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이리나팜
상태바
영화 - 이리나팜
  • 윤종원
  • 승인 2007.08.03 15: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뒷골목에서 찾은 희망

섹스 클럽이 모여 있는 영국 런던의 허름한 거리에 점잖아 보이는 중년 여성이 기웃거린다. 1960~1970년대 영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팝가수 매리앤 페이스풀이다.

그는 영화 "이리나팜"(감독 샘 가바르스키)에서 예기치 않은 길로 들어서면서 제2의 인생을 찾은 중년의 과부를 연기했다. 이 영화는 "나이 든 여성의 자아찾기"라는 흔한 주제를 섹스 클럽에서 일하는 중년 여자란 흔치 않은 소재로 풀어나가면서 옳고 그름에 대한 상식적인 잣대가 과연 절대적인 것인지를 묻는다.

영국과 독일, 프랑스, 룩셈부르크, 벨기에 등 유럽 5개국의 배우와 스태프들이 참여한 이 영화는 올해 베를린영화제 주 경쟁부문에 진출해 심사위원 최고 평점(2.75)을 받았고 관객상을 수상했다.

남편과 사별한 뒤 평범하게 살고 있는 매기(매리앤 페이스풀)는 희소성 질병에 걸린 손자 때문에 삶이 힘겹다. 병원에서는 마지막 방법으로 외국에서 새로운 치료법을 써 보기를 권하지만 매기와 아들 톰(케빈 비숍) 내외는 6천 파운드에 달하는 경비를 도저히 마련할 수가 없다.

매기는 죽어가는 손자와 고뇌하는 아들을 손 놓고 바라보기만 할 수 없어 돈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별다른 능력이 없으니 쉽지 않은 일이다. 매기는 며칠 동안 은행과 직업소개소를 오가다 결국 런던 소호거리의 한 섹스 클럽으로 들어선다.

클럽 사장 미키(미키 마뇰로비치)는 매기에게 "당신 같은 손은 이 일에 타고 났다"며 거절하기 어려울 만큼 높은 급여를 제안한다. "3D" 업종이라고 불릴 만큼 다들 기피하는 이 일은 바로 벽 건너편으로 찾아와 돈을 내미는 남자 고객의 성적 욕구를 손으로 해결해 주는 일이다.

극심한 수치심으로 한동안 친구들과 아들의 눈길을 피해 가며 출근하던 매기는 점점 일에 적응하면서 성실함과 타고난 손재주로 손님들을 독점하게 된다. 사장은 "이름을 내걸면 손님이 더 모일 테니 급여를 높여주겠다"며 자신의 첫사랑 이름을 딴 "이리나 팜(Irina Palm)"이라는 상호까지 만들어 준다.

매기는 손님이 줄을 잇자 팔에 깁스를 하면서까지 출근을 감행하고 심지어 스카우트 제의를 받을 정도로 그 분야에서 인정받게 된다.

영화는 충격적인 소재를 전혀 자극적이지 않은 영상에 담았다. 카메라는 자신의 선택에 대해 고민하고 번뇌하는 매기의 모습을 조용히 따라간다. 매기의 선택을 비난하는 인물이 계속 등장하지만 가족애에 대한 낯간지러운 일장연설은 하지 않는다.

유쾌한 극적 흐름과 간결한 대사가 재치있고 감정이 절제된 결말은 여운을 남긴다. 매기 역의 페이스풀과 미키 역의 마뇰로비치가 흔들리는 중년의 모습을 잘 표현했다.

9일부터 메가박스 코엑스점과 미로스페이스에서만 만나볼 수 있다. 청소년 관람불가.

<연합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