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잠자는 시간마저도 극소화시키며 거의 하루 종일 일에만 매달려 사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을 모두 일중독이라고 비하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특히 CEO급 인사들 중에는 바로 그런 왕성한 활동을 통해 기적에 가까운 위업을 이룬 사람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두바이의 통치자 셰이크 모하메드나 스티브 잡스와 함께 애플을 이끌었던 팀 쿡 같은 사람도 유명한 일벌레였다. 중국의 진시황도 밤늦은 시간까지 잠도 자지 않고 산더미 같은 서류를 꼼꼼히 검토하던 대표적인 일벌레였다. 그가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중국 통일의 그 엄청난 위업을 달성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일중독이라는 표현에는 그에 해당하는 사람에 대한 문제적 인식이 있고 더러는 병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것 또한 공연히 발생한 것은 아니다. 일중독의 영어표현 워커홀릭(Workaholic)은 미국의 경제학자 오츠가 처음 사용한 말로서 일(Work)과 알콜중독(alcoholic)을 합성하여 만든 조어다. 마치 알콜 중독자가 술을 마시지 않으면 공연히 불안하고 소외감을 느끼는 것처럼 오직 일에 휩싸여 있을 때에만 안정감을 느끼며 일에서 벗어나면 마치 무장 해제된 것처럼 무력감에 빠지고 정체성에 심각한 혼선을 겪는다면 이는 병적인 것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꼭 일중독에 대한 경계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나는 종종 조직 후배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제법 진지하게 들려주곤 했다.
"일에는 자기 관심의 80% 정도만 투입하는 것이 좋다"
인간은 어차피 일만 하는 존재가 아니고 조직에만 얽매여 사는 존재가 아니다. 일과 조직만이 자기 삶의 모든 것이나 되는 것처럼 살아도 인간다운 삶이 보장된다면 나도 구태여 자기 관심의 80%만 기울이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일 이외에도 가정이 있고 이웃이 있고 우정과 사랑이 있고 예술과 문화가 있고 사회와 국가가 있는 것이다. 그것들이 그 나름대로 필요한 역할을 하고 몫을 할 때에만 일도 조직도 원활히 움직이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모든 일에는 마취효과가 있다. 특히 농업이나 제조업 등 단순 작업이 가지는 마취 효과는 결코 만만치가 않다.
20%의 여지를 남겨 일과 조직 이외의 이런 관심사들이 건전히 유지될 수 있을 때 균형된 자아가 형성될 수 있고 그 균형된 자아를 바탕으로 일도 조직도 더 건강한 모습으로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임의로 정한 20%이지만 그 영역이 일과 적절히 교호할 때에만 인간도 사회도 건전하게 유지된다는 것을 유념할 필요는 크다.
사람은 보통 40세 전후에서 사회적 존재로서의 정체성을 가장 강하게 느낀다. 그래서 그 어간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 중독자가 되고 자신을 철저히 사회적 관계에서만 파악하게 되고 거기에서만 힘을 느끼거나 무력을 느끼고 더 나아가 그 좁은 사회에서 신분 상승의 욕구도 갖게 되기 쉽다. 심지어 어떤 이는 그런 일 중독 상태에서 가정의 파탄을 맞기도 한다. 직무적 관계 이외의 모든 관계가 무화되면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도 무리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옛 사람들도 이렇게 노래한 것이 아닌가 한다.
두 이랑의 밭이 많지는 않으나 그 절반은 꽃을 심으리로다
(二頃無多 半種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