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박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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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박쥐
  • 이경철
  • 승인 2009.04.27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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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는 현실과 환상, 피와 유머, 로맨스와 살인 등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요소들을 조합한 영화다. 이종교배를 시도한 많은 영화가 어색함만 남기고 실패했지만, "뱀파이어 치정 멜로"라는 이상한 장르를 내세운 "박쥐"의 조합은 "박찬욱식 스타일" 아래 묘한 조화를 이룬다.

병원에서 일하는 신부 상현(송강호)은 해외에서 진행되는 백신 개발 실험에 자원했다가 바이러스 감염으로 죽음에 이른다. 수혈 이후 기적적으로 소생한 상현은 흡혈귀가 되고 만다.

귀국 이후, 그가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고 믿는 신자들이 몰려오고, 그 사이에서 어린 시절 친구 강우(신하균)와 그의 아내 태주(김옥빈)를 만난다. 태주에게 정신없이 빠져든 상현은 강우를 죽이자는 태주의 꼬임에 넘어간다.

영화는 일단 컬트적인 느낌을 강하게 안긴다. 가장 심각해야 할 순간에 느닷없이 웃기는가 하면, 언제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할지 모른다. 툭 꺾이고, 피를 내뿜거나, 살을 훤히 드러내는 배우들의 몸은 영화의 스타일을 완성하는 가장 큰 도구이자 소품이다.

환상은 환상이라는 분위기를 감추고 관객의 현실 인식에 즉각적으로 내리꽂힌다. 배우들은 관객을 향해 소리를 내 기괴하게 웃는다. 의도적인 시선과 과장된 표정, 몸짓을 활용한 연극적인 냄새도 종종 풍긴다.

어둠 속에 터져 나오는 독특한 유머 감각은 "복수 3부작"보다 훨씬 더 나아갔다. "흡혈귀란 거 생각보다 귀엽네요"라는 태주의 대사 그대로,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성인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두 사람의 "치정(癡情)"에는 귀여운 구석이 많다.

도덕에 발목 잡힌 남자와 순수한 욕망 덩어리인 여자의 만남은 딜레마를 만들지만, 그들 사이의 충돌은 끈적거릴망정 극악하지는 않다. 게다가 결론은 단순하고 명확하며 "로맨틱"하기까지 하다.

소품 하나 단순히 쓰지 않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쉬운 영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머리를 쥐어짜며 고민할 필요도 없다. 보고, 듣고, 웃고, 놀라면 만족할 영화다.

이제까지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 대한 관객의 호불호(好不好)는 분명히 갈려 왔다. 스크린을 흠뻑 적시는 피와 강하게 들이대는 도덕적 잣대를 보노라면 속이 시원해진다는 관객과 징그러워서 보기 어렵다는 관객이 동시에 나오지만 "그저 그랬다"는 미적지근한 반응은 거의 없다.

잔인한 영화에 질색하는 관객들이 "모처럼 눈을 뜨고 봤다"고 평가했을 만큼 "온순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오히려 흥행에 실패했다.

"박쥐"는 어떤 평가를 받을까. 영화평론가들은 박찬욱 감독이 작품을 내놓을 때마다 열정적으로 평가하곤 하지만, 그의 영화는 평론가가 아니라 관객의 평가를 가장 목마르게 기다리는 영화다.

30일 개봉. 청소년 관람 불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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