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의료봉사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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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의료봉사를 다녀와서
  • 박현
  • 승인 2010.02.10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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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병원 인공신장실 간호사 한우리
뉴스에서만 접한 아이티 지진 참사... 병원에서 아이티 재난구조 의료봉사팀이 구성 된다고 한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자원했다.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막연하게 출국준비를 하였다.

1월19일, 주변의 우려 속에 우리는 아틀란타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걱정이 밀려온다. 지진으로 나라 전체가 어수선하고 여진의 가능성이나 치안부재 등 불안함은 극도로 심한 상태라 한다.

아틀란타에서 마이애미를 거쳐 아이티와 가장 인접한 국가인 도미니카 공화국 수도 산토도밍고에 도착했다. 산토도밍고에 도착한 시각은 저녁 9시경, 우리를 인솔해줄 선발대와 현지 도우미들을 만났다.

아이티의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가슴이 뛴다. 과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라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산토도밍고에서의 하루가 저물어간다.

1월20일 새벽, 드디어 아이티로 떠나는 날이다. 산토도밍고와 우리의 목적지인 포르토프랭스간의 거리는 400km, 차로 7~8시간 거리이다. 모두들 긴장해서인지 밤새 뒤척인 모습이다. 숙소에서 제공해주는 아침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로 7~8시간을 가니 TV에서만 보던 아이티의 국경이 나타났다. 아이티 국경을 지키고 있는 수많은 군인들, 아이티로 들어가려는 구호팀들과 구호 물품들, 살기 위해서 아이티를 나오려는 사람들로 국경은 초만원을 이뤘다.

드디어 아이티. 아이티에 들어서서 가장 먼저 보이는 건 사람들의 표정이었다. 지진 이후의 극심한 긴장과 굶주림 때문인지 그들의 얼굴에 피로와 두려움만이 가득하다. 마음이 아파온다.

포르토프랭스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바로 진료 준비에 들어갔다. 아이티로 먼저 들어가 있던 선발대가 델마라는 지역에 2층짜리 작은 개인병원을 진료지로 마련해두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청소를 시작했다. 지진으로 병원의 모든 시설이 망가져 있었고, 전기도 물도 나오지 않는 최악의 상황이다. 우리가 자신들을 도우러온 의료진이라는 것을 알아채서인지 아이티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고, 몇몇 사람들은 나서서 우리 일을 도와주기 시작했다.

몰려드는 사람들 중 몇몇은 벌써 우리에게 어디가 아프다, 언제 진료를 시작하느냐 물어대기 시작했다. 모두들 도움의 손길이 간절했구나... 늦게 온 것이 아닌가 하는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아이티에서 첫 날은 이렇게 저물었다.

1월21일, 드디어 본격적인 진료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어제 청소를 해두었던 병원으로 찾았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벌써 많은 아이티 사람들이 병원으로 몰려들어 있었다.

아이티 현지인들의 도움을 받아서 무리 없이 진료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한 시간 정도 지나서인가 주변에 가득하던 아이티 사람들의 모습이 하나둘 사라지더니 거짓말처럼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일까? 걱정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라디오에서 델마지역 근처로 여진이 발생할거라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무서워서 피했던 것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우리 팀에도 진료 철수라는 마지막 결정이 내려졌다.

그러나 우리의 간절한 마음이 하늘에 닿았던지 가까운 곳에 넓은 마당을 가진 medical school 같은 곳을 구할 수 있었다. 다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무너지는 건물들 틈 속에서 다리가 부러진 사람들, 떨어지는 벽돌에 머리를 맞아서 머리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 먹을 것이 없어서 탈수된 아이들, 먹지 못해 굶주린 임산부들, 간단한 감기 환자부터 지진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은 많은 사람들... 그들에게 어쩌면 이곳은 살아있는 지옥이 아닐까? 우리의 5일간의 진료가 그들에게 작은 희망이 됐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서 그들에게 다가서본다.

1월22일 새벽, 긴급하게 우리 의료진을 깨우는 연락이 왔다. 급하게 제왕절개가 필요한 산모가 있다는 연락이다. 하지만 산부인과 의사는 없다. 우리팀 외과 박관태 교수, 가정의학과 박중철 임상강사, 수술실 간호사가 급파됐다.

독일인 마취과 의사, 미국인 의사, 우리팀 의사와 간호사 등 각국 의료진의 협진으로 1월 22일 새벽, 포르토프랭스의 허름한 병원에서 한 생명이 빛을 보았다. 감동의 순간이다.

1월23일, 우리가 잊고 있는 게 있었다. 우리가 차린 진료소로 찾아올 수 있는 이들은 어쩌면 아픈 이들 중에도 건강한 편에 속하는 이들일 것이다. 진정 우리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허름한 난민촌에서 죽음을 향해 다가가고 있을 것이다.

급하게 왕진팀이 구성됐다. 우리팀은 인근 난민촌으로 향했다. 태어난지 두달째, 지진으로 부모를 잃고 할머니 손에서 자라면서 며칠 째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설사만 하던 아이, 탈수증상으로 울 힘도 없는 아이... 우리팀은 어렵게 혈관을 찾아 아이에게 수액을 달아주고 진료소로 데리고 왔다.

이들의 생명은 우리 손에 달려있다. 수액 하나, 분유 조금으로도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생명들이 아이티 곳곳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쓰려온다. 왜 이렇게 가난한 이들에게 이런 힘든 시련을 주시는지 하늘이 원망스럽기까지 한 날이다.

오늘은 진료의 마지막 날, 며칠간의 이어지는 진료로 매일 진료소를 찾던 이들과 이제는 웃으면서 농담도 주고받을 수 있을 정도가 됐다. 하지만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우리가 그들의 완쾌까지 책임져줄 수 없다는 것... 우리처럼 그들을 위해서 의료 봉사를 하러 오는 후속팀들을 믿으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진료를, 모두들 힘든 내색 없이 진심을 다해서 하고 있다.

진료를 마친 후 아이티에서 우리에게 큰 도움을 주시던 선교사님의 주선으로 대통령궁 군악대를 초청해서 작은 마을 콘서트를 열어주었다. 지진으로 몸도 마음도 모두 지쳐있는 이들에게 음악이 무슨 도움이 될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우리팀의 걱정과 달리 무척이나 즐거워하고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고 박수를 치는 모습... 그들에게도 아직 희망은 남아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팀의 뒤를 이어줄 한국 의료진을 찾을 수 있었다. 우리가 어렵게 찾아낸 진료지에서 우리팀에 이어 진료를 하겠다고 한다.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인수인계를 마치고 돌아서는데 아쉬워하는 아이티 주민들의 모습에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그들이 앞으로 이겨내야 할 수많은 고통들... 그걸 외면하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아이티, 걱정과 우려 속에 떠난 곳이지만 어쩌면 우리는 아이티에서 더 큰 무언가를 받아온 것이 아닌가싶다. 내가 그들에게 큰 도움은 못됐지만 아주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는 의료인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아이티... 지상낙원이라 불리는 카리브해에 인접해 있으면서도 극빈국. 거기에 찾아온 재앙. 그들이 다시 일어서기까지는 수 년, 어쩌면 수십 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어쩌면 영원히 극빈국에서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지진으로 인한 극심한 고통 속에서 그들의 미소를 보았다. 어쩌면 그 미소 하나가 아이티를 되살릴 수 있지 않을까? 짧은 기간이었지만 의료인으로서 내가 작은 도움을 줄 수 있었다는 자부심이 아닌 고마움을 마음 속에 간직한 채 돌아왔다. 작은 두 손 모아 아이티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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