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운’ 감도는 의료계…3년 전 파업보다 더 큰 불행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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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운’ 감도는 의료계…3년 전 파업보다 더 큰 불행 ‘경고’
  • 정윤식 기자
  • 승인 2023.10.18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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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7일 긴급 의료계 대표자 회의 이후 결의문 통해 ‘총파업’ 언급
이필수 회장 집행부 전원 사퇴 각오 ‘배수진’…신뢰 깨면 ‘강경 대응’
의료현안협의체 논의 가능성은 열어둬…정부 발표 미뤄질 가능성도
긴급 전국 의료계 대표자 회의 전경.
긴급 전국 의료계 대표자 회의 전경.

“2020년 파업보다 더 큰 불행이 닥칠 수도 있다.”

의료계가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의지에 ‘분노’로 응답했다.

정부가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그것도 9·4 의정합의까지 파기하고 강행한다면, ‘총파업’까지 불사하겠다는 대답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이필수 제41대 집행부 전원 사퇴의 각오로 반드시 정부의 독단적인 결정을 막아내겠다고 다짐했으나 향후 의료현안협의체를 통한 논의 가능성은 열어뒀다.

의협은 10월 17일 의협회관 지하 1층 대강당에서 정부의 의대정원 확대 대응을 위한 ‘긴급 전국 의료계 대표자 회의’을 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의대정원 확대계획을 조만간 직접 발표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서울특별시의사회, 대한개원의협의회, 의협 대의원회, 전국시도의사회장협의회 등이 연달아 반대 성명을 내고 박인숙 전 국회의원,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 주수호 미래의료포럼 대표 등도 개인적인 비판에 나섰지만, 정작 의협은 이날 회의 직전까지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은 상태였다.

이필수 의협 회장.
이필수 의협 회장.

본격적인 회의 시작을 알리기 위해 단상에서 마이크를 잡은 이필수 회장의 인사말에는 그 어느 때보다 강경한 의지가 묻어났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의대정원을 늘리는 방안을 발표한다는 소식의 진위 여부를 떠나 의료계는 분노할 수밖에 없었고, 이같은 참담한 상황을 더 이상 진료실에서 바라만 볼 수 없어 14만 의사 회원과 2만 의대생들이 강력한 대응책을 마련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이필수 회장은 “아직 의대정원 확대의 구체적인 일정과 규모는 나오지 않았지만, 만약 정부가 2020년 9·4 의정합의 정신을 위반하고 의료현안협의체를 통한 의료계와의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를 강행한다면 3년전보다 더욱 강력한 투쟁에 돌입할 것”이라며 “이는 전적으로 의정간의 신뢰를 깬 정부의 책임”이라고 경고했다.

이 회장은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인력 부족의 문제는 현재의 열악한 의료 환경으로 인한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한 분포의 문제이므로, 의대정원의 양적 확대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수차례 지적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즉, 필수의료 및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해서는 의대정원 확대와 같은 근시안적인 대책이 아니라 우수한 의료인력들이 기피분야 및 지역에 자발적으로 진출하고 정착할 수 있는 안정적인 의료 환경 조성이 우선돼야 한다는 의미다.

이 회장은 “각종 국회 토론회와 기자회견 자리에서 ‘필수의료 사고처리 특례법 제정’ 등을 통해 필수의료 인력의 법적 분쟁 부담을 해소하고 필수의료 및 지역의료 등 기피분야에 대한 ‘적정 보상’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는 현실적 해결 방안을 목놓아 외쳤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300명, 500명, 1,000명 심지어 3,000명이라는 근거가 불분명한 소문들은 국민건강을 위해 현장에서 헌신하는 의사와 의대생들을 절망하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정부가 의대정원 확대에 대한 객관적인 근거나 명확한 원칙 없이 일부 편향적인 학자들의 사견과 여론, 정치적 효용성에 의해 일방적으로 의료인력 확충을 시도하는 것은 의료계 백년대계를 좌우할 수 있는 중요 현안을 졸속으로 밀어붙이는 무책임한 태도라고 일갈한 이 회장이다.

이 회장은 “14만 의사와 2만 의대생들은 정해진 로드맵에 따라 모든 수단을 동원한 강력한 투쟁에 돌입, 2020년 파업 때보다 더 큰 불행한 사태가 터질 수 있다”며 “정부가 의대정원 문제를 일방적으로 강행할 시 제41대 집행부는 전원 사퇴할 각오로 강경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박성민 의협 대의원회 의장.
박성민 의협 대의원회 의장.

박성민 의협 대의원회 의장도 의대정원 확대 문제로 의료계가 극심한 혼란에 빠진 현실에 유감을 표하고, 향후 정부의 태도에 따라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전 회원이 총력 대응에 돌입할 수밖에 없음을 예고했다.

박성민 의장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인재를 선발하고 엄격한 교육과 수련이 필요한 의사 양성 과정에 왜곡이 발생하면 국민들에게 실로 엄청난 피해가 발생한다”고 일갈했다.

박 의장은 “이 같은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법 정비와 재정 투입 등을 생략하고 단순하게 의대 정원을 늘리려는 정치적 발상은 선진 의료를 망가뜨리고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소문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의사 회원들의 뜻에 따라 총력 대응에 나서겠다”고 부언했다.
 

의료계 대표자들, “의료계 기만하면 불행한 사태 재현”

신뢰 무참히 짓밟지 말고 2020년 약속 반드시 지켜야

이필수 회장과 박성민 의장의 인사말 이후 진행된 이날 회의는 저녁 7시부터 9시 30분까지 약 2시간 30분가량 진행됐다.

의료계 대표자들은 회의가 끝나고 9·4 의정합의를 존중하고 코로나19 의료현장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며 무너져가는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한 일념으로 각종 대책을 제시하는 등 정부에 적극 협력한 의료계의 신뢰를 무참히 짓밟으면 안 된다는 ‘결의문’을 낭독했다.

이들은 “의료계의 신뢰와 노력을 기만하고 충분한 논의와 합의 없이 의대정원 확대 정책을 독단적으로 결정한다면 9·4 의정합의를 명백히 파기하는 것”이라며 “의대정원을 일방적으로 강행하지 않겠다던, 의대정원 확대는 의협과 협의하겠다던 2020년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들은 이어 “만약 이러한 의료계의 우려와 경고에도 불구하고 의대정원 정책이 추진된다면 2020년과 같은 불행한 사태가 재현될 것이고 이후 야기될 필수의료 및 지역의료의 붕괴와 의료공백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의료계를 기만한 정부에 있다는 점을 명확히 밝힌다”고 덧붙였다.

의료계 대표자들이 결의문을 낭독하고 있는 모습.
의료계 대표자들이 결의문을 낭독하고 있는 모습.

단, 의협은 필요하다면 의사 인력에 대해 유연성을 가지고 의료현안협의체 및 보건정책심의위원회에서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며 의료계와 국민의 혼란을 막기 위해 대화에 나설 의향이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박성민 의장은 “의료현안협의체와 보건정책심의위원회를 통해 의대 증원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의료 현안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정부는 의료계와 합의한 절차에 따라 좀 더 솔직하게 가슴을 열고 합리적으로 대화에 임해 의혹을 증폭시키는 일을 되풀이하면 안 된다”고 언급했다.

한편, 이처럼 의료계의 반발이 극심해지자 정부의 의대정원 확대계획 발표는 당초 알려진 10월 19일이 아닌 좀 더 미뤄질 수도 있다는 풍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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