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 때마다 재검사 말도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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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 때마다 재검사 말도 안돼
  • 박현
  • 승인 2009.11.03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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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계, 재검사는 과잉진료로 삭감이 의료현실
세브란스병원에서 유방암 조직검사 결과 암으로 진단받아 전원한 환자를 재검사 없이 암 제거수술을 한 서울대병원의 과실이 인정된 판결에 대해 의료현실을 무시한 판결이라는 지적이다.

타 병원에서 전원된 환자의 수술을 위해 수술부위와 암 덩어리의 크기를 확인하기 위한 초음파검사나 MRI검사 정도는 있지만 모두 재검사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타 병원 검사결과와 의료진의 판단을 신뢰하기 때문에 종합전문병원에서 전원한 환자의 암 조직검사를 다시 하는 경우는 없다. 심평원도 검사를 다시 할 경우 과잉진료라며 매년 수억원의 진료비를 환수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서울고등법원은 세브란스병원에서 전원한 환자를 재검사없이 유방암 절제술을 실시했다고 서울대병원의 과실을 인정했다.

그리고 치료비와 위자료, 노동력 상실비용 등으로 환자에게 5천1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고법은 의사의 진단 주의의무와 서울대병원으로 전원한 이유가 정확한 암진단을 다시 받기 위한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료계에서는 이 같은 고법의 판단을 대법원에서 수용할 경우 의료현실을 뒤흔드는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크게 우려했다.

지난 2일 서울의대암연구소 이건희 홀에서 개최된 제6회 함춘포럼에서 이 같은 의견이 모아졌다.

주제발표에 나선 대외법률사무소 김석운 변호사와 서울의대 외과 박규주 교수, 의료와사회 포럼 우봉식 대표는 법원이 "재검사=과잉진료"라는 의료현실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석운 변호사는 "3차병원의 진단결과를 의심해 새롭게 모든 검사를 다시 하라고 판결하면 간접적으로 병원은 유사한 사례의 모든 진단을 다시 해야 하는 압박을 받을 것"이라며 "결국 국민건강보험법령상 과잉진료 금지의무를 위반해 행정법상 위법상황이 초래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과잉진료 의무를 위반해 진료하고 처방하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불법행위로 판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의대 박규주 교수는 "대다수 암환자는 3차 의료기관 내원시 조직검사 결과를 가지고 오며 병원은 이 조직검사를 바탕으로 수술을 시행하고 있다"며 "고법의 판단대로 라면 다른 병원 전문의 판독을 신뢰하지 못해 병원마다 재검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와사회 포럼 우봉식 대표는 "정부가 건강정보보호진흥원을 설립하면서 연간 4조원의 중복검사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며 "고등법원은 이 같은 정부의 설명과 상반된 판결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조직검사에서 확인된 사실을 매번 다시 검사해야 하는 것은 의학적으로도 문제다"고 주장했다.

반면 녹색소비자연대 조윤미 상임위원은 "환자가 세브란스병원에서 전원하는 과정에서 암 여부를 재검사하겠다는 의지가 충분히 있었다"며 "환자가 어떤 검사를 해야 암 여부를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의사는 조직검사를 다시해야 한다는 것을 알렸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 사건과 관련 1심에서는 개별 병원에 대해서도 의료행위와 신뢰의 원칙을 인정해 세브란스병원의 과실만 인정했다. 하지만 2심에서는 신뢰의 원칙을 인정하지 않고, 단순히 재검사를 하지 않은 과실만 인정해 세브란스병원과 서울대병원의 과실을 인정했다.

특히 환자가 서울대병원으로 전원한 이유를 "세브란스병원의 진단결과를 믿지 못해 유방암 여부를 다시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을 2심 재판부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반면 서울대병원 측은 "세브란스병원에서 유방 전체를 절제해야 한다고 해 유방 절제범위를 정확히 진단하기 위해 전원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김석운 변호사는 "이는 굉장히 중요한 사실"이라며 "이에 대한 정확한 사실관계와 증거를 가지고 판단해야 하는데 고법이 직관적인 판단을 했다"고 지적했다.

박규주 교수도 "고법은 외과적 의료행위가 100% 확증된 근거를 요구하고 있지만 수술은 최종적인 암이라는 결과가 나와야 하는 것은 아니다"며 "이 환자는 유방촬영이나 초음파, MRI 소견에서 유방암 소견이 있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고법이 의학적인 판단을 고려하지 않고 재검사를 하지 않은 이유로만 과실을 인정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대법원 판결에 앞서 서울대병원이 2심 재판부가 의료현실과 동떨어진 판단을 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향후 판결에 어떤 영향을 줄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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