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블랙달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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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블랙달리아
  • 이경철
  • 승인 2007.10.26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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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어진 욕망

몸속의 장기와 피가 모두 빠져나간 채 두 동강난 시체. 더욱이 입은 귀까지 찢어져 있어 괴기스러운 피에로 같은 형상이다. 이 엽기적인 살인사건은 실제 1947년 1월5일 미국 LA에서 벌어졌다.

피살자는 22세의 꽃다운 엘리자베스 쇼트였다. 할리우드에서 배우를 꿈꿨던 처녀는 살아 있을 때는 무명으로만 남아 있었고 죽은 이후에야 처참한 사후 모습으로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그가 출연했던 한 영화 "더 블루 달리아"에서 검은 꽃을 머리에 꽂았다는 이유로 사건은 "블랙달리아"로 칭해진다.

500여 명의 수사관이 투입되고 3천 명의 용의자가 체포됐던 이 사건은 그러나 끝내 범인을 밝히지 못한 채 미궁에 빠져들었다.

말 그대로 "전대미문"의 이 사건을 "미션임파서블" "언터처블" "팜므파탈" 등을 연출한 할리우드의 명감독 브라이언 드 팔마가 끄집어냈다. "LA컨피덴셜"로 유명한 작가 제임스 엘로이의 동명소설을 영화로 만든 것. 실제 사건을 소재로 했지만 소설과 영화는 범인을 지목하는 흥미진진한 범죄 스릴러로 탈바꿈했다.

올해 베니스영화제에서 감독상(은사자상)에 뽑힌 이 영화의 분위기는 "LA컨피덴셜"과 여러모로 닮아있다. 두 형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욕망으로 가득찬 도시 LA를 들여다봤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LA컨피덴셜"의 긴장감과 탄탄한 구성에 박수를 보냈던 관객이라면 꽤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는 영화다. 할리우드의 비틀어진 욕망 속에 인간 군상의 나약함과 불안함은 폭력으로 점철된다. 결코 상업적인 코드를 저버리지 않는 드 팔마 감독은 심각한 주제에도 불구하고 숨가쁜 사건 전개 속에 상념이 가능한 시간을 집어넣어 영화는 적절한 리듬을 탄다.

"LA컨피덴셜"이 그랬던 것처럼 이 영화 역시 배우들의 고른 호연이 영화의 구성을 더욱 튼실하고 짜임새 있게 만든다. 조시 하트넷, 애런 에크하트, 스칼릿 조핸슨, 힐러리 스왱크 등 연기파 배우들의 포진만으로도 충만함을 느끼게 하는 것.

영화는 단순한 범죄 스릴러를 넘어서 극도의 퇴폐주의 경향 안에서 사랑이라는 마지막 끈을 놓지 않아 묵직해진 관객의 가슴을 풀어준다.

복서 출신의 경찰 벅키(조시 하트넷 분)는 역시 복서 출신이지만 권력에 줄을 댄 리(애런 에크하트)와 친선 경기를 가진 후 막 출범한 수사대에 들어간다. 수사대에서 전혀 다른 성격으로 벅키는 얼음으로, 리는 불로 묘사되며 "불과 얼음" 콤비로 불린다.

이들 사이에는 늘 리의 연인 케이(스칼릿 조핸슨)가 자리한다. 생활고에 찌들었던 벅키는 리와 케이로 인해 생애 최고의 순간을 즐긴다.

리와 벅키가 범죄자 내니를 쫓던 중 엽기적인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미모의 무명 여배우 엘리자베스 쇼트가 장기가 모두 적출되고 피가 씻겨나갔으며 두 동강난 채 발견된 것. 어찌된 일인지 리는 원래 사건이 아닌 이 사건에 병적으로 집착한다.

여기에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한 포주의 가석방은 리와 케이의 삶을 뒤흔들어놓고, 벅키는 나중에야 케이가 그 포주의 여자였으며 리가 포주를 체포한 뒤 케이와 연인이 됐다는 걸 알게 된다.

사건 수사 와중에 리가 처참하게 살해당하자 벅키는 죄책감에 리 대신 블랙달리아 사건에 매달린다. 갈피조차 잡지 못하는 수사는 점점 더 미궁에 빠져들고 동성애와 할리우드 개발사업의 비리까지 LA의 암울한 모습만 손에 잡힌다.

벅키는 수사 도중 할리우드 설계자의 딸인 매들린(힐러리 스왱크)을 만난다. 쇼트와 꼭 닮은 매들린에게서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하지만 리의 죽음 이후 넋을 잃은 벅키는 매들린에게 빠져들고, 혼란스러운 그녀의 가족을 만난다.

쇼트가 출연한 포르노 영화를 보다 매들린의 집과 관계가 있음을 알아채는 벅키는 사건의 중심으로 혼자 향해간다.

배우가 구현하는 캐릭터의 묘미를 만날 수 있는 즐거움과 적절한 공포와 함께 깔끔한 마무리로 매듭지은 스릴러를 보는 흥분을 만끽하길.

11월1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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