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번호 없다고 응급의료비 대불 거부
상태바
주민번호 없다고 응급의료비 대불 거부
  • 김완배
  • 승인 2008.08.21 11: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병원, 응급의료 관한 법률취지에 어긋나 행정소송도 불사
병원 응급실에서 응급치료를 받은 후 환자가 도망가면 진료비는 어디서 받아야 할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응급환자가 주민등록번호가 말소돼 신원파악이 어렵다는 이유로 병원의 응급의료비 대불(代拂)청구를 거부해 병원의 반발을 사고 있다.

올 1월22일 낮선 사람에게 맞아 두통과 안구이상 증세을 보인 김 모씨(여)가 부산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병원은 CT와 안과 검사를 했으나 환자는 치료비를 내기 힘든지 아무 말도 없이 병원을 나갔다.

병원은 수소문 끝에 이틀후 주거지를 알아내 찾아갔으나 김 모씨는 수십년전 전 남편과 이혼, 부산에서 피신생활을 해 왔으며 그동안 주민등록번호를 전혀 사용치 않아 기억조차 하지 못했다. 병원은 이같은 사실을 동거인에게서 확인한 후 환자 본인이 직접 자필로 의료비용 미수금 미납확인서를 작성토록 하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응급의료비 대불금을 지불받을 경우 심평원에게 의료비를 상환하겠다는 내용을 작성, 서명날인까지 했다.

병원은 이같은 사실을 근거로 지난 3월19일 심평원에 응급의료비 대불을 신청했으나 심평원은 ‘신원이 파악되지 않은 응급환자의 경우 대불이 불가하다’며 대불신청을 병원에 돌려보냈다.

병원측은 심평원의 이같은 결정에 대해 “응급환자의 신원이 파악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대불을 할 수 없다면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거세게 반발하며 행정소송까지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법과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서 의료기관에서 신원이 파악되거나 파악되지 않은 모든 응급환자에게 적극적인 응급의료를 하고 진료비를 받지 못한 경우 응급의료대불청구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은 ‘응급의료를 요청받거나 응급환자를 발견한때에는 즉시 응급의료를 행하도록 하고 정당한 사유없이 이를 거부하거나 기피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심평원측은 ‘응급대불제도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의해 시행되고 있으며 무료가 아닌 응급환자에게 빌려주는 것(대불)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대불제도 취지상 응급환자의 주민등록번호가 기본적으로 확인돼야 하고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 행려환자로 책정받아야 할 것’이라며 대불청구 반려 사유를 밝히고 있다.

심평원은 또 ‘현재 환자와 그 보호자의 행방을 찾을 수 없거나 무연고 사망자 등 환자의 신원을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 의료기관의 장의 확인서를 첨부하면 응급대불을 인정하고 있으나 일부 주민등록번호조차 없는 경우 환자의 실체를 확인할 수 없고 이를 인정할 경우 허위청구 등 부청청구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점, 대불제도가 무료진료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는 점 등을 내세워 인정할 수 없다는 방침을 밝혔다.

보건복지부도 ‘응급의료비 미수금 대불제도는 진료비 지불능력이 없는 취약계층의 응급의료를 국가가 보장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이나 상환을 전제로 대불해 주는 것으로 신원이 파악되지 않는 경우 지원이 어렵다’며 심평원과 같은 입장이다.

이에 대해 병원측은 “환자의 주민등록번호가 말소돼 보호자에게 미납확인서까지 받았는데도 응급대불금을 줄 수 없다는 것은 이해가 안된다. 병원이 신원조회 기관도 아닌데 응급환자를 대상으로 주민등록번호 확인을 일일이 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너무 많다. 주민등록번호가 말소됐다는 이유로 모든 사람을 행려환자로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반문한다.

“어떤 경우는 부산과 서울 교통비도 안되는 치료비 6만8천원을 청구하기 위해 미납확인서를 받으러 서울로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제도 취지에 걸맞은 시행방안을 찾아 생명을 지키고자 하는 의료기관에게 피해가 있어서는 안됩니다”.

이와관련, 대한병원협회의 법률자문을 의뢰받은 박승서 변호사는 “응급의료비용에 대해 환자가 우리나라 국민인 이상 신원확인이 되지 않았다는 사유로 대불금 지급을 거부할 아무런 법률상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