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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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살결
  • 윤종원
  • 승인 2007.04.25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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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성이 뛰어난 영화는 대중적 재미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대중적 재미가 떨어지는 영화는 다 예술성이 뛰어난 영화일까. 이 같은 이단논법은 "천재는 악필이다. 그렇다고 악필이 다 천재는 아니다"라는 이단논법과 유사하다.

"마리 이야기" "천년여우 여우비" 등의 애니메이션으로 잘 알려진 이성강 감독의 저예산 영화 "살결"(제작 소돔프로덕션)은 제목만큼이나 인상적이고 강렬한 전라(全裸) 섹스신이 많이 나오지만 실감나는 섹스 장면을 빼면 썩 재미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영화다.

영화는 채광이 별로 없는 한정된 좁은 공간을 배경으로 한 장면이 많아서인지 우중충하고 칙칙하고 단조로운 색조가 주를 이룬다.

구체적 의미를 알 수 없었던 첫 장면을 상세히 설명하는 막판 반전이 다소 극적이긴 하지만 결말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의 흐름은 우울하고 단조롭고 단편적이다.

사진작가 민우(김윤태)는 밤에 인적이 드문 길을 걸어가다가 우연히 자동차 사고를 목격한다. 갑자기 도망치듯 도로에 뛰어들었다가 뺑소니차에 치여 죽은 여자의 몸에 손을 댄 순간 민우는 사람의 생명이 피부 위에서 사그라지는 느낌을 받고 그 감촉을 잊지 못한다.

다음날 학창시절 열렬히 사랑했던 옛 애인 재희(김주령)와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민우. 유부녀가 된 재희는 민우에게 아홉 번의 섹스를 제안하고, 민우와 재희는 호텔방과 민우의 자취방을 전전하며 서로의 몸을 미친 듯이 탐닉하기 시작한다.

한편 민우는 새 자취방을 구하는데 왠지 그 방은 과거가 석연치 않다. 옷을 만드는 소녀였다는 전 주인의 심상치 않은 소지품을 자취방에서 발견한 민우는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그 방에서 재희와 섹스를 하는 순간 소녀의 환상을 경험한 민우는 그 뒤로도 그 방에 소녀가 살고 있는 듯한 환상에 문득문득 사로잡힌다.

영화는 서로의 몸이 주는 쾌락에 탐닉하는 민우와 재희의 관계 위에 방의 전 주인이었던 소녀의 사연을 오버랩시키며 무언가 감춰진 비밀이 있는 듯한 분위기를 시종일관 풍긴다.

다소 쇼킹할 수도 있는 소녀의 사연은 영화 결말부에 구체적으로 밝혀진다.

한정된 공간과 소수의 등장인물, 포르노를 방불케 하는 강렬한 섹스신은 얼핏 외설을 가장한 예술영화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눈썰미 있는 관객이라면 예술을 가장한 외설 쪽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을 것같다.

제작진은 민우와 재희의 섹스에, 특히 섹스에 탐닉하는 민우의 심리상태에 삶과 죽음, 사랑과 집착 같은 뭔가 차원 높은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것 같지만 녹록지 않은 관객의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 영화의 수위 높은 섹스신이 관객의 말초적인 관심을 끌기 위한 장치인지 예술적 성취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인지는 관객이 직접 판단하시길.

미로스페이스, 중앙시네마, CGV서면 등 3개관에서만 소규모로 개봉한다.

5월10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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