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은하해방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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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은하해방전선
  • 이경철
  • 승인 2007.11.19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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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로나 연애로나 입담 하나는 베테랑인 초짜 감독 영재(임지규). 말이 지나치게 많은 그를 말없이 받아주던 여자친구 은하(서영주)가 이별을 통보하자 영재는 "내가 먼저 그만두자고 하려 했다"고 얼떨결에 내뱉는다.

어린이물 "은하해방전선"에 출연 중이며 복화술이 특기인 혁권(박혁권)은 "진짜 영화"에 출연하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잘 풀리지 않자 단편영화를 함께 했던 영재에게 장편영화의 주연으로 써달라고 은근한 압박을 가한다.

영재는 실어증에 걸린 남자가 쌍둥이 자매와 사랑에 빠지는 내용의 장편영화를 구상하고 있다. 화려한 캐스팅을 상상하고 있지만 영화 작업은 영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암울한 상황이 계속되자 영재 본인에게 실어증이 찾아온다. 영재는 일본 스타 배우 기무라 레이를 캐스팅하기 위해 브리핑을 해야 하고, 혁권이 복화술을 써가며 영재를 돕지만 상황은 점점 악화일로를 걷는다.

윤성호 감독의 장편 데뷔작 "은하해방전선"(제작 은하해방전선제작위원회ㆍ청년필름)은 젊은 패기와 발랄한 재기가 가득한 영화다. 시종일관 쾌활한 분위기를 마음껏 발산하면서 솔직담백하게 극을 끌고 나가는 데 이 영화의 힘이 있다.

이 영화의 매력은 언어에 대한 사유에서 가장 빛을 발한다. 영화 속에서 인물들은 "소통"이란 단어 자체를 마음껏 풍자하며 말 많은 사람을 탓하면서도 끊어지지 않는 핑퐁 게임 같은 말장난을 쉴 새 없이 계속한다. 젊은 남녀가 연애 문제로 벌이는 입씨름과 신경전도 널리 공감을 살 만하다. 실어증에 걸린 주인공이 입을 열면 악기소리가 튀어나온다거나 복화술을 쓰는 배우, 말을 못하지만 마음은 넓은 여자 자원봉사자가 등장하는 등의 아이디어는 신선하고 흥미롭다.

다만 영화에 힘을 싣는 이 자잘하고 기발한 에피소드들이 모여 온전하고 강렬한 큰 그림으로 완성되지는 못한 듯하다. 단편영화의 톡톡 튀는 상상력이 숨 돌릴 틈 없이 계속되지만 장편영화 한 편으로서의 구조적 단단함과 유기성이 부족해 보인다. 영화계의 현실부터 독재정권, 보수 언론까지 거론하며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풍자를 패기 있게 내놓는가 싶다가도 결국 관객으로부터 웃음 한 차례를 유발하고 지나갈 뿐 어느 한 쪽으로도 깊이 들어가지는 않는다는 점이 아쉽다.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와 이 영화 등 올해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독립영화 두 편에서 동시에 주연을 맡아 눈길을 끄는 임지규가 경망스럽고 고민 많은 영재 역을 부드럽게 소화했고 "독립영화계의 스타" 서영주가 많지 않은 분량에도 자연스러움이 돋보이는 연기를 선보인다.

또 우정출연한 영화 "기담"의 주연배우 김보경과 드라마 "케세라세라"의 이은성뿐 아니라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의 양해훈 감독 등 독립영화인들이 카메오로 등장한다.

29일개봉. 관람등급 미정.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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