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분홍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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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분홍신
  • 윤종원
  • 승인 2005.06.29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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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신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소녀적인 감수성과 동화적 느낌일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할머니가 좋아했을 법한 분홍 고무신이 연상되기도 한다.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분홍신은 그러나 전형적인 현대적인 구두다. 5-7㎝가량의 뒷굽이 있는 보편적인 스타일의 여성 구두. 색깔만 다른 색이었다면 특색이 전혀 없을 수도 있는 그런 모양인데, 정말 특이하게도 요즘은 쉽게 구경할 수 없는 분홍색의 표피를 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영화 속 여자들은 모두 이 분홍신에 집착한다. 일단 한번 보기만 하면 독점하고싶은 욕망에 휩싸여 물불 안 가린다. 또 이 신을 신고 있으면 마냥 행복해지는 느낌이 든다. 주인공 선재(김혜수)와 그의 딸 태수(박연아), 그리고 선재의 후배 미희(고수희)가 모두 그러하다. 여기에 다섯 명의 여자가 더 등장한다. 과거 속 세명의 여성과 두명의 여고생.

영화는 크게 두 가지 부분에서 힘을 줬다. 하나는 어두운 색감이고, 또 하나는 금속성 음향효과다. 분홍신을 강조하기 위해 나머지 부분은 모두 어둡게 처리했다. 대부분의 신이 밤 신이고 선재의 집도 어두컴컴하기 그지없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김혜수의 빨간 입술과 분홍신만이 도드라져 보이는 것.

두 붉은 색은 여성 욕망의 상징이다. 아름다워지고 싶고, 특별해지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욕망. 남편이 바람 핀 사실을 알게 된 선재로서는 반대급부로 더욱 화려한 것에 집착하게된다. 그녀가 안과 의사라는 사실 또한 종종 클로즈 업되는 눈과 함께 영화의 "차가운 시선"을 강조한다.

그러나 색감이 눈을 사로잡는다면 금속성의 날카로운 음향은 귀를 자극한다. 분홍신을 신고 또각또각 걷는 소리도 부분적으로 공포를 주지만 연신 이어지는 거울이 깨지는 듯한 "쇳소리"는 대단히 자극적으로 다가온다. 한편으로는 이런 쇳소리가 유치하면서도 고민 없는 선택 같기도 하지만 나름의 효과는 기본적으로 발휘한다.

버려진 분홍신을 신은 여자들이 이상 기운에 휩싸이고, 그 분홍신을 친구 혹은 엄마로부터 빼앗아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여자들은 목숨을 잃는다. 그것도 아주 잔인하게 발목이 잘린 채로. 발목이 잘릴 때는 어김없이 쇳소리가 들려온다. "토막살인"의 끔찍한 효과.

안데르센의 동명의 동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영화는 극중 일제시대 에피소드에서 동화를 오버랩시킨다. 분홍신을 탐낸 무용수가 결국은 멈추지 않는 분홍신 때문에 파멸하는 이야기. 그때의 원죄가 60여년이 흐른 현대에까지 미치고 있다는 설정으로 관객의 시선을 따돌린 영화는 후반부 반전을 몰아친다.

전작 "얼굴 없는 미녀"에서 경계선 성격 장애 환자를 연기하며 특유의 관능미를 과시했던 김혜수는 이번에도 핏기 없는 하얗게 질린 얼굴과 붉은 입술 사이를 오가며 히스테리컬한 연기를 펼쳤다. 영화의 80%를 어깨에 얹고 가는 그의 모습이 버거워도 보이지만 나름대로 커다란 눈의 장점을 최대한 살렸다.

제작사 청년필름의 김광수 대표는 28일 "일단 김혜수씨의 연기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고 있고, 일반시사 결과 전반적으로 "아주 무섭다"는 반응이 나와 공포영화로서는 목표를 달성한 것 같다"고 밝혔다.

15세 관람가, 30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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