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가까이서 본 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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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가까이서 본 기차
  • 윤종원
  • 승인 2007.04.25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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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거장 이리 멘젤 데뷔작

모든 영화가 그렇겠지만 특히 거장의 작품을 대하기 전에는 두 가지 생각이 머리 속을 맴돈다.

영화에 대한 가슴 부푼 기대와 이를 잘 이해해 관객에게 올바로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그것.

최근 시사회에서 체코 거장 이리 멘젤(Jiri Menzel)의 "가까이서 본 기차(Closely Watched Trains)"를 접하면서 우선 우려는 접어둬도 되겠다는 생각을 먼저 했다.

작품의 심오한 세계를 이해 못해도 잔재미를 주는 소박한 코미디 영화라는 점만으로도 한국 관객에게 권할 만한 이유가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까이서 본 기차"는 멘젤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이 영화는 66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수상작으로 뽑혀 당시 28살이었던 젊은 감독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안겨줬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하층민들" 등으로 유명한 켄 로치 감독은 멘젤 감독의 영화를 두고 "내가 미래에 만들고 싶은 작품"이라고 고백했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또한 "쉰들러 리스트"를 연출하기 전 "가까이서 본 기차"를 참고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멘젤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인 "가까이서 본 기차"는 은유와 풍자가 가득한 코미디. 제2차 세계대전 말 독일 점령 하에 있는 체코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이제 막 연수를 마치고 철도원이 된 22살의 밀로시 흐르마(바츨라프 네카르시). 그는 아버지에 이어 철도원이 됐다. 어머니는 "큰 사고만 치지 않으면 평생 편하게 먹고 산다"며 아들을 자랑스러워 한다. 그의 아버지 역시 48살의 젊은 나이에 은퇴해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다. 아버지처럼 매일 빈둥거리며 놀고 먹는 삶을 그도 보장받게 된 것이다.

독일에 의해 체코 젊은이들이 전쟁에 동원되는데도 밀로시는 그런 문제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의 관심사는 차장으로 일하는 마샤(이트카 벤도바)뿐이다. 마샤의 매력에 홀딱 빠져 오로지 그녀와의 사랑 만들기에만 골몰한다.

그런데 사랑이 쉽지 않다. 뭐가 좀 될까 싶으면 매번 타이밍을 놓쳐 그녀에게 실망만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키스 한번 제대로 못했다. 밀로시는 마샤와 성적 관계를 맺는 것에 거듭 실패하자 여관에서 자살을 시도한다.

영화에서 밀로시는 "남자다운 남자"가 되고 싶다. 남자답다는 표시 중 하나가 성적 능력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 병원을 찾은 밀로시는 의사로부터 조루증이란 판정을 받는다.

감독은 두 사람의 연애에 초점을 맞추고 밀로시의 성적 고민을 축으로 영화를 코믹하게 풀어간다.

밀로시와 마샤가 관계를 가지려고 할 때마다 뜻하지 않은 장애물이 생기고, 간호사 복장을 한 매춘부가 등장하며, 밀로시가 성적인 문제를 상사인 역장의 아내에게 상담하는 웃지 못할 일도 생긴다.

영화는 섹스를 축으로 농담하고 대화하고 고민한다. 섹스는 "가까이서 본 기차"에서 이렇게 웃음을 만드는 중요 요소이기도 하지만 이외에도 중요한 메타포로 작용한다.

조루증으로 고민하는 밀로시의 모습은 당시의 체코를 표현하고 있다. 밀로시의 대화 속에 계속 섞이는 "남자다운 남자"는 독일의 지배에서 벗어나고 싶은 체코인의 바람을 담고 있다.

남자 철도원과의 게임에 져 엉덩이에 차표 도장을 찍으면서도 행복해하는 여성 철도원의 모습은 힘겨운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체코인의 심리를 담고 있는 듯하고 그녀가 계속 되뇌는 "난다"라는 대사 또한 차표 도장과 같은 의미로 해석된다.

거장의 숨결이 담긴 이 담백한 흑백필름은 관람한 뒤 뿌듯한 만족감을 얻고 싶은 관객에게 추천할 만한 작품이다. 우디 앨런 감독의 작품을 생각하면 "가까이서 본 기차"에 대한 이해가 쉬울 듯.

26일부터 열리는 제8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멘젤 감독의 특별전도 열린다고 하니 관심 있는 관객이라면 전주를 방문해도 좋을 듯. 심사위원장으로 전주를 찾는 멘젤 감독을 거리에서 만나는 행운도 기대하면서.

5월10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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