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의료발전을 위한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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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의료발전을 위한 과제
  • 박현
  • 승인 2006.04.19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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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보건행정학과 교수 李奎植
1.새로운 패러다임의 설정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 초의 여러 상황을 먼저 살펴 볼 필요가 있겠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GDP로 따져 세계 제12위, 그리고 무역규모에서는 세계 제11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1인당 GDP가 1만6천 달러에 이르고 있다.

세계 100대 기업 속에 삼성을 위시한 몇 개의 기업이 포진하고 있으며 IT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기술을 자랑하고 있다. 세계화는 상품의 자유교역을 넘어 자본시장까지 자유화가 이루어져 많은 국내기업의 주식이 외국자본에 넘어가 있고 우리도 중국과 같은 개발도상국가는 물론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도 투자를 하고 있다.

자본시장만이 아니라 이제는 서비스시장의 개방을 목전에 두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세계화에 따른 경쟁의 이점을 가장 잘 이용해 오늘의 경제적인 번성을 누려왔던 것이다.

이러한 경제적인 번성은 정치적으로 민주화를 발전시키는 계기가 됐다. 민주화는 우리 사회의 인권을 신장시켰고 다양성과 자율성을 보장하게 됐다.

21세기 초두 우리의 상황은 이와 같은데 의료분야의 상황은 여전히 1977년 패러다임에 머물고 있어 안타깝다. 1977년 패러다임이란 전국민의료보험을 한시라도 빨리 달성하기 위해 짜여진 정책의 틀을 의미한다. 의료보험을 근로자에게만 적용할 경우 보험적용 인구의 높은 의료이용률 때문에 의료수가가 상승하게 되어 보험 미적용 인구인 지역주민은 그만큼 불리해지기 때문에 이러한 불형평을 해소하기 위해 전국민의료보험의 달성이 시급해진다.

소득 파악이 어려운 지역주민에게 의료보험을 빨리 적용하기 위해서는 저보험료는 불가피했다. 저보험료는 저수가로 이어져 오늘에 이르게 됐다.

전국민의료보험의 달성이라는 의지는 어느 결에 의료에 대한 이념적인 시각을 복지적, 분배적인 관점으로 고정시켜 결국 의료의 하향평준화를 초래시켰다.

평준화에 초점을 둔 1977년 패러다임은 전국민의료보험 달성이라는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두었다. 1989년에 전국민의료보험을 달성하고 이미 17년째를 맞이하는 오늘의 시점에서는 21세기 국가 환경에 부합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통해 의료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성을 충족시킬 필요가 있다.

2.현재의 의료체계의 문제점

첫째는 국가 경제의 규모나 운영원리가 바뀌고 정치 구조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의료체계를 지탱하는 패러다임은 여전히 1977년 의료보험을 시작할 때의 수준에 머물고 있어 시대와 맞지 않는 점이다. 1977년 당시는 1인당 소득이 겨우 1천 달러 시대였으며 정치적으로는 유신시대로 반독재 인권투쟁이 형평적인 이념을 불러오던 시기였다.

그러나 무역자유화를 통한 경제발전이 새로운 사회모습을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의료를 이끌어 가는 패러다임이 여전히 1977년 체계에 머물고 있어 의료를 둘러싼 변화하는 환경에 정책이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둘째, 의료체계와 상병구조가 맞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의료체계는 아직도 계층적지역주의(hierarchical regionalism)에 얽매여 1, 2, 3차의 전달체계를 고수하고 있는 점이다. 계층적 지역주의에 의한 전달체계는 상병구조가 급성기 중심일 때 유용한 모델이다.

즉 급성기 질환의 경우 질환의 중증도에 따라 1, 2, 3차의 단계적인 전달체계가 의료자원의 합리적인 이용을 통해 비용절감을 가능케 한다. 그런데 만성질환은 현재의 의료지식으로 병의 완치가 어려우며, 합병증이 없는 한 치료보다는 관리하는 차원에서 의료서비스가 연속성을 갖고 제공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급성기 질환에 부합하는 단절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다.

셋째, 인구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사회보험제도의 지속 가능성이 문제가 된다. 사회보험제도는 1880년대에 고안된 이래 계속적인 변화를 이루어왔다. 초기에는 근로자를 대상으로 상병수당 중심의 급여구조로 시작됐으나 점차 의료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보험급여가 의료서비스 중심으로 바뀌었다. 제2차 대전이후에는 근로자만이 아니라 전국민을 적용대상으로 확대 발전했다.

이것은 사회보험제도가 시대가 바뀜에 따라 제도의 내용도 변화되어 왔음을 의미한다. 최근에는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인해 임금세(payroll tax) 중심의 재원조달 방법으로는 제도 존속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 현재의 사회보험 구조를 보면 보험료 부담층은 주로 20∼49세 층인데 반해 진료비 사용 인구층은 65세 이상 층이 되어있다. 저출산은 보험료 부담층의 인구비중을 감소시키는 반면에 고령화는 진료비 사용 인구층의 비율을 증가시키기 때문에 2020∼30년경이 되면 임금세 중심의 사회보험제도가 지속될 수 있을지 의문이 된다.

3.의료발전을 위한 과제

첫째, 의료를 둘러싼 1977년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의료서비스도 이제는 소비자의 반응성을 제고하는 방향에서 관리되어야 한다. 1977년 패러다임은 의료에 대하여 지나치게 형평적, 재분배적 시각을 견지해 모든 의료기관을 수가가 통제 받는 건강보험 요양기관으로 강제화하고 정부의 규제하에 두었다. 21세기를 맞이해 의료에 대한 이념은 공공재와 사유재가 혼재하는 입장으로 형평위주의 시각에서 형평과 개인적 욕구 충족이 가능한 시장을 조화하는 입장으로 새롭게 정립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의료에서 형평을 추구하는 분야는 사회보장의 범위로 하고 그 이상의 범위에서는 사유재로 간주하여 고급의료의 허용도 가능해야 한다.

둘째, 의료를 보는 소비적인 관점에서만 보는 기본 시각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 의료를 소비적인 시각에서만 접근할 경우 비용통제가 다른 어떤 정책목적보다 우선되기 때문에 정부의 규제가 불가피하다. 세계화의 가속으로 의료도 국가적인 경쟁의 대상이 됐으며 의료도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되고 있다.

따라서 의료에 대해 재분배적인 시각을 넘어서 산업적인 차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특히 의료시장도 국가 경제의 하부 구조에 속하기 때문에 경제 운영논리와 부합되는 경쟁과 개방의 원리가 필요함을 인식해야 한다.

셋째, 정부 개입과 경쟁이 조화를 이루는 의료시장으로 발전되어야 한다. 보건의료분야도 21세기에는 새로운 시각으로 정부와 시장의 균형을 추구해야 한다. 시장실패는 자연독점, 외부효과, 공공재에서 나타나며 외부효과나 공공재가 나타나는 대표적인 분야인 공중보건에 대해서는 정부가 적극적인 대처를 해야 할 것이다. 의료서비스는 자연독점이 지배하기는 어려우며 경제학적 측면에서 볼 때 공공재로 간주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정부 개입의 한계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소비의 외부효과가 지배하는 사회보험분야는 정부의 개입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소비의 다양성과 의료산업의 발전을 위해 사회보험 분야 외의 의료를 허용하고 이 분야에서는 정부 개입보다는 경쟁원리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넷째, 의료의 질 향상을 위해서도 새로운 의료관리의 틀이 필요하다. 의료 질을 유지하기 위한 현재의 서비스 평가제와 같은 정부 개입은 비용만 증가시키고 실효성은 제한적이다. 의료 질의 향상을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비용 부담이 요구되기 때문에 질과 비용을 trade-off 시킬 균형점을 정부가 판단하기보다는 소비자가 판단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것도 중요하다.

다섯째, 의료의 공공성에 대한 새로운 개념정립이 요구된다. 민간병원도 사회보험제도권의 의료를 제공하는 한 공공의료에 속한다. 사립학교 교육도 정부의 규제하에 있으면 공교육으로 간주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사회보험 급여를 제공하는 민간병원을 민영의료로 도외시 해버린 후 공공병원의 확충을 통해 의료의 공공성을 유지하려는 정책을 사용하는 것은 사회적인 비효율만 초래할 것이다. 공공병원 확충보다는 수요의 공공화(공공재정의 비중 제고)를 통해 공공성 확보가 중요하다.

그리고 모든 병·의원을 건강보험 요양기관으로 지정하여 국민의료의 전부를 공공화의 대상으로 둘 경우 의료의 하향평준화를 초래하기 때문에 건강보험의료에서 벗어난 민영의료도 일부 허용하는 방향에서 공공의료와 조화가 필요하다.

여섯째, 건강보험의 발전과 관련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설정이 요구된다. 현재의 통합시스템은 수요의 국가독점체계로 인해 보험재정 문제를 파생시키거나 아니면 의료서비스의 질 문제를 파생시킬 것이다. 건강보험을 단일관리체계로 함에도 불구하고 지역주민의 보험료부과 방법이 직장근로자와 달라 보험료의 적정부과가 어려워 보험료수입의 한계가 나타나며 근로자 계층의 불만은 계속되고 있다. 현재의 임금세(payroll tax) 형태의 재원조달방법으로는 근로자 불만은 물론, 저출산으로 인해 비용부담자의 절대수가 줄게 되어 건강보험제도의 지속 가능성에서도 문제가 있다.

따라서 재원조달에서의 새로운 발상을 요구한다. 그리고 비록 재정통합이 이루어진 상황에서도 건강보험과 관련된 문제의 해결은 경쟁을 토대로 한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한다.

일곱째, 계층적 지역주의에 기초하는 1, 2, 3차의 단계적 전달체계는 폐지하고 새로운 공급체계를 형성해야 한다. 새로운 접근법은 1, 2, 3차 의료가 하나의 공급자에 의해 제공될 수 있는 공급자단(integrated care)을 형성하는 방안이다. 특히 요양보험 시대를 대비해 의료서비스와 복지서비스를 통합 제공하는 공급자단의 출현도 가능하다. 물론 개별 공급자가 독립적으로 서비스를 공급해도 무방할 것이다.

여덟째, 재분배에 대한 다양한 접근책의 사용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재분배는 저소득층에 대한 정부지원이나 사회보험을 통한 지원 등의 직접적인 보조(direct subsidization) 방법만 추구했다. 21세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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