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정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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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정로환
  • 최관식
  • 승인 2004.12.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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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중·고등학교 시절, 여름철만 다가오면 걱정이 앞섰다. 바로 만성 배탈·설사 때문이었다. 날씨가 조금 더워진다 싶으면 여지없이 배탈을 동반한 설사가 시작됐고, 그 증상은 더위가 물러갈 때까지 서너 달 지속됐다.
그렇게 몇 년째 고생을 거듭하던 어느날 어머니가 낯선 약을 한 병 사오셨다. 속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짙은 고동색 병을 여니 소독약 냄새와 한약 냄새 등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낯선 냄새로 범벅된 환제가 들어 있었다.
화장실을 수도 없이 들락날락하느라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그리 기대 없이 약을 먹고 10여분 후, 거짓말처럼 배가 말짱해지는 것이었다.
그날 이후로 더 이상 여름철 배탈·설사는 걱정하지 않고 살아왔다. 물론 지금까지 집에 그 약이 떨어진 적은 없다.
그 약의 이름은 바로 동성제약의 "정로환"이다. 최근에는 전통적인 병포장에서 탈피, 휴대와 보관·복용이 간편한 당의정도 함께 출시되고 있다.
이처럼 배탈·설사에 즉시 효과를 발휘하는 정로환은 장기능이 약해 활동에 제약을 받던 나에게 한편으로는 은인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정로환이 이처럼 뛰어난 약효로 지금까지 국민들로부터 사랑 받는 비결은 바로 배탈·설사의 종착지라 할 수 있는 화장실에서 태어난 배탈치료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동성제약 창업주 이선규 회장(78)은 일본 다이코신약 퇴직 공장장을 찾아가 어렵사리 제제기술을 배워 지난 1972년 봄 국내 제약사로는 처음 정로환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20여개가 넘는 타 제약사에서 유사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에 이 회장은 곧바로 상표등록을 통해 유사제품 생산에 쐐기를 박은 후 그 해 여름 전국 해수욕장의 공중화장실을 뒤지기 시작했다.
정로환의 뛰어난 약효에 확신을 가진 이 회장은 어떻게 하면 국민들에게 좀 더 효과적으로 이 약을 소개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이같은 "엽기적"인 방법을 택한 것이다.
한 곳에서만 며칠을 보내며 설사환자 수와 설사유형, 설사량 등을 조사한 뒤 또 다른 해수욕장으로 자리를 옮겨 똑같은 일을 반복했다. 집을 떠나 낯선 곳에서 물을 마시면 배탈을 일으키기 쉽고 배탈이 나면 설사를 하게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천태만상인 설사의 유형을 충분히 조사한 이 회장은 정로환의 광고 컨셉트를 "배탈·설사"로 잡았다. "배탈·설사엔 정로환"이라는 카피가 바로 그것이다.
이 광고문구는 적중했다. 정로환은 발매 첫해에 무려 50억원 어치가 팔려 나갔다. 남들이 모두 기피하는 화장실을 뒤져 얻은 아이디어 하나가 정로환을 "효자상품"으로 키운 셈이니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로환은 한 때 식초에 녹여 사용하는 무좀약으로도 애용되면서 브랜드 인지도가 더 높아졌다. 동성제약은 이에 더해 약 표면에 당의를 입힌 "정로환 당의정"까지 출시했지만 최근 들어 연매출이 불과 30억원에 머물면서 화려했던 과거의 영화를 되돌리지 못하고 있다.
동성제약은 이를 정로환과 정로환 당의정 상표권을 둘러싼 타 제약사와의 지리한 법정싸움과 그 과정에서 빚어진 출혈경쟁 때문이라 보고 있다.
또 매년 수십 여종의 정장제나 유산균제가 우후죽순처럼 난립하면서 과당경쟁을 벌여 온 것도 한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정로환은 크레오소오트라는 살균성분과 지사작용을 하는 황련, 진경·진통작용을 하는 감초, 진정작용을 하는 향부자, 가스제거작용을 하는 진피 등 각종 생약제제가 들어 있어 위장 기능 촉진에 특효를 보이는 약이었다.
복용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증상이 가라앉는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장기복용을 필요로 하는 신의약품보다 효능이 우수한 편이었다.
이처럼 뛰어난 약효를 가진 정로환은 일제 침략기부터 널리 알려진 배탈·설사의 명약이었다.
정로환이란 이름에서도 이미 드러나 있지만 이 약은 1904년 2월부터 1905년 9월까지 치러진 러일전쟁과 깊은 연관을 갖고 있다.
일본군은 당시 대제국 러시아의 세력을 중국에서 몰아내기 위해 만주를 무대로 한 판 승부를 벌였다.
그런데 전쟁에 출정한 건강한 일본군이 싸움에 나서기도 전에 며칠만에 죽어나가자 그 원인을 살펴본 결과 만주의 수질이 나빠 생긴 설사 때문이었다.
이 사실을 보고 받은 일왕은 전국에 칙명을 내려 배탈·설사를 멈추게 하는 좋은 약을 만들어 낼 것을 주문했다.
당시 일본 제약사들은 앞을 다퉈 약을 만들어 바쳤는데 그 종류가 무려 수천 가지에 달했다. 그 가운데 다이코신약에서 만든 약의 효능이 가장 우수해 이 약을 복용한 군인들이 더 이상 배탈·설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후 일왕은 이 약의 이름을 "러시아를 물리치는 데 공이 큰 약이었다"며 칠정(征)자와 러시아를 의미하는 이슬로(露)자를 사용해 "征露丸"이라 이름 지었다는 것.
30여년 전만 해도 어릴 때 배탈이 나면 할머니나 엄마가 배를 쓸어줬다. 물론 효과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배를 쓸어주는 것 외에는 마땅히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로환은 이처럼 손바닥에 의지하며 고통을 감수해야 했던 어린 시절의 배아픔을 마감하게 해 준 명약이다. 그로 인해 정로환을 곧잘 "엄마손"에 비유하는 것도 믿기 힘들만큼 뛰어난 약효에 기인한다 하겠다. <최관식·cks@kh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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