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디 앨런이 또 하나의 뉴욕표 코미디를 들고나왔다. 우디 앨런이 제작, 감독, 주연을 맡은 "할리우드 엔딩."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뉴요커인 이 괴짜는 뉴욕을 온몸으로 끌어안는 동시에 돈만 쫓는 영화판을 신랄하게 풍자했다. 몸집만 크고 알맹이는 없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눈 감고 찍은 영화"로 그리는 것만큼 혹독한 비판이 또 있을까. 영화 속 왁스만은 재기에 대한 욕심과 주변의 맹목적인 도움으로 우여곡절 끝에 눈 먼 상태에서 영화를 완성한다. 그러니 그 영화가 어떻게 나왔을지는 뻔하다.
이런 독한 풍자에도 불구하고 앨런이 "공정"해 보이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비판역시 가차 없다는 것이다. 극중 왁스만은 앨런 자신의 모습을 어느 정도 담고 있다고도 할 수 있는데 "관객 없는 예술은 감독의 자위행위"라는 대사에서 스스로를 검열하고 있다.
나아가 프랑스 영화계까지도 건드렸으니 실로 대단하다. 왁스만이 완성한 영화는 미국 평단에 의해 "쓰레기"로 평가받았지만 프랑스 평단에서는 "최근 50년 동안 보기 힘들었던 최고의 예술영화"라는 얼토당토 않은 극찬을 받는다. 예술영화에 대한 "눈 먼" 추앙 역시 비판한 것. 영화가 2002년 칸 국제영화제 개막작임을 생각할 때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이러한 날카로운 풍자와 함께 영화는 앨런 특유의 수다스러운 낭만주의를 펼친다. 사랑에 대한 예찬, 그리고 젊고 예쁜 여자에 대한 예찬. 감독, 각본, 주연을 맡은 앨런은 실생활에서처럼 극중에서도 나이차가 많이 나는 젊은 여자들과 염문을 뿌린다. 창백하고 소심하고 투덜대는 나이 든 남자지만 사랑에 대한 환상과 욕심은 여전한 것. 그 핑크빛 낙관론 역시 대단하다.
그러나 영화는 이러한 각종 유머와 풍자에도 불구하고 앨런 표 영화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속사포처럼 이어지는 대사는 시간이 지날수록 몰입을 방해하고 이어지는 황당한 상황은 초반의 흥미를 반감시킨다. 그러나 앨런은 행복하다. 극중 왁스만과는 달리 70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음대로" 영화를 찍기 때문이다.
30일 개봉,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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