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잘한 대책 패키지로 묶어봐야 필수의료 해결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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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한 대책 패키지로 묶어봐야 필수의료 해결 안 된다”
  • 최관식 기자
  • 승인 2023.11.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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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용 연대 보건대학원 교수 “근본적인 틀 바꿔야 하며, 핵심은 보상”
“현 상황 ‘기승전’ 건강보험에서 파생, 파격적으로 보상 강화하면 해결”
11월 28일 그랜드인터콘티넨탈 서울파르나스에서 개최된 ‘제14회 Korea Healthcare Congress 2023’ ‘문 닫는 병원, 사라지는 의료인력’ 포럼을 신응진 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장이 좌장을 맡아 진행하고 있다.
11월 28일 그랜드인터콘티넨탈 서울파르나스에서 개최된 ‘제14회 Korea Healthcare Congress 2023’ ‘문 닫는 병원, 사라지는 의료인력’ 포럼을 신응진 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장이 좌장을 맡아 진행하고 있다.

“자질구레한 대책 몇 가지를 패키지로 묶어서 제시한다고 해서 필수의료 인력부족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근본적인 틀을 바꿔야 합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 단 한 가지의 수단만 선택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보상’이 될 것입니다.”

신응진 순천향대 부천병원장
신응진 순천향대 부천병원장

장석용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 의료경영학과 조교수는 11월 28일 그랜드인터콘티넨탈 서울파르나스에서 개최된 ‘제14회 Korea Healthcare Congress 2023’에서 ‘문 닫는 병원, 사라지는 의료인력’을 주제로 신응진 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장이 좌장을 맡아 진행된 포럼에서 ‘의료자원 배분의 정부실패와 치유 : 정책학의 교훈’ 발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예방의학과 전문의이자 변호사이기도 한 장 교수는 이날 발표에 앞서 의대정원 증원과 관련해 국민의 이해관계를 등한시하는 현 상황이 우려된다면서 “국민의 건강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의료자원개발이 첫 시작이며 그 가운데 의료인력 개발은 모든 단계의 시작이자 의료자원의 중심축을 차지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건강보험이라는 독특한 보건의료체계로 인해 모든 것이 정부의 책임으로 전가된다. 외국은 문제를 시장실패와 정책실패로 구분하나 우리나라는 모든 문제를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절체절명의 상황”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장석용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 의료경영학과 조교수
장석용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 의료경영학과 조교수

장 교수는 또 “우리나라는 인구 1천명당 의사수 2.6명, 한의사를 제외하면 2.2명이지만 절대적으로 적은가에 대해서는 답을 할 수 없고, 상대적으로 적은가를 따지자면 OECD 헬스데이터를 토대로 비교할 때 일본도 2.6명, 캐나다와 미국도 2.8명으로 우리나라가 평균보다 적은 것은 맞지만 주변 나라들과 비교하면 아주 적지는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현재 의사수가 적은 건 부정할 수 없지만 미래에도 적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답을 하기 어렵다”며 “우리나라는 가파르게 의사수가 증가하고 있는 나라로 특히 55세 이상 의사 비중이 26%에 불과해 매우 젊은 축에 속하며, 세계에서 유례 없이 전문의 수가 많은 나라”라고 했다.

장석용 교수는 “우리나라 의료이용량은 OECD의 2.6배 수준으로, 의사수가 늘어나면 경제학의 기본 원리를 따라 비용도 그만큼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특히 우리나라는 의료시장을 조절할 기전이 건강보험의 틀밖에 없다는 점을 한계로 지적했다. 가격은 보험자가 결정하고, 공급이 부족하더라도 시장기능이 작동하지 않아 가격 변동이 없고, 또 원가에 기반한 수가 구조는 의료현장 현실이 반영돼 왜곡되는 악순환이 초래된다는 것.

인력 운용 측면에서도 의사와 간호사 이원화 체계로 유연성이 적고 의사와 간호사 사이의 보조인력이 없으며, 업무상과실치사상죄에 대해 기계적으로 법을 적용해 형사소추 위험이 높은 데다 필수의료 인력의 소득 및 처우 역전 현상으로 인해 새로운 인력 유입을 기대하기 어려운 총체적 난국 상황이 초래됐다는 설명이다. 어렵고 힘들고 위험하지만 소득 및 근무환경은 돈이 되는 전문과에 비해 열악한 데다 과거와 달리 더 이상 의사의 사명과 헌신 등에 의존하기 어려워진 신세대의 인식 변화도 필수의료 인력 부족에 한몫 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현재 초래된 필수의료 인력부족 상황은 이전부터 예견돼 왔지만 정책 집행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수용하지 못하는 정부와 또 대탐소실에 따른 약간의 부작용을 용납하지 않는 국민 정서상의 한계, 그리고 지속적인 정권 교체로 전문성에 바탕을 두고 일관된 정책을 수행하기 어려운 관료, 엘리트 공무원 시스템이 작동하지 못한 것도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더구나 의료계 역시 이 문제에 대해 정부가 모든 대책을 내놓을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학자들도 시장원리 활용을 생각하지 않고 모든 문제를 오롯이 정부가 책임질 것을 성토하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게 됐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최우수 인재가 필수의료 분야로 진입해야 한다. 또 장밋빛 미래와 자긍심을 줘야 한다. 특히 필수의료 분야는 초과 이윤을 허용해도 된다. 국가가 적자가 난다면 그것이 바로 착한적자”라고 강조했다.

장석용 교수는 “정부 정책이 미시적으로만 작동하고 아주 자잘한 것으로 패키지를 만들려고 한다”며 “현재 상황은 기승전 건강보험에서 파생된 만큼 보상을 파격적으로 강화하면 병원장이 움직이고, 병원 내 시스템이 바뀌면 그 분야 인력들의 워라밸이 바뀔 것이며 2차병원도 그러한 보상 속에서 역할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양한 수단 가운데 단 하나의 수단만 택하라면 ‘보상’을 택할 것”이라며 “정부에 대해 파격적으로, 소문이 날 정도의 보상을 제안한다”고 말을 맺었다.

김재화 차의과학대학교 부속 구미차병원장
김재화 차의과학대학교 부속 구미차병원장

이날 토론자로 참여한 김재화 차의과학대학교 부속 구미차병원장은 “우리나라 의료제도는 제대로 된 보상이 이뤄지지 않아 시장원리가 작동하지 않는다”며 “국공립과 민간부문에서 최선을 다해 우리나라 의료를 이렇게 끌고왔지만 이제 코밑까지 물이 들어찬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김 병원장은 현재의 의료전달체계를 냉정하게 잘 분석하고 개선하면 예산 투자 없이 단기적인 해결책이 나올 것이며 또 수련제도 역시 손을 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역시 토론자로 참여한 박익성 가톨릭대학교 부천성모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사고 이후 대한뇌혈관외과학회 주도로 6개월간 조사를 한 결과 전국 155개 병원에서 응급중증뇌혈관질환 치료를 하고 있으며 의사수도 약 400명에 이른다”며 “서울아산병원에 신경외과 의사는 총 22명이나 있지만 뇌혈관질환 응급수술을 수행하는 의사가 단 2명에 불과해서 발생한 문제로 전국적으로 의사 1인당 연간 응급수술 환자는 30명을 넘는 경우가 거의 없어 병원 단위가 아니라 의사단위로 문제의 해결 방법을 찾으면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박익성 가톨릭대학교 부천성모병원 신경외과 교수
박익성 가톨릭대학교 부천성모병원 신경외과 교수

대한뇌혈관외과학회 회장이기도 한 박 교수는 “부천과 인천지역 뇌혈관 수술이 가능한 의사 35명, 병원 13곳에 전문가 네트워크 플랫폼을 마련해 헌신과 소신, 노력을 기초로 시작했고 정부에서도 현실적인 대안으로 받아들여 전문가 네트워크 시범사업을 조만간 시작할 것으로 안다”며 “전국적인 확대는 아직 멀었지만 시범사업과 별도로 학회 차원에서 전국적인 전문가 네트워크를 운영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연간 약 1만8천명의 뇌혈관질환 환자가 발생하며 그 가운데 약 5%인 900명이 전원과정에서 문제가 생기지만 전문가 네트워크를 활성화하면 치명도를 크게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른 토론자들은 전문가 네트워크가 효과적인 대책이라면 시범사업으로 시간을 끌지 말고 바로 시행에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쏟아냈다.

진상인 보건복지부 의료인력정책과 사무관
진상인 보건복지부 의료인력정책과 사무관

이에 대해 역시 토론자로 나온 진상인 보건복지부 의료인력정책과 사무관은 “전문가 네트워크 플랫폼 외에도 시범사업은 정부가 새 사업을 도입할 때 반드시 필요하다”며 “아무리 급해도 그 정책이 성공적으로 안착하려면 시범사업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진 사무관은 “복지부는 평균 2주에 한 번, 적어도 1달에 한 번은 새로운 지원정책들을 내놓고 있다”며 “의과대학생 실습지원, 전공의 술기비용 지원, 간호인력 교육전담간호사, 소아과 전공의와 전임의 수련지원비용 등 정책 기획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또 “지역완결적 필수의료지원대책과 관련해 의료인력 부족 상황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이 문제를 의대정원 증원으로 다 풀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며 “하지만 의대정원은 필요한 방안이며 수요공급의 문제에서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양한 정책패키지를 통해 의료계의 문제 해결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고, 필수의료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보상이 약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충분한 보상을 해서 보상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진상인 사무관은 “필수의료 인력들의 자부심이 필요하다고 뼛속까지 느끼고 있다”며 “정책적으로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의미가 없는 부분은 없으며, 현장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고려하면서 신중하게 정책을 마련하겠다”고 말을 맺었다.

정의석 강북삼성병원 흉부외과 교수
정의석 강북삼성병원 흉부외과 교수

정의석 강북삼성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흉부외과 의사는 휴대전화를 가슴 위에 올리고 잔다. 자부심 하나로 그런 삶의 길을 선택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다. 보상뿐만 아니라 루틴의 삶이 필요하다”며 “향후 키울 사람보다 현재 남아있는 사람을 잘 지키기 위한 대책이 더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흉부외과 전공의가 단 1명이라도 있는 병원은 전체의 48%, 1~4년차 모두 보유하고 있는 병원은 전국에 단 5곳에 불과한 상황에서 진료보조인력조차 유령 취급을 받고 전문성도 인정되지 않아 흉부외과 의사들은 그들의 눈치도 봐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정 교수는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약한 고리인 소아심장 전공자는 25명밖에 없다”며 “생태계를 만들어줘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그간 제도에서 인정 안 하던 것을 현실에 맞춰서 과감하게 인정해야 하며 투자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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