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이대근, 이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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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이대근, 이댁은
  • 윤종원
  • 승인 2007.04.26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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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80년대 "강한 남자"로 깊게 각인된 배우 이대근이 늙고 지친 아버지가 돼 돌아왔다. 영화 제목에도 그의 이름이 쓰였으니 영화속 비중을 짐작케한다.

영화 "이대근, 이댁은"(감독 심광진, 제작 윤앤준)은 최근 잇달아 선보이고 있는 가족영화, 특히 부성애를 내건 여타 영화와 궤를 같이 한다. 그러나 성격은 다르다. 늙은 아버지가 주인공인 만큼 힘겨운 세상살이와 은근한 부모의 사랑이 보다 더 현실적으로 표현됐다.

주인공 이대근이 누구인가.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변강쇠" "뽕" "감자" "거지왕 김춘삼" "연산군" 등 수십 편의 영화에서 강한 남성상을 선보였던 대표적인 배우다. 2002년 "해적, 디스코왕되다"를 마지막으로 5년여 만에 선보인 이 영화에서 그는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고, 집나간 늦둥이 막내아들을 보고싶어하지만 정작 큰아들과 딸에게는 싫은 소리를 듣는 힘빠진 아버지로 등장한다.

젊은 시절 아내와 자식들에게 큰소리치고 가정을 돌보지 않았던 가장이었으나 이제는 어머니 제사상 앞에서 하느님 아버지를 배신할 수 없다며 절을 올리지 않겠다는 딸도 야단칠 수 없는 노인 캐릭터가 이대근이라는 배우에게 참 잘 들어맞는다.

극단 차이무에서 올렸던 연극 "행복한 가족"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연극적 색채가 강하다. 영화는 한 편의 소동극 같다. 주요 무대인 어머니 제사상 앞에서 등장인물이 부산히 움직인다. 그 곳에서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며 이대근가(家)의 행복과 불행이 오간다. 이두일, 정경순, 박철민, 박원상 등 연극배우로 이름을 알린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는 것도 연극적 색채를 보다 진하게 만든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한동안은 3년 만에 만난 어색한 가족의 모습이 단지 세월과 그 전까지의 오해때문만은 아닐 것 같은 생각에 어리둥절하다. 가족간에 생뚱맞은 말이 오가며 이 조차도 뚝뚝 끊어지곤해 진짜 가족임을 의심케하는 대목이 눈에 띈다.

그러나 결말에 가면 이들 가족의 애끓는 사연이 드러나며 낯선 느낌이 왜 들었는지 이해하게 된다. 소위 말하는 "반전"이 여기서도 유용하게 쓰인 것. 반전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선 반전이 이뤄지는 직전까지의 상황이 촘촘하게 짜여져야 한다. "이대근, 이댁은"은 관객에게 반전에 대한 예상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게 하면서 반전이 이뤄진 후 직전의 허술함을 리얼리티로 바꿔놓는 미덕을 보였다.

제작비가 많지 않은 적은 규모의 영화이지만 작은 영화만이 지닐 수 있는 장점을 충분히 갖고 있는데다 가족의 달에 딱 맞는 주제가 생생히 살아있다. 물론 "스파이더맨3"와 "아들"이 벌이는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얼마나 생존할 수 있을 지 걱정되지만.

아내가 죽은 후 도장파는 일을 하는 노인 이대근(이대근 분)은 외톨이다. 늦둥이 막내아들의 사업자금을 보태주기 위해 아내 병원비까지 털어놓고 큰아들(이두일)과 딸(안선영)에게도 빚보증을 서게 했던 아버지는 그저 삶에 지친 노인일 뿐.

3년 전 아내의 제사상 앞에서 자식들과 대판 싸운 후 연락을 딱 끊고 산다. 딸은 아버지에게 "도대체 우릴 위해 해준 게 뭐가 있느냐. 엄마 병원비까지 막내에게 줘야 했느냐. 우린 뭐냐"는 원망어린 말을 가슴 쓰라리게 내뱉았다.

심부름센터 구실장(박원상)을 고용해 막내아들을 찾고 있는 이대근은 구실장이 희망적인 소식을 전해줄 때마다 가슴이 설렌다.

3년만의 아내 제사를 맞아 집을 떠나는 이대근은 동네 사람들에게 "큰아들이 유명 배우이고, 기사딸린 차를 보내줬다"고 허풍을 떨지만 사실은 렌터카였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 빌린 집에는 큰아들과 며느리(정경순)가 이미 도착해있고, 교통사고 때문에 뒤늦게 딸과 사위(박철민)가 온다. 그런데 목사라는 사위는 택시를 몰고, 기사 복장을 하고 있다.

틈틈이 구실장이 막내아들이 있는 곳을 알게 됐다는 전화를 걸어오자 이대근은 희망에 부풀어 또 다시 딸이 큰소리를 내도 그러려니 넘어간다.

그런데 구실장이 찾은 사람은 막내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그가 추적했던 사람은 막내 지갑을 훔친 사람이었고, 구실장은 또 다시 막내를 찾으러 다닌다.

마침내 막내아들의 전화가 걸려오고 이대근은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비록 막내가 참석하지 못했지만 몇 년만에 아들 목소리를 들은 이대근은 아내 제사를 무사히 치른다. 자식들에게 정성껏 파온 인감도장을 하나씩 선물하며 제사는 마무리된다. 도장은 막내가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전하는데도 유용하게 쓰인다. 그런데 이 때 "시간이 다됐다"고 나타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순간부터 한 편의 소동극은 진지한 정극으로 탈바꿈하면서 결말을 향해 간다. 아버지의 진한 눈물에 가슴이 저려오는 순간이며 기막힌 사연에 먹먹해진다.

이대근가, 이댁은 참 가련타.

5월1일 개봉. 전체 관람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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