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도쿄 소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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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도쿄 소나타
  • 이경철
  • 승인 2009.03.12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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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영화 "도쿄 소나타"에는 퇴근길의 아버지와 하굣길의 아들이 갈림길에서 마주치는 모습이 여러 차례 나온다. 집 대문을 나서면서 세파에 뛰어들었던 사람들은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집으로 들어가면서 아버지가 되고 아들이 된다.

이 가정은 사회 전체의 요약본이다. 지붕 밑은 한없이 따뜻할 것 같지만 싸늘한 비밀과 거짓들이 숨어 있다. 그렇다고 이 가족 전체를 거짓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절망의 바닥으로 끝없이 떨어지면서도 결국에는 식탁 앞에 다시 모여앉는 사람들이 한 지붕 아래에 살고 있다.

대기업 서무과장 류헤이(가가와 데루유키)는 저임금 중국인들에 밀려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된다. 아내 메구미(고이즈미 교코)에게 사실을 털어놓지 못한 그는 매일 공원으로 출근해 무료 급식으로 점심을 해결한다.

초등학생인 막내아들 겐지(이노와키 가이)는 피아노를 배우고 싶지만 아버지의 단호한 반대에 부딪히자 급식비로 몰래 피아노 학원에 등록한다. 제때 귀가하지 않고 제멋대로 살던 큰아들 다카시(고야나기 유)는 미군에 입대해 버린다.

메구미는 우연히 공원에 있던 남편을 보게 되지만 입 밖에 내지 않는다. 나름대로 가족을 품에 안으려 애쓰던 메구미 앞에 얼뜬 강도(야쿠쇼 고지)가 나타나 흉기로 위협하며 돈을 요구한다.

이 영화를 만든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그동안 독특한 공포영화들을 만들었다. 그는 "J호러"의 서막을 열어 주고도 후배 J호러 감독들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복수" 시리즈, "도플갱어", "절규" 등은 그저 그런 평범한 공포영화가 아닌 인간과 사회를 새롭고 파격적으로 파헤친 작품들이었고 해외 영화제에서 환영을 받았다.

전형적인 일본 중산층이 살 법한 작은 주택을 배경으로 현대 사회와 현대 가족, 현대인들을 파헤친 "도쿄 소나타"는 구로사와 감독이 호주 출신 작가 맥스 매닉스의 각본을 토대로 만든 첫 가족 드라마지만 그의 개성이 가감 없이 드러나 있다.

주인공 가족에 대한 묘사에는 유머가 깃들어 있지만 섬뜩할 정도의 현실감이 밑을 받쳐 주고 있다. 가장 류헤이는 아내 메구미의 표현대로 "개나 줘 버렸으면 싶은" 권위를 내세우고 애늙은이인 아이들은 자기만의 삶을 살아간다.

이를 일본 사회 전체의 문제로 확대하는 감독의 시각은 깊고 날카롭다. 비좁은 베란다의 문을 닫고 걸레질을 하는 주부, 양복을 입은 채 공원을 헤매는 실직자 등의 풍경은 일본적이지만 경제위기의 늪에 빠져있는 전 세계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일본 국민이 쉽게 미군에 입대하는 상황을 가정하고, 다른 가족에 비해 캐릭터 묘사가 희미한 큰아들을 그 안에 들여보내는 방식으로 세계 속의 일본을 짚어보기도 한다.

이 가족이 내몰리는 상황은 사실적이고 절망적이다. 그러나 분열에서 통합으로, 파멸에서 부활로 건너가는 결말은 찬란한 희망과 구원을 보여준다.

19일 개봉. 관람 등급 미정.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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