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과정보다 사회적응이 더 큰 스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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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과정보다 사회적응이 더 큰 스트레스
  • 김명원 기자
  • 승인 2012.04.02 1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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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터민 대다수 우울·불안 증세 호소
한림대성심병원 홍나래 교수, 북한이탈주민 정신건강조사

함경도에서 태어나 지난 2009년 초 중국을 거쳐 경기도 군포시에 새로운 둥지를 튼 새터민 김옥련(여·36·가명)씨는 그토록 원하던 남한 땅을 밟았음에도 지금까지 발을 제대로 뻗고 잔 적이 한 번도 없다. 북한에 있을 때보다 말수가 줄어든 것은 물론 용변을 볼 때를 제외하고는 밖에 나가는 일도 드물었다. 사람들과 말을 섞는 것도,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모두 귀찮아 하루 종일 집에만 머물렀다.

‘붙잡히면 연행되거나 죽을 수도 있다’는 탈북과정에서의 불안증세 때문으로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으로 생각했지만 3년이 지난 지금도 증세는 여전했다. 그러다 “병원을 한번 가보라”는 지인의 권유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가 정착과정으로 발생한 어려움으로 인한 우울증과 불안증세라는 진단을 받았다.

△탈북자 2만명 시대, 새터민들 정신건강 비상

탈북자 2만명 시대를 맞은 현재, 김옥련씨와 같이 우울증 등 정신건강에 이상을 호소하는 새터민들이 늘고 있다. 생활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많은 북한이탈주민들이 우울 또는 불안증세를 경험했거나 보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새터민의 정신 건강과 관련하여 북한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겪은 각종 인권 유린과 북송의 두려움 등으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주로 주목을 받고 있지만, 우리나라 사회생활에 정착하며 적응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 등이 우울, 불안 증세와 연관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탈북과정에서 겪는 정신적인 압박보다도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는 과정에서 겪는 각종 어려움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더 심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한림대학교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홍나래 교수가 경기도 군포시에 거주 중인 북한이탈주민 56명을 대상으로 우울 증상과 불안 증상에 대해 단독 설문 조사한 ‘북한이탈주민 정신건강조사’ 결과에서 밝혀졌다.

△조사 대상 절반 이상이 우울·불안 증세 호소

우울 증상의 정도를 살펴보는 벡우울척도에서는 정상군이 응답자의 35.7%에 불과한데 비해 가벼운 우울 증상군 25%, 중한 우울 증상군 16.1%, 심한 우울 증상군 23.2% 등으로 우울 증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전체 중 64.4%나 됐다.

이러한 양상은 불안 증상 정도를 살펴보는 벡우울척도 조사 결과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정상군은 46.4%, 불안 증상군 14.3%, 불안 장애군 39.3%로 절반 이상인 53.6%가 불안 증세를 보였다.

우울 증상은 수급자와 정신과 진단력을 가지고 있는 이에게서 더 많이 나타났으며 탈북동기와 탈북과정, 가족과의 동거 유무, 북한에 가족이 남아있는지 여부 등은 우울 증상에 의미있는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불안 증상 역시 이와 비슷한 양상이 나타났는데 특히 자신의 건강 상태에 대한 인지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나, 자신의 건강이 좋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에게서 불안 증세가 심했고, 탈북 과정 등은 불안 증상에도 특별한 영향을 끼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신건강 상담 또는 교육 프로그램 마련 절실

조사 결과에서 나타난 것과 같이 탈북 동기와 탈북 과정, 북한에 가족이 남아 있는지 여부 등이 우울 또는 불안 증세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조사됨에 따라 이보다는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혼란스러움 및 경제적, 건강상 어려움이 더 큰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실질적으로도 북한이탈주민들은 북한의 사회적 특징으로 인해 새터민들끼리 폐쇄적으로 생활하거나 많은 이들이 자유경제체제를 이해하지 못해 경제적 혹은 사회문화적인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사투리로 인해 간첩으로 오인받거나 사회에 융화하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그러나 정부 차원에서 제공하는 정신건강 서비스 프로그램 등이 부족하거나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새터민이 보다 정신적으로 안정적인 상태에서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적응 과정에서도 지속적으로 정신건강 상담 또는 교육 등이 마련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조사 결과에서도 대다수의 새터민이 상담치료와 심리검사 등 정신건강 관련 상담 혹은 진료가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치료를 받은 사람은 25%에 불과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와 관련된 시선보다는 이러한 상담이나 진료가 있다는 사실, 또는 어디에 도움을 청할지 모르기 때문에가 그 이유였다. 받고 싶은 정신건강 관련 서비스는 상담치료와 심리검사, 정신건강교육 순으로 조사됐다.

한림대학교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홍나래 교수는 “그동안 새터민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문제가 주로 조명돼 왔다. 하지만 이번 조사 결과는 정착 과정에서의 어려움이 정신건강 문제에 더 크게 작용한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정부가 정신건강 상담 등과 같은 프로그램 및 제도를 만들어 새터민의 정착 단계에 적용하는 것이 시급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조사 결과는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뉴스레터를 통해 발표됐으며 홍나래 교수는 앞으로도 탈북자의 정신건강상태에 대한 조사를 지속적으로 실시, 발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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