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보호법 시행 앞두고 병원계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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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보호법 시행 앞두고 병원계 비상
  • 병원신문
  • 승인 2014.07.28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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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번호 수집 불허, 창구서만 가능
환자식별 오류 발생 의료사고 우려

8월7일 개정 ‘개인정보보호법’ 시행을 앞두고 병원가에 비상이 걸렸다.

몸이 불편한 환자들이 진료예약을 위해 병원을 따로 방문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물론이고 자칫 안전에도 치명적인 위협이 가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속속 제기되면서 ‘기관별 의약분업’ 사태에 버금가는 혼란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바뀐 법에 대해 인지하지 못한 환자와 보호자들이 병원의 서비스 퇴보를 성토하며 민원을 제기할 경우 접수창구가 혼란에 빠짐은 물론 예약과정에서 환자의 인적사항을 파악할 수 없어 창구에서 일일이 접수를 받는 과정에서 접수 지연으로 창구 대기와 진료 대기시간이 길어지는 등 환자 진료업무에도 지장이 초래될 것이란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또 병원 간 환자의뢰회송 체계도 와해될 가능성이 크며, 응급환자의 경우 신속한 대처가 어려워져 자칫 의료사고의 발생 위험도 높아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타 의료기관에서 의뢰된 환자에 대한 신속한 진료를 제공하기 위해 운영되는 진료의뢰 또는 의료협력 홈페이지가 무용지물이 될 것이란 우려도 크다.

병원 내 모든 환자정보는 주민번호 체계로 정리돼 있어 진료마비 사태가 빚어질 가능성도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현재 병원의 경우 의료법 시행규칙 제9조와 12조, 14조에 주민번호 수집이 허용되고 있으나 진료접수와 예약에 대해서는 이번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으로 법적 근거가 사라진 셈이다. 

따라서 병원계는 이같은 입법적 공백사태가 지속된다면 환자의 불편과 혼란은 물론 국민건강에도 큰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우선 안전행정부의 지침에 따르면 8월7일부터 홈페이지를 이용한 ‘인터넷 예약’과 콜센터를 통한 ‘전화예약’을 할 수 없다.

인터넷 예약의 경우 병원의 업무편의를 위해 마련된 서비스라기보다는 환자와 내원자의 시간과 비용 절감 등 편의를 위해 제공되는 서비스라는 점에서 예약을 위해 내원이 불가피해진다면 환자의 불편이 초래될 것은 자명하다.

전화예약도 마찬가지다. 내원해서 진행해야 할 예약 절차를 간단하게 전화로 대신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환자의 편의증진에 기여해 온 시스템이지만 앞으로는 병원에서 전화로 예약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이로 인해 가뜩이나 민원이 잦은 병원인근 교통혼잡이 더 심화될 것이란 여지마저 주고 있다.

또 환자편의를 위해 대부분의 예약환자는 진찰료 후수납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모든 초진 예약환자는 원무창구를 경유해야 할 것으로 보여 창구 혼잡도 예상된다.

C대학병원 관계자는 “예약과정에서 정확한 환자정보는 적절한 진료과 배정과 진료에 앞선 검사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만큼 예약도 진료절차의 일부”라며 “의료법에서 진료신청서는 주민등록번호 수집이 가능하게 돼 있으므로 진료신청서의 범위에 인터넷과 전화예약까지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정 개인정보보호법은 ‘주민번호 수집 법정주의’를 신설, 주민번호 처리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3천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주민번호 예외적 처리 허용 사유로는 △법령(법률·시행령·시행규칙)에서 구체적으로 주민번호 처리를 요구·허용한 경우 △정보주체 또는 제3자의 급박한 생명, 신체, 재산의 이익을 위해 명백히 필요한 경우 △기타 주민번호 처리가 불가피한 경우로서 안전행정부령으로 정하는 경우 등에 국한된다.

또 주민번호 유출에 대한 과징금 제도를 신설해 안전성 확보조치를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주민번호 유출이 발생한 경우 최대 5억원 이하의 과징금을 부과·징수할 수 있다.

대표자(CEO) 등에 대한 징계권고 조항도 신설됐다. 법규 위반행위에 따른 안전행정부장관의 징계권고 대상에 대표자(CEO) 및 책임 있는 임원이 포함됨을 명시하고 있다. 

이 법을 병원에 그대로 적용할 경우 발생할 문제점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을 뿐만 아니라 하나하나의 문제들이 환자의 안전에 치명적인 위협을 가할 수 있음은 물론 진료차질을 초래할 여지가 크다는 점에서 병원계는 우려하고 있다.

국내 굴지의 S대학병원 예를 들면 약 430만명의 등록환자 중 이름과 생년월일이 동일한 환자가 10만명이 넘는다. 주민번호 앞자리와 이름이 일치하는 경우가 6명에 이르는 경우도 있고 5명이 주민번호와 이름이 동일한 경우가 11건으로 총 55명, 4명이 동일한 경우가 109건으로 총 436명, 3명이 동일인인 경우도 1천513건, 총 4천539명에 이른다. 2명이 동일인인 경우는 무려 4만9천411건으로 대상자는 9만8천822명이다. 이름과 생년월일 만으로는 개인식별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개인정보가 일치하는 환자들이 환자정보가 바뀐 상태에서 진료 및 검사예약을 했을 경우 검사와 진단에서의 오류는 물론 투약 오류가 발생한다면 환자 안전에 치명적인 위협이 가해질 수 있다. 

이 병원의 경우 병원에 처음 내원하는 신환자의 57%가 인터넷과 전화로 진료예약을 하고 있어 8월7일 이후로는 오프라인 접수창구의 혼란은 물론 주차장과 인근지역 교통정체까지 우려되고 있다.

재진환자라 하더라도 대부분 환자등록번호를 외우거나 환자등록카드 소지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어 주민번호에 비해 활용성이 크게 떨어지는 실정이다. 예약변경이 필요할 경우 기존에는 전화나 인터넷으로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내원해야 하는 불편이 따를 전망이다. 

또 전화예약 시 주민번호를 수집하지 못할 경우 국민건강보험공단 서버를 통한 자격확인이 불가능하며, 공단 건강검진 수진자의 경우도 검사예약에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주민번호를 입력해 공단 서버를 이용하면 환자의 보험자격은 물론 급여제한, 희귀난치질환 여부, 산정특례, 중증대상 등을 사전에 파악해 내원 시 절차 및 방문장소 등을 미리 안내할 수 있으나 앞으로는 내원 전까지 병원 측에서 이같은 정보를 전혀 알 수 없게 된다. 또 공단 건강검진의 경우도 수진자의 검사항목을 서버에서 바로 파악할 수 있으나 앞으로는 검진을 위해 당사자가 내원하기 전까지는 병원 측에서 아무런 준비를 할 수 없어 원활한 검진서비스 제공이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K대병원 전산정보팀 관계자는 “주민번호 없이 진료예약을 할 경우 동일환자에 대해 2개의 환자등록번호가 생성되므로 내원 시 과거병력과 치료기록을 연계한 진료를 할 수 없어 정확한 진료에 어려움이 있다”며 “주민등록번호가 환자등록번호와 일대일 매칭이 되고, 주민번호를 대체할 별도의 수단이 없으므로 인터넷 진료예약도 내원해서 진료예약을 하는 경우로 간주해서 주민등록번호 수집이 가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또 “종합검진의 경우 예약과 동시에 환자등록번호 조회 및 생성 이후 종합검진항목별 처방이 이뤄지지만 내원 당일 처방이 입력되면 검사지연이 초래돼 금식하고 내원한 환자의 불편이 초래될 것이 뻔하다”며 “종합검진 예약의 경우에도 진료절차의 일부인 만큼 주민번호 수집이 가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S대학병원 원무부 관계자는 “병원 환자명부에서 환자를 명확하게 식별하기 위해서는 주민번호를 입력받아 고유식별정보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며 “복잡한 의료정보시스템은 환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요인이 될 수 있어 병원의 경우 예외적으로 본인 확인을 위해 주민번호를 이용할 수 있도록 개선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 소재 H병원 관계자는 “예약접수 시 주민번호가 확인되지 않을 경우 환자의 자격 확인이 어려워 예약일에 막상 내원했는데 진료의뢰서 등이 필요한 분들은 두 번 걸음해야 하는 불편이 초래된다”며 “인터넷 예약 시 ‘환자동의’ 란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하거나 ‘주민번호를 진료목적 이외에는 사용하지 않는다’라는 내용을 확인 후 주민번호를 입력할 수 있도록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또 다른 C대학병원 관계자는 “병원 홈페이지 진료예약접수는 진료목적으로 이뤄지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의료법이 개인정보보호법보다 특별법이므로 이를 인정해 병원은 예외로 주민번호 습득을 인정해 주길 기대한다”고 언급했다. 

이밖에 진료와 건강검진 예약 및 신환자와 등록환자 확인 불가에 따라 진료준비에 차질이 빚어지며, 환자가 내원 시 준비해야 할 사항에 대한 안내가 어려워 진료를 받지 못하고 귀가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고, 접수장소 및 대기장소에 대한 안내도 어려워진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 전문 J병원의 경우 산모수첩과 아기수첩 및 검사결과조회 등 B2C서비스의 개설 자격확인이 불가능하며, 검사결과 인터넷 조회도 어려워져 큰 불편이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각종 진단서 발급과 재발급은 물론 홈페이지를 통한 직원 채용 시 응시자의 개인정보를 수집해 병원 근무가능 여부를 확인하는 것도 어려워진다. 이에 대해 병원계는 의료사업 관련 직원 채용의 경우 주민번호 수집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대안으로 지목되고 있는 휴대전화번호로 개인식별 수단을 대체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휴대전화 번호는 수시로 변경될 소지를 안고 있어 개인의 고유한 정보로 보기 어렵다는 것.

타 업종과 달리 수백만 건의 정보를 보유한 병원에서 주민번호 없이 병록번호를 찾는 것은 쉽지 않으며, 자칫 다른 사람의 병록번호와 매핑이 될 경우 심각한 의료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적어도 병원 만큼은 대상에서 제외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한병원협회 전산정보팀 관계자는 “의료법 및 선택진료규칙에 의거해 진료신청 시 전화 등 통신매체를 이용해 별지서식으로 주민번호를 수집할 수 있다는 법률상 근거 규정이 있다”며 “인터넷과 전화 등을 통해 진료예약을 할 경우 수집할 수 있는 개인정보 중 주민번호 수집은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의료법 제46조 및 선택진료에 관한 규칙 제2조에 따르면 환자 또는 그 보호자가 종합병원·병원·치과병원·한방병원 또는 요양병원의 특정한 의사·치과의사 또는 한의사를 선택해 진료를 요청하거나 그 변경 또는 해지를 요청하는 경우에는 신청서(별지 제1호 서식)를 선택진료의료기관의 장에게 제출하거나 전화 또는 통신매체를 이용해 그 신청을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신청서에는 주민번호를 입력하는 난이 마련돼 있다.

병원협회는 전화 등을 통한 진료 및 검사예약, 예약 변경 및 검사결과 확인 시 환자들의 막대한 불편과 민원이 예상되는 만큼 방문에 의한 진료신청 등과 동일하게 주민번호 수집이 가능하도록 해달라는 건의서를 7월24일자로 정부 당국에 제출했다.

병원협회 전산정보팀 관계자는 “비록 민간자본에 의해 설립된 의료기관이 대부분이지만 당연지정제로 운영되고 있는 국민건강보험의 특수성을 감안, 국민 편의와 정확한 진료서비스 제공을 위해 주민번호 수집이 가능하도록 법의 관용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병원계도 최소한의 정보수집으로 적절한 개인정보보호에 최선을 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주무부서인 안전행정부와 함께 시행부서인 보건복지부가 병원과 관련된 별도의 개인정보보호 지침을 마련한다면 현장에서의 혼란과 의료사고 가능성을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병원협회는 홈페이지(www.kha.or.kr) 자료실 법률정보란에 개인정보보호법과 관련된 가이드라인, 의료법 등 관련 법률자료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병원 관계자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있다. <종합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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