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향원(鄕愿)을 경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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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향원(鄕愿)을 경계한다
  • 병원신문
  • 승인 2013.01.04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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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연 불선한 사람들이 싫어할만한 사람인가?

 

▲ 이수태 소장
오늘날 사람들은 향원(鄕愿)이라는 말을 잘 모를 것이다. 그러나 조선조에는 글을 좀 읽었다는 사람이면 다들 아는 말이었다. 왜냐하면 그 말은 논어에도 나오고 맹자에도 나오기 때문이다. 다만 조선 후기 사회에서 향원은 "수령을 속이고 양민을 괴롭히던 촌락의 토호"로서 겉으로는 선량한 척하면서 환곡이나 공물을 중간에서 가로채던 사람"이라는 매우 부정적인 의미였다.

그러나 향원은 원래 그렇게까지 나쁜 뜻은 아니었다. 논어에 나오는 말은 공자의 "향원은 덕의 도적이다(鄕愿,德之賊也)"라는 말로서 원래는 시골에서 주위로부터 근후하다는 평을 듣는, 대인관계가 두루 원만하고 부드러운 사람을 의미했다. 부연하자면 시골 마을 어디에나 가면 한 두 명쯤 만날 수 있는 "후덕해 보이는 사람"으로 누구에게서도 욕을 먹지 않고 어떤 일에서도 모나지 않고 신중한 사람이 향원이었던 것 같다. 공자는 바로 향원이 후덕해 '보이는' 사람이었다는 점에서 덕의 도적이라는 표현으로 그런 사람을 비판했던 것이다. 맹자는 공자의 그러한 생각을 조금 더 구체화하고 있다.

만장이 물었다. "한 마을이 다들 좋은 사람이라고 일컫는다면 어디에 내놓아도 좋은 사람일텐데 공자께서 그를 두고 덕의 도적이라고 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향원은) 비난하려 하여도 딱히 비난할 거리가 없고 풍자하려 하여도 딱히 풍자할 빌미가 없으며 속된 흐름에 동조하고 혼탁한 세상에 영합하여 일상적 삶은 충신한 듯하고 행위는 청렴결백한 듯하다. 사람들이 다 좋아하고 스스로도 그렇게 믿지만 그와 함께 요순의 도에 들어갈 수는 없기 때문에 덕의 도적이라 한 것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비슷하지만 아닌 것(似而非)를 미워한다. 강아지풀을 미워하는 것은 그것이 벼와 혼동될까 염려해서이고 달변을 미워하는 것은 그것이 옳은 것과 혼동될까 염려해서이고 정나라 음악을 미워하는 것은 그것이 아악과 혼동될까 염려해서이고 자주색을 미워하는 것은 그것이 붉은 색과 혼동될까 염려해서이고 향원을 미워하는 것은 그들이 유덕자와 혼동될까 염려해서이다.' 하셨다.

결론적으로 향원은 사이비 유덕자, 즉 "덕이 있는 사람과 비슷하지만 아닌 사람"이라 생각하면 될 것이다.

조직에도 향원은 있다. 어쩌면 더 많고 조직이야말로 향원을 만들어내는 온상이라 할 수도 있다. 서로 복잡하게 뒤엉켜 옳고 그름과 득실을 따질 일이 다른 어느 곳보다 많기 때문이다. 조직을 둘러보면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 많다. 그들은 주위 사람들이 좋아하는 대로 움직인다. 그들은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밝히는 일이 거의 없다. 있다면 남들이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여 입장을 밝히더라도 아무 탈이 없을 때만이다.

그들은 웬만해서는 ‘아니오’라고 하지 않는다. 무어라 늘 길게 이야기는 하지만 분명한 결론이 무엇인지 알기 어려우며 어떠한 비난도 교묘히 피한다. 남을 드러나게 비난하는 일도 없다. 주위로부터 "저 사람은 도무지 적이 없어." 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래서 때로는 저런 사람이 덕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덕 있는 사람인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과연 대단하지 않은가!

주목할 것은 맹자가 말한 바처럼 향원은 스스로도 자신이 원만하고 무리없이 처신하는 특별한 지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는 "마을 사람들이 다들 좋아한다면 어떻습니까?" 하는 자공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였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 중에서 선한 사람은 좋아하고 불선한 사람은 싫어하는 것만 못 하다." 스스로 원만하고 무리 없이 처신한다고 자신하는 사람들은 그 점에서 한번쯤 다음과 같이 자문해 볼 일이다. - 나는 과연 불선한 사람들이 싫어할만한 사람인가? 그만큼 중심을 잡고 사는 사람인가? -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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