕이고 있다.

신도심에 미용이나 성형, 또는 각종 의원급 의료기관, 그리고 교통사고 전문 한방병원들은 계속 들어서지만, 서울 명동을 지키던 서울백병원이 적자로 문을 닫는 것처럼 우리 주변에 종합병원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경증응급환자와 중등증의 응급 및 입원환자를 치료하는 종합병원급의 감소는 상급종합병원으로 이러한 환자들이 유입되어 중증환자의 진료를 지연하게 하는 악효과를 유발한다.

그리고 종합병원에서 교육되고 유지되는 의사, 간호사 등의 여러 의료인력들이 갈 곳을 잃게 되며, 이는 결국 지방도시의 소멸로 이어지게 된다.

필수중증의료를 24시간 책임지는 병원급 의료기관의 의료진에 대한 인건비 지원은 지방의료 소멸을 막는 시급한 방법이며, 지방도시 소멸을 막는 데에도 주요한 시책이다. 

셋째, 우리 지역의 더 많은 인재가 우리 지역의 의과대학에서 교육받고 평생을 우리 지역의 의사로서 살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정원이 너무 적은 지역의 의과대학 정원은 다른 지역과 비교하여 수정이 필요하고, 넘쳐나는 수도권이 아닌 지역의 국립의대를 중심으로 지역인재들이 의사가 되어 자신의 고향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지난 2023년 10월 19일 대통령께서 직접 지방국립대병원을 중심으로 필수의료 전달체계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지역책임의료기관으로 암, 이식, 중증외상, 심뇌혈관질환 등의 중증질환을 국립대병원이 든든히 책임지고, 종합병원과 병원급 의료기관과 협력하여 지역의 환자들이 수도권으로 가지 않아도 되고, 지역의료기관이 힘을 합쳐서 최고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지원하겠다고 한다.

올해 4월 총선이란 큰 정치적 행사에 영향 받지 말고, 지방의 병원들이 상생하며 신뢰를 회복하고, 국민을 잘 치료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지원이 하루빨리 이루어져서 가시적인 성과가 지방에 사는 국민들 모두에게 전달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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