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매치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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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매치 포인트
  • 윤종원
  • 승인 2006.04.1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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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앨런의 상업영화, 매치 포인트

포스터만 접한다면 할리우드의 전형적인 상업영화로 느낄 만하다. 미국의 유명 남성잡지 "FHM"이 세계 최고 섹시미녀로 꼽은 스칼렛 요한슨의 요염한 자태가 눈길을 유혹하고, "미션 임파서블3"에 등장할 젊은 배우 조너선 라이 메이어스가 요한슨 못지않은 매력을 뿜어내고 있다.

그런데 우디 앨런 감독이라면 생각이 달라진다. 일단 놀랍다. 우디 앨런이 이런상업영화를 만들다니. 그가 누구인가. 전형적인 뉴요커로서 주로 뉴욕을 배경으로 독특한 키치적 발상이 돋보이는 작품을 소개한 감독이다. 비교적 대중적인 예술영화를 만들어왔으나 완전히 대중적이지는 못했다.

그런 그가 뉴욕을 벗어나 런던에서, 예술영화가 아닌 작심한 듯 상업영화를 만들었다는 게 팬들의 주목을 끈다. 등장인물의 계급도 전작과는 달리 전형적인 영국 상류층이다.

물론 그는 영화 시작과 마지막, 우디 앨런식의 유머를 배치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매치 포인트"는 테니스나 탁구, 배드민턴, 배구 등 구기종목에서 경기의 승부를 결정짓는 마지막 점수를 뜻한다. 그 마지막 점수를 향한 공이 네트에 딱 걸렸다고 하자. 공이 어느 쪽을 향하느냐에 따라 한쪽에겐 승리를, 한쪽에겐 패배를 안긴다. 가장 중요한 순간 운명은 실력이 아닌 운으로 결정된다는 것, "매치 포인트"는 이 명제를 드라마틱하게 풀어내는 영화다.

크리스(조너선 라이 메이어스 분)는 전직 프로 테니스 선수로 투어가 지겨워 테니스클럽 강사로 나선다. 거기서 만나게 된 귀족이자 재벌가 자제 톰(매튜 굿)을 통해 상류사회를 접한다.

크리스는 야심만만하다. 이미 그는 상류사회에 필요한 소양을 갖췄다. 오페라아리아를 들으며 가슴 아파하고, 갤러리를 자주 찾는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몰라도 평전을 읽고 자기 것으로 만든다.

톰한테서 여동생 클로에(에밀리 모티머)를 소개받는다. 클로에와 그의 부모는 똑똑하고 교양 있으며 겸손하기까지 한 톰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런데 그의 운명에 톰의 약혼녀인 배우 지망생 노라(스칼렛 요한슨)가 끼어든다. 노라는 크리스의 원초적 감성을 깨울 만큼 관능적이다. 두 사람의 위태로운 시선이 오간다.

톰의 어머니가 노라에게 모욕을 준 날 상처받은 노라가 빗속을 헤맨다. 이를 발견한 크리스와 노라는 격정적인 정사를 치른다.

아무일 없었던 듯 몇 년의 연애 끝에 크리스와 클로에는 결혼하고, 톰은 노라와 헤어진 후 다른 여자와 냉큼 결혼한다. 시간이 지난 후 우연히 크리스와 노라는 다시 만나고 "위험한 관계"를 지속한다. 크리스는 부와 욕망을 한꺼번에 성취한 셈.

이제 갈등이 시작된다. 아무리 노력해도 아이가 생기지 않는 클로에와 달리 노라는 덜컥 임신해 버린다. 임신과 함께 노라는 크리스를 완전히 차지하고자 욕심을 부린다.

부와 욕망 중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크리스의 결론이 당연하다고 해야 할지, 부도덕하다고 해야 할지.

막바지 도출되는 결말은 영화 첫 장면과 맞닿아 있다.

시사회가 끝나고 난 후 영화 수입사의 마케팅팀은 관객에게 선택을 요구했다. 마치 꾸준한 시청층을 확보하고 있는 한 방송사의 부부 관련 드라마처럼.

당신이라면 상류층 아내 클로에를 선택할 것인가, 사랑의 본능을 일깨운 노라를 선택할 것인가. "예상대로" 클로에에 압도적인 표가 몰아졌다. 이게 우리의 삶?

19세기 남편을 벗어나 당당한 자아로 서고자 했던 입센의 노라와 달리 21세 노라는 되레 남자의 사랑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시대는 역전된다.

우디 앨런은 드라마틱한 내용을 무심한 듯 포착한다. 뚝뚝 끊어내는 전개이지만 오히려 깔끔하다.

13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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