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20년을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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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20년을 돌아보며
  • 박현
  • 승인 2006.04.19 0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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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 약제부 정선회
벌써 병원에서 근무한 지 20년이 되어 버렸습니다. 사람으로 따지면 이제 성년이 될 나이로 무엇을 해도 성인으로 당당히 대우받을 수 있는 나이가 된 것이지요. 무엇인지 대단한 세월을 보낸 것 같기도 하고 이제 중간 성적표를 펼쳐보아야 할 시기가 된 것 같기도 하고 가슴이 뿌듯해집니다.

제가 20년동안 어떻게 지냈을까요? 한번 되짚어 보고 싶습니다. 처음 병원에 첫발을 디딜 그 파릇파릇한 20대 초반, 대학을 갓 졸업했을 때 어떤 일자리를 가질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 앞서 약대 4년에 약사로써 약사고시는 합격했으나 과연 내가 약사인가에 대한 회의가 들어 제약회사, 개국약국 등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이 서울대학교병원의 임상약사 과정인 전공약사시험에 응시하게 되었지요.

전공약사로 입사를 해보니 약대 4년도 고등학교 3년처럼 참 빡빡한 학사일정이였는데 전공약사 1년은 그보다 훨씬 더 강도가 높은 일정의 연속이었습니다. 아침 8시부터 근무를 시작해 저녁 8∼9시까지 약학대학에서 배우지 못한 임상약학, 병원약학, 약물동력학 등에 대한 이론교육과 한 달마다 각 부서를 돌면서 진행되는 업무에 대한 실무교육은 한마디로 충격이였습니다. 실제 사용되는 약물과 학문으로 배운 내용이 이토록 차이가 나다니... 당시 약물학 교과서에서 배운 약물들이 이미 사용이 중지되거나 매우 저조한 약물인 경우가 많았으며 그보다 훨씬 진보된 신약이 이미 그 사용을 대체하고 있었습니다.

예로 항히스타민제로서 기본약으로 배운 diphenhydramine은 이미 시장에서는 사장된 약이 되어 있었지요. 약학대학에서는 질병에 관해 구체적으로 배울 수 없었는데 병원에서의 교육은 약물과 질병간의 관련성이 매우 긴밀하여 질병을 기준으로 약물을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약물학에서 구조 혹은 기능별로 약물을 분류하는 것이 기본이라면 병원에서의 임상약학교육은 실제 치료용도기준으로 약물을 분류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일이였습니다.

그리고 피부과에서의 검진, 산부인과에서의 분만, 내과에서의 뇌척수액검사 등 병동 혹은 외래에서의 실습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많은 기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병원이란 참 생소한 곳 이였는데 이러한 실습을 거치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약사가 되어가고 있는 스스로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1년의 혹독하지만 너무나 소중한 시기가 지나고 처음 정규약사로 발령 받은 곳은 소아조제계였지요. 현재 분당서울대병원의 약제부장님으로 계시는 이병구 선생님이 당시 소아조제과장으로 계셨습니다. 항상 연구하는 자세를 잊지 않으시는 그분의 모습에서 약사전문가로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전공약사로 공부하는 입장에서 업무에 임할 때와는 사뭇 다르게 이제 책임을 지는 현직약사로 일하면서 또 다른 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소아조제계는 산제조제가 많고 내용이 다양해 매순간 긴장의 도가니였는데 전공약사 때는 하지 않았던 약제감사를 처음 할 때는 내가 감사한 약을 환자가 복용하는 것이므로 정확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부담감에 얼마나 짓눌렸는 지 감사를 시작한 날 밤에는 그날 낮에 실수는 없었는지 생각하느라 오랫동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던 기억이 납니다.

소아조제계에서의 근무는 얼마나 많은 어린이가 다양한 질환에 노출되어있는 지 알게 되었고 소아용량 혹은 시럽 같은 소아용 제형의 약제가 많이 개발되고 보다 편하게 아이들이 약을 복용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생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맛이 써서 복용하기 어려운 약제가 시럽으로 개발되고 딱딱한 정제가 마이크로코팅된 캡슐제로 개발되어 복용에 편리해지는 것을 볼 때는 괜히 기분이 좋아지곤 합니다.

이렇게 2년여 소아조제계에서 근무하던 중 지금의 약무정보계 예전의 재고관리과에 발령을 받은 것이 지금까지 이 계통의 업무인연이 됐으며 약 6년여 근무를 하면서 제약회사, 도매상, 약품 예산, 약품 발주 및 공급 등등 약과 관련된 업무흐름을 익히는 계기가 됐습니다.

재고관리과는 조제 및 감사 등 순환업무를 하는 조제계에서의 근무와 다르게 계내 구성원이 서로 다른 업무를 하여 각자의 책임이 확실한 부서였으며 병원에서 사용하는 모든 약품과 약국재료를 공급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저의 업무는 주로 행정업무와 약국재료관리, 약품의 검수관련 업무를 하게 되었는데 이때 유효기간 및 약품재고수준의 유지관리의 중요성을 익히게 되었습니다. 이 당시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도 하고, 첫아이를 낳으면서 분만휴가도 다녀왔는데 담당자의 업무구분이 뚜렷하다보니 공백에 따른 업무부담을 계속 져야하는 업무의 특성 때문에 출근과 동시에 밀린 업무를 해결하느라 허덕였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단촐한 4∼5명의 직원들로 이루어진 재고관리과에서 아직 성숙되지 못한 감정들로 인해 때론 힘들어하면서도 가족같은 분위기로 일할 수 있었던 것은 지금은 일산 국립암센터의 기둥인 정혜진 계장, 서울대병원을 사직하고 열심히 가사에 전념하고 있는 김유은 약사 등의 도움이 컸습니다.

이 당시에 좋은 추억으로는 사무직원으로 근무하였던 분의 소형 프라이드 시승식이였습니다. 새차를 탄 기념으로 전 직원이 소형차에 올라타고 한여름에 드라이브를 하였는데 그 때 마침 밖에 비가 와서 창문을 닫으니 차안의 습기에 의해 시야가 흐려지는데 마침 차에 에어콘이 없어 더운 여름날 히터를 틀 수밖에 없어 차안은 너무 덥고 초보운전에 운전자는 정신이 없는 그 상황에 모두들 얼마나 웃었던 지 모릅니다.

이후 2년정도 입원조제계에서 근무한 후에 보라매병원 약제계장으로 발령이 났는데 그곳의 약제과장은 저보다 1년 먼저 발령 받으신 지금의 상사인 이혜숙 과장이였습니다. 제가 서울대병원에서 근무한 20년동안 이분과 함께 근무한 기간만 12년정도가 되니 60%의 세월을 함께 한 것이지요.

처음에는 무척이나 저와 다른 성격이라고 생각이 되어서 힘들다는 생각도 하였지만 같이 엉겨서 세월을 보낸다는 것이 인생의 호흡을 같이 하는 것과 같아서인지 이제는 눈만 바라보아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게 되는 사이가 되어버렸고 그 긴 인연이 지금의 서울대학교병원 약무과의 약무과장과 약무정보계장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당시 보라매병원 약제부는 250병상의 작은 병원이였는데 직원도 전 약제과가 20명 남짓하였습니다. 서울대병원의 1천300병상, 약제부인원 150여명 규모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지요. 세미나와 교육기회가 적은 것이 흠이였지만 직원끼리 네일 내일 없이 서로 도와주며 계별로 분리가 되어있지 않아 업무의 연계가 원활하게 이루어져서 큰 조직에 비해 스트레스가 많이 없는 편이였으며 타부서와도 상호 협력이 순조롭고 의사들과의 교류도 보다 긴밀했습니다. 우리 아이가 아파서 소아과를 찾았을 때 진료의가 먼저 알아보고 친절하게 응대해주었을 때와 병원 전체 간부진이 오이랑 물 한 병씩을 가지고 관악산 꼭대기까지 완주했을 때는 얼마나 기분이 좋았었던지 모릅니다.

1997년 IMF, 2000년의 의약분업을 거치면서 병원 약제부는 많은 시련이 있었지요. 먼저 약제부 인원의 축소로 그동안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비교적 적은 월급이나 안정된 직장이였던 병원약제부가 여태 한번도 경험해보지 않았던 인력조정의 바람이분 것이지요. 2급 과장님의 무보직 발령에 이어 3급인 저도 제일 젊은 나이의 계장이라는 명분으로 무보직 발령을 받았습니다. 예상치 못한 일인지라 손상된 자존심에 사직을 생각하기를 여러 날 김향숙 과장님, 김귀숙 계장님 등 많은 선배와 특히 손인자 약제부장님의 진심 어린 만류로 이 세파를 견디어나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이 무보직의 위기를 저를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로 바꾸기 위해서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를 생각하며 임상약제외 경제, 경영 등 다양한 분야의 공부를 하려고 노력해 방송통신대의 경영학학부과정을 수료했습니다.

돌이켜보면 2년여의 무보직 기간은 제가 인생을 어떤 자세로 살아야할 것인지를 인지하는데 좋은 거름이 된 것 같고 특히 이 시기에 읽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장편소설은 인생은 장거리경기이며 끊임없는 도전과 응전의 역사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었습니다.

지금 저는 그전에는 약무계와 정보실험계로 나뉘어져있었던 계를 통합한 약무정보계장을 맡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통합된 계인지라 각자의 업무정리가 완벽하게 되어있지도 않고 계원들간에도 완벽한 하모니를 보이고 있지도 않았으나 하루하루 지나면서 눈에 띄게 나아지는 계원들의 업무속도와 협동심에 긴장했던 제 마음도 어느 듯 멋진 계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기대로 봄을 준비하는 나비의 마음이 되고 가고 있습니다.

병원에서는 가장 좋았던 기억을 꼽으라면 병원 QA에서 "약품식별 프로그램 구축"으로 금상을 받았던 것이며 이 프로그램이 잘 정착되어 이제는 진료의가 EMR을 통해 식별결과를 약품사진과 함께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들고 싶으며 가장 존경하는 분이라면 손인자 약제부장님을 들고 싶습니다.

항상 깨어있으며 약제부의 모든 일을 속속들이 알면서 조언해주시고, 어려운 직원에게는 따뜻한 손길을 주시고, 어떨 땐 남자도 하기 힘든 결정을 과감히 감행하시는 체구는 작으시나 속은 웅대한, 모두를 품을 수 있는 분으로 제 평생의 멘토로 기억하고 싶은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병원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대인관계였던 것 같습니다. 업무의 힘듦은 쉽게 견딜 수 있으나 사람간의 관계에서 힘든 것은 사소한 일에도 맘이 상해서 참 많이 울적해지곤 했지요. 불혹의 나이를 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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