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빈 교수의 파리 살페트리에르병원 연수기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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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빈 교수의 파리 살페트리에르병원 연수기 <完>
  • 병원신문
  • 승인 2012.10.22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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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여의 11% 건강보험료 납부
철저한 계획 아래 병원 건립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재활의학과

프랑스의 건강보험은 알려진 대로 사회보험의 형태로 운영되며 건강보험에서 커버하지 못하는 항목에 대해 개인이 자발적으로 가입한 민간보험이나 상호부조에서 지불하는 방식의 보충형 민간보험을 가지고 있다.

프랑스의 건강보험은 보건의료비용을 후불상환해 주는 제도를 채택하고 있어 의료이용자가 진료비를 먼저 내고 내역서를 공단에 제출하면 후불상환해 주는 제도로 생각하면 되고 우리나라의 본인부담금은 프랑스에서는 후불상환을 받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프랑스인구의 84%가 상공업근로자 질병금고의 적용을 받는데 한국은 급여의 5.8%를 건강보험료로 납부하는데 비해 프랑스는 11%를 납부하니 의료비 부담이 적다는 프랑스의 건강보험은 사실은 봉급의 많은 부분을 건강보험료로 내는 데서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국민의료비 수준은 우리가 GDP의 6.3%를 의료비로 쓰는데 비해 프랑스는 미국의 16% 다음으로 많이 쓰는 나라로 GDP의 11%를 의료비로 지출하고 있다 (2007년 OECD 자료). 미국은 과도한 의료비 지출국가로 분류할 수 있고 대부분의 OCED 국가는 GDP의 8% 내지 11%를 의료비로 지출하고 있다. 또한 유심히 비교해야 할 부분은 우리나라가 의료비 중 본인부담률이 35.7%인데 비해 OCED 평균은 18.3%이고 프랑스는 6.8%라는 것이다.

이는 결국 프랑스 국민 개개인이 느끼는 의료비자기부담률은 적지만 우리나라에 비해 월급에서 내는 건강보험료가 높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낸 세금 혹은 건강보험료로 나의 의료비 부담이 적어진 것이지 무상의료라고 하는 애매한 단어는 사실은 허구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사회적 약자나 만성질환자에 대한 배려가 높은 것은 사실이다.

현재 보건의료비 지출 증가율은 우리나라가 연 8%나 되어 OECD 평균 증가율인 연 3.6%의 두배에 가까운 상황이다. 따라서 향후 한국의 의료비는 가파르게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고 더 많은 세금과 건강보험료를 부담해야 하는 현실이 점점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젊은 세대에게 큰 짐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모두가 의료비를 알뜰히 관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며 보다 합리적인 정책연구와 토론으로 합의를 이루어가야 할 것이다.

이렇게 겉으로는 소박해 보였던 프랑스 의료가 사실은 미국에 비해서 부담이 적다는 것이지 찬찬히 들여다보니 늘어나는 의료비로 상당한 고민이 많은 나라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의료비 절감을 위해 총액계약제, 포괄수가제를 도입하려는 등 상당한 노력을 했고 현 정부에서도 불필요한 의약품 처방을 제한하기 위해 책자까지 만들어 배포하고 있는데 이는 프랑스가 유럽국가 중 의약품 소비 1위 국가라는 상황에서 나온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또한 병원의 입원부분에 대한 통제는 매우 엄격하여 예산에 병원입원 부분이 미리 산정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항상 논란의 대상이 되는 의료전달체계의 확립에 대하여는 다른 나라의 체계를 들여오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본다. 그 이유는 의료는 한 국가의 국민문화이고 관습이며 국민성과 동떨어져서는 생각할 수 없는 특수한 영역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성에 비추어 보았을 때는 이곳과 같은 의료전달 체계가 자리잡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내원 당일 모든 검사가 이루어져야 하고 신속히 해결이 되어야 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검사는 언제든 할 수 있어야 하고 세계 최고의 치료를 받아야 하는 등 국민이 의료에 바라는 점은 아마 세계 최고의 수준이 아닌가 싶다.

이런 점이 장점일 수도 있지만 의료의 과도한 이용으로 문제가 될 수도 있으며 개인의 건강관리책임, 완화의료, 자연치유의 측면은 간과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국민 각자의 삶에 대한 의식이 달라져야 삶의 질이 높아질 것이므로 이에 대한 의료계의 대국민 교육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질병과 치료 위주의 정보 공급에만 치우쳤다면 앞으로는 삶을 바라보는 방향에 대한 인식개선도 시도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프랑스는 정부의 철저한 계획 하에 병원이 지어지다 보니 각 병원의 역할분담이 잘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파리 15구에 있는 퐁피두 유러피안 병원은 파리 공공병원 중 가장 늦게 문을 연 병원이다. 아마 우리나라 국민의 정서에는 가장 잘 맞는 병원이 아닐까 싶다. 2001년도에 개원했으니 10년 정도 된 병원이고 최신식 시설에 심장혈관질환, 암, 장기이식, 응급환자, 다발성 외상 환자 진료를 최우선하는 병원으로 남서부 파리시 및 근교에서 발생하는 성인환자의 응급상황은 퐁피두 병원이나 코친병원으로 이송하게끔 되어 있고 소아의 응급상황은 파리 시내의 넥커 앙팡병원으로 이송하게 되어 있다.

필자가 연수를 온 프랑스 파리13구의 살 페트리에르병원은 남동부 파리시를 커버하는 병원으로 심장과 신경, 정신, 장기 이식, 내분비 분야만으로도 세계적인 병원에 이름을 올린 병원이며 프랑스 의사들이 가장 신뢰하는 병원이다.

프랑스는 의료전달체계가 매우 잘 정리되어 있는데 그중 필자가 인상적으로 보았던 부분이 진단검사의학과와 영상의학센터가 동네마다 잘 갖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가장비를 이용한 진단을 위해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몰리는 것과는 달리 이곳은 개원의에게도 모든 검사를 할 수 있는 문이 열려 있기 때문에 대학병원에 왔다고 특별히 추가적인 검사가 이루어지는 경우는 없다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각 지방자치단체와 병원계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각 지역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대형병원이 생기고 기존의 대형병원은 몸집 부풀리기에 열중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물론 의료소비자 입장에서는 한 병원 안에서 모든 것이 신속히 해결되니 좋은 점도 있겠지만 국가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문제가 될 것이고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의료비 지출은 과연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걱정되는 바가 크다.

하나의 제안으로 장비 특히 고가의 영상장비나 치료장비, 진단의학검사 등은 국가에서 총량에 대한 계획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일정 지역의 병원이 생길 때마다 소비적인 고가의료장비의 도입으로 인한 의료의 과소비는 앞으로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좋은 병원은 좋은 장비가 있는 병원이 아니라 난이도가 높은 질병을 보는 병원, 풍부한 진료인력으로 시간이 오래 걸려도 제대로 진료를 잘하는 병원, 선도적인 연구를 잘 하는 병원, 응급환자를 잘 보는 시스템을 갖춘 병원, 일반의 혹은 대부분의 전문의가 잘 해결 못하는 진료를 할 수 있는 병원이 아닐까?

우리나라의 경우 연구중심병원에서는 외래진료를 아예 없애겠다는 계획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라 생각한다. 외래에서는 일반의가 해결 못하는 환자를 의뢰할 수 있는 외래진료 시스템도 갖추어야 한다.

왜 모든 병원이 비슷한 환경에서 경쟁할까?

우선 모든 것을 백화점식으로 갖추어 놓고 병원을 개원한 뒤 성과가 좋은 과는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경우는 도태되는 매커니즘이 시장원리에 맞는 의료일 수도 있지만 의료에서의 지나친 무한경쟁은 득보다는 실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미리 계획을 하고 각 병원의 특성을 살려서 키워나가는 방법이 더 효율적일 것이라 생각한다.

반면 프랑스에도 많은 문제점이 보인다. 이는 의료의 문제라기보다는 과도한 세금과 인건비로 인한 사회 문제라고 보는 것이 옳겠다. 개원의의 경우 대개 일정규모 이상이 아닌 경우 의사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한다.

환자가 오면 직접 문열어주고 전화받고 예약잡고 진료비 청구하고 거기에 가장 중요한 진료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보니 자칫 위험한 일도 있다. 치과의사가 치석제거를 하다가 전화벨이 울려 깜짝 놀라는 바람에 기구를 환자 입안에서 놓쳐버려 입안이 찢어지는 사고를 입었다. 의사가 진료에만 집중할 여건이 못 된다는 것은 환자에게도 참 위험한 일이다.

또한 산부인과 의사의 경우에도 남자 전문의가 여자 환자를 진료실에서 혼자 진료해야 하니 환자로서도 당황스러울 때가 많고 통증 관련 전문의의 경우 침술을 시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팬티만 입고 모든 옷을 벗고 진료대 위에 누워 있어야 하니 침술을 시행하지 않아도 통증이 사라지고 마는 웃지못할 상황이 일어나는 것이다. 임금이 오르고 노동시간이 적어지면 지금 당장은 좋은 것 같지만 일자리가 적어지는 모순을 작은 병원의 운영에서도 볼 수 있다.

프랑스 노동법상 근로시간이 주당 35시간으로 법에 의해 규제됨으로써 유럽 27개 국가 중 노동시간이 두 번째로 짧고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장기화되어 그만큼 일자리가 적어지는 악순환을 겪고 있는 프랑스의 현재는 우리가 교훈으로 삼아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프랑스에서 국가경쟁력이 있다고 평가받는 분야가 사회기반시설, 의료제도 및 교육제도라는 점 또한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사실이다.

6개월간의 프랑스 연수를 마치며 뭔가 속 시원히 머릿속이 정리되었으면 하는 생각은 지나친 바람이 아니었나 싶다.

이 나라가 교과서가 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우리나라의 의료가 바람직한 면만 있는 것도 아니므로 그저 이 나라에서 보고 배운 것을 참고로 하여 우리나라가 좀 더 바람직한 제도를 만들어 가는데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재활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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