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세계의 병원인증제도(호주AC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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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세계의 병원인증제도(호주ACHS)
  • 윤종원
  • 승인 2010.01.06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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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건 차의과학대학교 예방의학교실 교수
얼마 전부터 일부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JCI 인증을 받았거나 JCI 인증을 추진한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JCI 인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JCI는 "Joint Commission International"의 이니셜로, JCI 인증을 받은 병원에서는 환자의 안전과 의료서비스의 질의 측면에서 국제적인 기준을 충족한다고 홍보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와 더불어 ACHS 인증이라는 국제적 인증프로그램도 알려지기 시작하였는데, JCI 인증이 미국에서 시작된 반면, ACHS 인증은 호주에서 시작된 국제적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태생적 차이가 있다. 물론 평가의 내용이나 형식에 있어서도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필자는 ACHS와 그 인증에 참여하는 병원들을 방문하여 경험한 것을 토대로, ACHS 인증을 주요 내용을 소개하고, 우리나라에서도 인증프로그램 도입을 검토하는 상황에서 어떠한 시사점을 줄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ACHS는 ‘Australian Council on Healthcare Standards’의 이니셜을 따온 것으로 ‘호주보건의료표준위원회’라고 직역할 수 있다. 호주라는 특정 국가명이 있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우리나라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라고 거부감을 가질 수 있다. 그렇지만 JCI도 American 이라는 용어만 사용하지 않았을 뿐이지 Joint Commission(합동위원회)이라는 미국의 민간기구에 international만 붙인 것임을 안다면, 특별히 거부감을 가질 필요는 없을 듯하다. ACHS에서도 뒤에 international을 붙여 ACHSI 인증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아일랜드, 홍콩, 뉴질랜드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JCI에 버금가는 인증사업을 하고 있다.

ACHS는 1979년에 호주에서 출범한 민간기구로서, 1974년부터 호주의학협회 및 호주병원협회와 연계하여 의료의 질 향상 사업을 한 호주병원표준위원회(Australian Council on Hospital Standards)가 모체(母體)이다.

ACHS 인증이 호주에서 시작된 만큼, ACHS 인증이 어떻게 진행되고 활용되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호주 의료체계에 대한 약간의 이해가 필요하다. 호주는 8개의 주정부로 구성된 연방국가이고, 국민들은 메디케어 보험료(사회보장세)를 납부한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모든 환자는 일단 일반의로부터 진료를 받아야 하고,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일반의의 진료의뢰로 전문의에게 갈 수 있다. 대부분의 전문의는 본인과 계약한 병원에서만 입원진료/수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호주 국민들은 어떤 병원을 이용하느냐는 그리 중요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며, 오히려 어떤 전문의로부터 진료를 받느냐가 더 관심의 대상이 된다.

일반의와 전문의에 대한 진료비는 일부 본인부담을 제외한 나머지를 연방정부가 부담하고, 공공병원은 주정부가 예산으로서 비용의 전액을 부담하기 때문에 호주에서는 무료로 입원진료/수술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공공병원에서 입원진료/수술을 받으려면 대기 기간이 적지 않은 경우가 많고, 비급여가 많기 때문에 여력이 있는 상당수 국민들은 추가로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고 민간병원에서 입원진료/수술을 받는다. 호주에는 750여개의 공공병원 , 250여개의 민간병원이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선 국민, 병원, 정부, 민간보험회사의 입장에서 ACHS 인증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이해할 수 있다. 공공병원의 입장에서 인증을 받든 못 받든 병원 경영의 문제점은 없다. 어차피 공공병원의 소유는 주정부이고 인증을 못 받았다고 하여 주정부에서 예산을 삭감하거나 환자가 선택을 외면할 수 있는 의료체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증을 못 받은 경우 병원장은 주의회에서의 질타를 면할 수 없다. 인증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의료의 질, 특히 환자 안전의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는 것이고, 따가운 지역 여론의 질책이 이어진다. 따라서 병원의 예산 삭감 등의 금전적 패널티가 없다 하더라고 공공병원은 인증을 받고 이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여야 한다.

민간병원의 입장은 이와 좀 다르다. 일단 인증을 받지 못하면 민간보험회사로부터 외면을 받는다. 민간보험회사로부터 외면을 받으면 그 회사에 가입한 환자의 유치가 불가능해진다. 또한 인증을 받았다 하더라도 심각한 문제점으로 인하여 비인증의 상태로 추락하면 민간보험회사로부터 수가의 20-30%를 삭감당하는 불이익을 감수하여야 한다. 물론 이러한 보험회사의 삭감을 병원을 이용하는 환자의 본인부담으로 전가할 수는 있겠지만, 전문의가 환자를 본인부담이 가중되는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입원진료/수술을 할 리가 만무하다. 결국 민간병원의 입장에서는 ACHS 인증 자체가 병원 경영의 생존/존속을 위한 필수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ACHS 인증 여부에 의하여 -우리나라의 의료기관평가 공표처럼-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호주 의료전달체계의 특성상 입원진료/수술에 있어서 어떠한 전문의에게 받느냐가 중요하며, 그 전문의는 특정 병원에만 전속하여 근무하는 의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ACHS 인증여부와 그 병원의 중요 문제점이 홈페이지를 통하여 공표가 되기 때문에 병원의 인지도와 전문의를 경우한 간접적인 병원 선택에 영향을 줄 수는 있다.

다음으로 ACHS 인증을 위한 평가 방법에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ACHS 인증 도구를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진료, 관리, 조직의 3개 영역으로 구분하고, 13개 목표, 45개 기준으로 구성되어 있다. 진료 영역에는 6개 목표와 21개 기준, 관리 영역에는 5개 목표와 14개 기준, 조직 영역에는 2개 목표와 10개 기준이 있다. ‘환자는 진료 과정 전반에서 양질의 의료를 제공 받는다’는 13개 목표의 일례이며, 이 목표 예에는‘환자는 진료서 양질의동의 절차를 알고, 이를 이해한 후 동의하는가’ 등의 7가지 기준이 있다.

45개 각각의 기준에 대하여 ‘미흡’, ‘보통’, ‘충족’, ‘우수’, ‘모범’의 5단계로 질문들이 있으며, ‘예, 아니오’의 충족 수준에 따라 해당 기준의 등급이 결정된다. 예를 들면 ‘미흡’의 질문들에서 모두 ‘예’이고, ‘보통’의 질문들에서 ‘아니오’가 1개라도 있으면, 그 기준은 ‘미흡’으로 평가된다. ‘미흡’, ‘보통’, ‘충족’의 질문들에서 모두 ‘예’이고 ‘우수’의 질문들에서 ‘아니오’가 1개라도 있으면 그 기준은 ‘충족’으로 평가된다. ‘미흡’은 관련 규정이나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는 수준까지이고, ‘보통’은 이를 적용하고 일정 수준까지 도달한 경우, ‘충족’은 보통에서 더 나아가 지속적인 향상이 있는 경우, ‘우수’는 그 성과가 타 병원보다 우수한 경우, ‘모범’은 그 분야의 리더 수준인 경우를 의미한다.

이러한 평가 방법은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했던 평가 방법과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쉽게 설명하면, 우리나라의 경우 감염관리 수준이 80-100점이면 ‘모범’, 60-79점이면 ‘우수’, 40-59점이면 ‘충족’, 20-39점이면 ‘보통’ 0-19점이면 ‘미흡’으로 평가하여 줄 세우는 방법이라면, ACHS 인증에서는 감염관리 시스템만 있으면 ‘미흡’, 감염관리 시스템을 갖추고 기준(예, 40점) 이상이면 ‘보통’이며, 더 나아가 지속적인 향상까지 있어야 ‘충족’을 받을 수 있다. 즉 지속적인 향상이 없는 80점보다는 지속적인 향상이 있는 60점이 더 낳은 등급을 받는다. 대형병원들이 항상 우수한 평가를 받고, 나름 노력하는 중소병원들이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볼 때, 이러한 방법이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이렇게 45개 기준 모두에 대하여 등급이 매겨지면, 인증여부는 다음과 같이 결정된다. 우선 45개 기준 중 16개는 필수 기준인데 이 기준들 모두에 대하여 ‘충족’ 등급을 받고, 중요 개선 권고 사항이 없을 경우 4년간의 ‘인증’을 받게 된다. 이를 충족하지 못할 경우 개선하여 충족할 것을 전제로 60일 또는 2년의 기간으로 ‘조건부 인증’을 받는다. 그래도 충족하지 못하면 ‘비인증’을 받게 된다. 혹시 29개 비필수 기준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지 않겠는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겠으나, 소홀히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개선 권고 조치를 하고 이를 이행하도록 강제하기 때문에, 병원 입장에서 소홀히 할 수 없는 기준이 된다.

두 차례의 의료기관평가를 경험한 우리나라로서 가질 수 있는 몇 가지 특징과 의문에 대하여 ACHS 인증에서는 어떠한 지 살펴보자.

첫째, 호주에서의 ACHS 인증은 민간이 주도하는 자발적 프로그램이라는 것이다. 도입 초기에 재정의 일부를 정부에서 지원하기도 하였지만, 현재는 인증 받고자 참여하는 병원들의 연회비를 통하여 재원을 충당한다. -연회비는 병원의 규모에 따라 차등을 두며 현지실사 조사비용을 따로 걷지는 않는다- 자발적 인증프로그램이기는 하지만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병원들이 이를 외면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즉 법적인 강제 인증이 아닌, 기능적 강제 인증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2008년 말 기준으로 호주에서는 671개의 병원이 ACHS 인증을 받았다고 한다.

둘째, 더 좋은 결과를 받기 위해서 자료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경우는 없는가라고 의문이 있을 수 있다. ACHS 관계자에 따르면, 최종 결과가 한국과 같이 점수 또는 다단계의 등급으로 평가되면 병원들의 과당경쟁이 발생하고, 그에 따라 인위적인 자료 조작 등이 있을 수 있다고 예상한다. 따라서 ACHS에서는 이러한 부작용을 막고, 의료의 질 향상이라는 평가의 본질을 살리기 위해서 인증제를 하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는 거의 없다고 판단한다. 현재 75% 병원이 인증을 받고, 24%의 병원이 조건부 인증을 받으며, 1%만이 인증 받지 못한다고 한다.

셋째, ACHS 인증은 의료의 질이 단순히 좋고 나쁨을 알기 위함이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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