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예의는 명령보다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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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예의는 명령보다 힘이 있다
  • 병원신문
  • 승인 2012.11.30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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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태 전 일산병원 행정부원장(이수태수사학연구소장)

조직에 있어서 예의를 운영상 중요한 변수로 다루는 것은 어떤 행정학 교과서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것은 예의가 개인적 미덕의 영역으로 간주되어온 탓도 있고 또 주로 동양의 전통으로만 취급되어온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직이 운영되고 있는 양상을 관찰해 보면 조직에 있어서 예의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절실히 느끼게 된다.

단적으로 조직의 리더가 높은 예의 감각을 가지고 그에 걸맞는 기준을 지키려고 애를 쓰는 경우 그 조직은 매우 원활하고 유기적인 조직력을 갖추게 된다. 반대로 조직의 리더가 예의를 잃고 언행을 무분별하게 할 경우 조직은 늘 덜컹거리고 조직 일상은 피곤해지는 것이다.

예의에는 보이지 않지만 매우 강력한 조정력이 있다. 예의를 잘 모르고 그에 걸맞게 행동할 줄 모르는 구성원마저도 리더를 위시한 다른 사람들의 언행이 예의에 맞느냐 맞지 않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의외로 민감한 감수성을 발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은 생래적으로 인간행위의 균제를 파악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말해 준다. 사실 이 숨은 능력이 조화롭게 계발된 사회와 그렇지 못한 사회가 문화적 선진국과 후진국으로 나누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예의가 가지는 자연스러운 조정력은 명령이 가지는 타율적 강제력보다 비할 바 없이 크고 포괄적이다. 그 힘은 자발적 그리고 반무의식적으로 형성되고 발휘된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를테면 서양인으로서 동양의 예의가 가지는 사회적 힘이 얼마나 강하고도 조화로운 것인지 경이롭게 주목한 허버트 핑가레트는 그 경이로움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잘 학습된 예의에 있어서는 모든 사람은 그렇게 하도록 되어 있는 행동양식대로 자연스럽게 행동한다. 거기에서는 강박, 요구, 강제 또는 인위적인 유도가 아니라도 나의 행위와 상대방의 행위가 잘 조화되어 나타난다. 전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고도 그 예의에 참여한 다른 사람의 예의 있는 행위에 이어서 나의 예의 있는 행위가 이어지는 것이다. … 강압의 힘은 명백하고 실체적인 반면, 예의 속에서 작용하는 거대하고 성스러운 힘은 눈에 보이지 않고 실체가 없는 무형의 것이다. 예의는 경건한 존엄성에 바탕을 둔 자발적인 상호질서를 통하여 행해진다. 거룩한 예의의 극치는 정신적일 뿐 아니라 심미적이기도 하다.

… 내가 내 연구실에서 강의실로 책을 가져오기를 원한다고 가정해 보자. 나는 강의실에 있는 학생 중 한 사람에게 책을 가져왔으면 좋겠다는 나의 바램을 적절하고 점잖은 예의로 표현하기만 하면 된다. 강요하거나 위협하거나 속일 필요도 없고 내 자신이 직접 무엇을 행할 필요도 없다. 이것은 인간이 어떤 일을 이루어내는 독특한 한 방식이다." 『Confucius : The Secular as Sacred』

예의는 조직 구성원들간의 사사로운 행동의 문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예의는 인간적인 것이면서 동시에 사회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사업계획도 그 추진도 더 나아가 조직 체계도 예의의 차원에서 검토될 여지가 있다. 우리가 동양 전통의 깊은 지혜를 오늘에 되살릴 수만 있다면 인간사의 모든 것이 예의라는 보이지 않는 균형 속에 있어서 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의전은 예의를 조직 운영의 절차와 규범에 의도적으로 구체화시킨 것이다. 의전은 조직 내의 민감하고 거친 권력관계를 조화롭게 배치하면서 더 나아가 아름답게 직조하는 기전이다. 의전이 균형을 잃거나 불확실하게 방치되어 있으면 조직은 금방 거친 권력관계의 속성을 드러내게 된다. 그것이 형식만으로 흘러갈 위험은 언제나 유의해야 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에 균형과 조화를 추구하는 인간의 저울질이 부단히 살아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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