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잠수종과 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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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잠수종과 나비
  • 이경철
  • 승인 2008.02.04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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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패션 전문지 엘르의 편집장을 지냈던 장 도미니크 보비는 마흔셋의 나이에 뇌졸중으로 쓰러져 왼쪽 눈을 제외한 모든 신체가 마비된다.

그는 왼쪽 눈을 깜빡여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고 15개월 동안 20만 번의 깜빡임으로 자신의 삶과 자유를 향한 꿈을 담은 130쪽짜리 회고록을 쓴다.

이 회고록을 스크린에 옮긴 "잠수종과 나비"는 특별한 영화다. 그 감동의 절반은 실화의 힘에 빚지고 있지만 프랑스 줄리앙 슈나벨 감독의 연출력 역시 간과할 수 없다.

각본을 쓴 로널드 하워드와 메가폰을 잡은 슈나벨 감독은 보비의 전 생애가 아니라 마지막 특별한 순간을 집중적으로 기록한다. 결국 인간 승리의 이야기지만 영화에서 신파의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첫 장면에서 매튜 아맬릭이 연기한 보비는 병원에서 눈을 뜨고 의사의 질문에 답하지만 의사는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카메라는 바로 보비의 눈이며, 보비의 머릿속에서 울리는 목소리는 관객에게만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나 카메라는 좁은 병동 안에 갇혀 있지 않고 천천히 시간과 장소를 확대해 나간다. 보비의 눈이었던 카메라는 그의 곁을 지키는 사람들의 눈으로 옮겨 가고 아예 밖으로 멀리 빠져 모든 이들을 관조하기도 한다.

보비가 꾸려 온 삶에 대한 회상, 현재 상태에 대한 고뇌, 남은 삶을 위해 떠올리는 상상이야말로 "이것이 인생이다" 식의 진부한 드라마를 피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다. 보비와 사이에 세 자녀를 둔 옛 동거녀, 그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아버지, 그를 헌신적으로 보살피는 조수와의 관계 속에서 삶의 작은 비밀이 조금씩 드러난다.

유머 역시 이 영화에서 빠뜨릴 수 없는 포인트다. 가장 절박한 순간에 터져나오는 보비의 유머감각은 스크린 속에서도 빛을 발한다. 보비는 딱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독자를, 슈나벨 감독은 보비를 딱하게 바라보고 있을 관객을 오히려 다독거린다.

화가로도 이름난 슈나벨 감독은 세심하게 빛을 활용해 아름다운 화면을 만든다. 촬영은 보비가 실제로 치료를 받았던 병원 안팎에서 이뤄졌다. 보비를 연기한 매튜 아맬릭의 연기도 깊이 있다.

이 영화는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으로 뽑혔으며 올해 골든글로브상 시상식에서도 감독상과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14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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